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진실을 알게 되다
서수연은 이시훈을 데리고 강은채 부모의 묘지로 갔다.
"여기는 은채의 부모님이 계신 곳이야. 부모님의 사망 날짜를 계산해 보면 은채가 너에게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시훈은 당황했다. 그는 확인을 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시훈은 무릎을 꿇고 묘비에 적힌 사망 날짜를 보니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자책감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내가 은채를 오해했어. 내가 잘못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시훈은 자책하며 후회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잃었다.
은채의 아버지는 은채가 갑자기 귀국한 날에 사망했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들은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그때 은채가 시훈에게 전화를 했을 때가 바로 그녀의 어머니가 위독한 상황이었다.
이 모든 건 송세희의 짓이었다. 그녀는 은채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정보를 이용해 함정을 파놓았다. 하지만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믿었고,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는것이다.
두 사람은 묘지를 나와 차로 향했다.
시훈은 깊은 후회를 했고, 수연은 옆에서 어쩔 방도가 없었다.
"이시훈, 너는 은채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아버지께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이 거의 매일 들려왔어. 그리고 은혜도 혼수상태로 병원에 있었고. 그때 은채에게 넌 하늘과 같은 존재였는데, 너는 그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지 않았지."
4 년이나 지났지만, 수연은 그때 은채가 겪었던 고통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은채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뎠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너무 잘못했어."
시훈은 끊임없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은채가 겪었던 모든 고통을 들은 그는 더욱 자신이 미워졌다. 은채가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너무도 괴로웠다. 그런 그가 어떻게 감히 강은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게 다가 아니야.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그녀 아버지가 남긴 몇 십억의 빚과 사망자 및 부상자 보상금이었어. 그 돈은 너한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이 돈 때문에 은채는 하마터면 죽을뻔했었어."
수연은 속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했다.
"다행히도, 은채는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자신과 동생, 그리고 어머니 명의로 된 집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어. 하지만 동생이 성인이 되지 않아 그 집들을 다 팔 수 없었고, 결국 겨우 두 채만 팔았지. 그 후에 은채 고모가 돌아오셔서 고모 명의로 된 집 한 채를 판 후에야 대부분의 빚을 갚을 수 있었어."
"지금 남은 빚이 얼마인지 말해줘. 내가 대신 갚을게."
시훈이 급하게 물었다. 100억이든 200억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은채가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곧 갚을 수 있을 거야."
"그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필요로 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시훈은 초조하게 말했다.
"이시훈, 잠시만 진정해. 너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일이 하나 더 있어."
수연은 잠시 침묵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은채에게는 아이가 있어. 그래서 너희가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
"아이?"
시훈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수연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에 결혼했었는데, 지금은 이혼했어. 아이는 은채와 함께 있고."
수연은 간단하게만 설명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시훈과 은채의 사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훈은 현재 서울시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남자였고,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그래서 수연은 누구보다도 그가 은채를 지켜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은 4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결혼? 이혼?"
시훈이 놀라서 물었다.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순간 시훈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 통화를 떠올렸다.
“이미 다른 남자를 찾았어. 그는 나한테 돈을 줬지만, 넌 그 정도는 줄 수 없잖아.”
혹시 그때가 바로 은채가 다른 남자를 선택하기로 결심한 순간일까? 혹시 그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것일까? 바로 내가, 자신의 손으로 가장 사랑했던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 것일까?
이 생각에 이르자, 시훈은 화가 나서 자신의 차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훈은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수연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시훈, 은채한텐 절대 내가 말한 거라고 하지 마. 걔가 내가 이랬다는 걸 알면 나랑 절교할 거야."
수연이 시훈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 일로 은채한테 혼나고 싶지 않았다.
"말하지 않을게. 그리고 너도 은채에게 내가 모든 것을 알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마. 내가 은채를 그토록 절망하게 했고 가장 친한 친구와 짜고 그녀를 해쳤으니, 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조차 없어."
시훈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기분이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 너희 문제는 너희 스스로 해결해."
수연은 잠시 고개를 돌려 시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물러날 줄 알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아이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은채에게 더 큰 상처를 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연아, 너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야. 그녀가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도록 설득해 줘. 송세희는 지금 윤재욱의 아내가 되었어. 은채가 혼자서 그녀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야. 만약 꼭 복수를 해야겠다면…."
시훈은 진실을 알고 나서 은채가 돌아온 것은 세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라는 걸 더욱 확신했다. 하지만 그 복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은채가 상처받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잠깐, 복수라고? 송세희가 윤재욱의 아내라고?"
수연은 은채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 급히 은채의 집으로 갔다. 시훈이 그녀를 은채의 집 아래까지 데려다주었다.
은채는 지유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연에게는 집 열쇠가 있었기에, 바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은채야, 송세희가 윤재욱 아내라는 거 알고 있었어?
수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4 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이 상황에 또 엮이게 되었을까? 복수는 또 무슨 소리지?
시훈의 말을 들은 후 그녀는 계속 불안해했다.
은채는 잠시 멈칫하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와서 먹어. 내가 가서 그릇 가져올게."
은채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채야, 너 혹시 이미 알고 있었어?"
수연은 은채의 이상하리만치 침착한 행동이 수상했다.
"먼저 밥 먹자. 다 먹고 나서 얘기해."
은채의 이 반응은 그녀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인정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수연은 저녁을먹는 내내 불안해 미칠 것 같았다.
저녁 식사 후, 은채와 수연은 지유를 데리고 아파트단지 내의 공원으로 갔다. 지유를 어린이 놀이터에 맡긴 후에야 은채와 수연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방금 알았어. 꽤 의외였지. 처음에 윤 씨 회사에서 송세희를 봤을 때 그녀가 윤재욱 여동생인 줄알았어. 그런데 오늘 아침에 윤재욱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다가 주차장에서 마주치고 나서야 그녀가 그의 아내라는 걸 알았어.”
은채는 매우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송세희와 다투고, 뺨까지 맞은 상태에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었다. 단지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은채야, 알았으면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어? 너랑 윤재욱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수연은 이미 지유를 통해 어젯밤에 은채와 윤재욱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아직 은채와 제대로 얘기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기에, 지금 그녀는 이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걱정되었다.
“나랑 그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은채는 여전히 무덤덤했다.
단지 서로 안아주었을 뿐, 단지 서로 입을 맞췄을 뿐, 단지 함께 잠자리를 가졌을 뿐, 그 뿐이었다. 이런 건 다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어제 밤새 그 사람과 함께 있었다면서,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누가 믿겠어? 지유도 윤재욱이 너한테 키스했다고 말했는데, 그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수연은 조금 흥분했고, 더 큰 걱정이 앞섰다. 그녀는 은채가 이런 식으로 세희에게 복수하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직접 묻는다면 이시훈과의 비밀이 드러날까 봐 직접적으로 묻지도 못했다.
수연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됐어. 앞으로 윤재욱과 멀리 떨어지고, 송세희와는 엮이지 마.”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은채는 수연의 걱정이 담긴 말투를 느꼈고, 오히려 그녀를 위로했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을지는 본인도 확신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멀리 있는 나무 뒤에서 시훈이 은채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진실을 알고 이렇게 자책할 줄은, 은채가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존재는 분명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은채를 향한 그의 사랑은 전혀 식지 않았다.
은채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그날 밤 윤재욱과의 일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 깊이 묻어둔 상태였다. 며칠 후 김 팀장이 출장에서 돌아왔고, 모든 업무 보고는 김 팀장이 맡아서 처리했기에 그녀는 윤재욱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오늘은 YB 휴대폰 대량 생산 전 마지막 단체회의 날이었다. 모든 휴대폰 부서가 참석해야 했고, 은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채는 윤재욱도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를 보는 순간 그날 밤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가 윤재욱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은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녀만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한 것이었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각 부서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강 부장님, 각 부서에서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구성에 대해 다시 논의하고 싶으니 지금 내 사무실로 따라 오세요.”
윤재욱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나서 비서와 몇 명의 보조를 데리고 성큼성큼 회의실을 떠났다.
은채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불려 당황스러웠다. 대표실로 오라는 말을 들으니 더 난처했지만, 이름이 불린 이상 가지 않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은채는 마음을 다잡고 재욱의 사무실로 갔다.
그녀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재욱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은채는 재욱의 눈에서 불신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윤재욱은 처음부터 그녀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녀가 제시한 구성이 최적의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윤 대표님, 제가 제시한 기준은 매우 세밀하게 계산된 것이니 수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은채는 바로 말을 꺼냈지만, 이번에는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매우 형식적인 말이었다.
“내 아내가 널 찾아가 귀찮게 한 적은 없나?”
갑자기 재욱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다.
은채는 그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
“아니요. 윤 대표님, 저는 공적인 일로 온 겁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면 저는 돌아가 볼게요.”
은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윤재욱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가 자기에게 뭔가를 캐물었을까 봐 걱정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여자로 있어.”
재욱이 다시 한번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업무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은채의 가슴이 조여왔다. 재욱이 왜 이 문제를 다시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가 무엇을 고집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윤 대표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답을 드렸습니다. 제 대답은 예전과 똑같아요. 저는 당신의 여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은채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가 송세희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녀는 그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