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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한 침대에서 깨어나다

강은채는 윤재욱의 눈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유랑 지민이가 같이 더 놀 수만 있다면, 지민이가 맛있는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내가 참는다.’

집에 돌아온 강은채는 모든 불쾌함을 집어넣고 두 아이와 1시간 동안 놀아주고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녁 준비를 하며 이시훈의 말을 떠올렸다.

‘지민이와 지유 생일이 같은 날이야. 그럼 송세희가 임신했을 때 외국에 있었단 말인데. 그때 나는 시훈 씨와 만나고 있었으니까 재욱 씨 아이를 가졌을 리가 없잖아.

설마?’

강은채는 야채를 다듬고 있던 동작을 갑자기 멈췄다. 그녀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닐 거야. 재욱 씨처럼 완벽을 추구하고 신중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는 걸 용납하지 못 할 거야.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송세희가 지민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거야. 그렇다면 이 아이는 입양된 게 아니면 재욱 씨의 사생아란 말인데.’

“물 끓는 거 못 봤어?”

갑자기 윤재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강은채는 깜짝 놀랐다.

“귀신이에요? 어떻게 발걸음 소리도 안 나요?”

강은채는 마음이 켕기는 듯 불을 끄고 얼른 돌아서서 야채를 씻었다.

“강은채,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단지 돈 때문에 나한테 접근한 거 맞아?”

강은채의 행동에 윤재욱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은 안 피곤하세요? 맨날 그렇게 의심하면서 살면 힘들지 않아요?”

강은채는 짜증 내며 말했다.

‘저 사람 앞에만 서면 아무 생각이 안 드는데 이 사람은 나를 너무 심보가 고약한 여자로 생각해. 너무 억울해. 억울해 죽겠어.’

“당신 알 바 아니야. 좋은 말 할 때...”

“좋은 말 할 때 얌전히 있어. 아니면 감당 못 할 테니까.”

윤재욱의 경고를 귀에 딱지가 지도록 지겹게 들은 강은채는 바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

“당신, 좀 신박한 경고로 바꿀 수 없어요? 당신과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당신이 나한테 한 경고 횟수는 이미 상상을 뛰어넘었어요.”

강은채는 분노에 찬 말들을 내뱉고는 계속 야채를 씻었다. 동시에 화제를 돌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당신 본분을 잘 지켜. 나를 속이거나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게 발견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같이 잤던 여자라 해도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이번의 윤재욱은 더욱 날카로웠다. 그는 강은채라는 여자에 대해 속수무책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이런 속수무책인 상태가 싫었다.

“당신이 방해해지만 않았으면 나는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같이 잤던 여자로서 특권을 요구한 적 없어요. 정 내가 눈에 거슬리면 봐주지 말고 그냥 죽여요.”

강은채는 협박을 당하면서 살지 않았다. 그녀가 겪은 고난은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내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봐주면 뭐 어쩔 건데? 어차피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와이프 편을 들 텐데.

안 봐주면 또 어때서? 죽으면 그만이지 뭐. 차라리 통쾌하게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나을 거야.’

한편, 아이들은 두 어른의 말을 다 듣고 말았다.

처음에 두 아이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입을 가리고 웃더니 허리를 숙여 거실로 뛰어갔다.

“지유야, 아니면 우리가 도와줄까?”

윤지민은 기뻐하며 말했다. 아이는 다시 엄마를 마주하느니 차라리 강은채를 엄마로 삼고 싶었다. 아이도 그러면 엄마에게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엄마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어떻게 도와줘? 오빠는 엄마가 있지 않아? 아저씨가 엄마를 받아 줄까?”

사실 강지유의 생각도 윤지민과 같았다. 다만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면 돼. 지금 많은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살아. 우리 아빠가 아줌마를 받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줌마가 여동생을 낳아주면 아빠는 무조건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

지민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엄마 아빠가 이혼만 하면 나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해?”

지유는 기분이 좋아 웃으며 물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자.”

두 아이는 핸드폰으로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음식들이 차려지자 그들은 각자 자리에 앉았다. 지유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선가 와인 한 병을 들고 왔다.

“아저씨, 엄마. 술 좀 마셔요. 오늘 저녁 식사도 이렇게 진수성찬인데 술을 조금 마셔 줘야죠.”

“지유야, 아저씨는 이따가 운전해야 해서 술을 못 마셔.”

재욱이 먼저 입을 열며 거절했다.

“아빠, 좀 마셔요. 이따가 기사님한테 데리러 오라고 하면 되죠.”

지민이 말을 하는 사이에 지유는 어느새 술잔까지 가져왔다.

“지유야, 엄마는 술 못 마셔.”

“마실 수 있잖아. 조금 마시는 건 괜찮아.”

지유는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두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러고는 자신과 지민의 컵에는 음료수를 가득 따랐다.

“엄마, 우리 네 사람 같이 건배하자. 엄마 그리고 아저씨, 저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유가 말을 너무 예쁘게 하자 은채와 재욱은 아이들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강은채와 윤재욱은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것도 한 잔뿐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강은채는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어지러워 지유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강은채는 늘 깨어나던 시간에 딱 맞춰 잠에서 깼다.

기지개를 켜고 눈을 비비고 앉자 윤지민과 강지유가 그녀의 방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여 의문이 들었다.

“지민이 집에 안 갔어?”

강은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아빠도 안 갔어요.”

지민의 표정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럼 아빠는 어딨는데?”

강은채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물음에 지민과 지유는 동시에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옆을 가리켰다.

은채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고개를 돌려 보니 재욱이 바로 그녀의 옆에 누워 있었다.

‘아오... 민망해 죽겠네!’

강은채는 난처해하며 아직 문 앞에 서서 떠나지 않은 두 아이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발로 윤재욱을 세게 걷어찼다.

재욱은 술을 많이 마신 탓인지 깊은 잠을 자고 있다가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항상 침착했던 사람이라 이내 진정했다.

“문 닫아.”

윤재욱은 두 아이에게 당부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당신... 문을 닫으면 아이들이 오해하잖아요.”

강은채는 문을 닫는 걸 반대했다. 그녀는 재욱을 노려보았다.

“애들 표정 좀 봐. 이미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같이 잤던 사이에 오해받는 게 무서워?”

윤재욱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자기 옷들이 어젯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그대로 몸에 착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실망스러웠다.

“다 당신 때문에 애들이 오해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들어왔어요? 아이들도 다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내 침대에서 잠을 자요?”

은채는 그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제 머리가 너무 아파 먼저 잠들었기에 재욱이 자신의 침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같이 볼 거 다 본 사이에 잔소리는. 내가 당신 침대에서 자서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윤재욱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비꼬듯이 말했다.

그런 윤재욱을 보니 강은채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당신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거예요? 왜 항상 그런 말을 하면서 나를 안 놔주는데요?”

강은채는 윤재욱의 비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아무리 애를 써도 윤재욱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그녀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여자가 되어줘.”

윤재욱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검은 두 눈동자는 왠지 위험해 보였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강은채는 한숨을 쉬었다.

“싫다면요?”

너무 옛날 스타일이었다. 강은채는 이제 듣는 것만으로도 지겨웠다. 아무리 재욱이 몇 번이고 말한다 해도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재욱은 차가운 눈빛으로 협박하듯 말했다. 당장이라도 폭풍이 칠 것 같은 분위가 맴돌았다.

“달라져요? 좋아요. 저의 모든 게 변할 거라니까 꼭 한번 해봐야겠어요.”

강은채는 화를 내고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어 비서한테 전화를 걸었다.

“본사에 저를 다시 보내달라고 전하세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윤씨 그룹에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면 바로 제 사직서를 제출해 주시고요. 그리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티켓 2장 예매 부탁드려요. 최대한 빠른 항공편으로요.”

강은채는 화가 가시지 않은 듯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윤재욱을 노려보았다.

“저 사직서 낼게요.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나를 달라지게 했네요.”

강은채는 바로 침대에서 내려가 옷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딴 곳에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닌데. 저 미치광이랑은 이제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사직하면 얼마나 큰 손해인지 알아?”

재욱은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사나운 표정으로 강은채를 쳐다봤다.

“상관없어요. 위약금은 물면 되잖아요. 4년 동안 몇 십억의 빚을 갚으면서 살아왔어요. 빚 몇억이 더 늘어난다고 어떻게 되지 않아요. 돈 많은 남자를 꾀어내면 몇억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강은채는 점점 감정이 더 격해졌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더 많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 기회에 떠날 생각이었다.

그녀는 옷을 정리하다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윤재욱 씨. 당신, 돈도 권력도 다 가졌지만 나는 당신 별로예요. 당신한테는 사기조차 치지 않을 거예요.”

“그만해. 억지 부리지 마.”

윤재욱은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짐을 싸는 강은채를 보고 있자니 그는 마음이 불안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정할 수 없었다.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요? 당신 여자가 되라고 하는 건 억지 부리는 게 아니고요? 윤 대표님처럼 높으신 분은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여자를 가질 수 있잖아요. 왜 굳이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제가 말했죠. 저는 딱 일 년만 일하러 온 거라고. 그런데 당신은 일 년이 아니라 하루도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강은채는 큰소리로 맞받아쳤다. 며칠 동안 그녀는 줄곧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 되어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낸 적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지내다가는 윤재욱이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고민만 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내가 이미 충분히 말했잖아. 못 알아들어?”

윤재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면서 피가 마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단번에 강은채가 들고 있던 물건을 빼앗고 캐리어를 한쪽으로 차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내밀어 강은채를 자신의 품으로 당기며 안았다. 그의 동작은 너무 민첩하고 빨랐기에 강은채는 반항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거 놔요. 놔요. 윤재욱 씨, 나를 한 번만 존중해주면 안 돼요? 이혼한 여자라고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 거예요? 당신은 와이프도 있잖아요. 그런데 당신 여자가 되라고? 이게 괴롭히는 게 아니고 뭐예요?”

강은채는 발버둥 쳤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가정이 있었다.

그는 훌륭한 남자였지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

그렇게 안겨 있으니 그녀는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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