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지민이가 학대를 당했다
서수연은 저녁을 먹고 나서야 떠났고 강은채는 줄곧 어떻게 하면 사고로 다친 그 남자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배상을 해야 그녀는 비로소 모든 일을 완전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엄마, 아저씨한테 전화해 봐. 나 지민 오빠가 어떤지 알고 싶어.”
지유는 계속 윤지민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 엄마가 지금 전화해볼게.”
강은채는 얼른 윤재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변함없는 윤재욱의 냉담한 목소리에 강은채는 한기를 느꼈다.
“지민이 있어요?”
강은채는 윤재욱이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봐 말을 많이 섞고 싶지 않았다.
“자기 방에 있을 거야. 방에 유선 전화 있어.......”
윤재욱은 윤지민의 방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강은채는 그 번호로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윤지민의 목소리는 현저히 가라앉아 있었다.
“지민아, 나 은채 아줌마야. 지유 말로 아프다면서......”
은채가 아픈 것에 대해 물으려 하자 윤지민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아, 왜 그래? 왜 울어? 어디가 아픈 거야?”
은채는 다급하게 물었다.
“아줌마, 저 아줌마랑 지유 보고 싶어요. 저 지금 아줌마 집에 가면 안 돼요?”
윤지민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끼며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고 있었다.
“지민아, 지금 어디에 있어? 할아버지 집에 있어 아니면 아빠 집에 있어?”
강은채는 애가 왜 이렇게 슬프고 답답하게 우는지 걱정이 앞섰다. 억울한 일을 당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아픈 건지.
“아줌마, 저 지금 아빠 집이에요. 아빠랑 상의해 보세요. 저 아줌마 집에 가고 싶어요.”
지민은 다시 한 번 사정했다. 그의 울음소리와 억울함이 강은채의 귀를 통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지민아, 울지마. 아줌마가 지금 아빠한테 전화해볼게.”
강은채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윤재욱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였다.
“당신......”
강은채는 분노를 느끼며 이 남자가 정신을 차리게 욕해주고 싶었다. 지위와 성과가 있으면 오만해지고 직원들에게 냉담하게 대할 수 있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따듯하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인가.
강은채는 지민이가 나오지 못할까 봐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민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게 해도 될까요? 지유가 지민이 보고싶다고 해서요.”
“지금?”
시간을 보니 벌써 밤 9시였다.
“네. 지금이요. 불편하시다면 제가 데리러 갈게요.”
강은채는 상의하는 말투로 말했다.
“안 돼. 너무 늦었어.”
윤재욱은 지민의 안전을 걱정해 즉시 거절했다.
“아저씨, 그냥 지민 오빠 우리 집에 오게 해주세요. 저 지민 오빠 보고 싶어요.”
강지유가 윤재욱의 거절을 듣고 서둘러 엄마의 전화를 받아 간청했다.
“지유야......”
“아저씨, 주소 알려주세요. 저랑 엄마가 운전해서 오빠 데리러 갈게요.”
지유는 재욱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재욱의 말을 끊었다.
“아저씨, 지유가 부탁할게요. 내일 아침에 저희 등교도 같이 할 수 있어요.”
지유는 애원했고 그 귀여운 목소리에 재욱은 거절할 수 없었다.
40분 후 집사가 윤지민을 강은채의 집으로 데려다줬다.
“아줌마......”
윤지민은 집으로 들어서자 두말 없이 강은채의 품으로 달려들어 펑펑 울기 시작했고 강은채는 마음이 아팠다.
“지민아, 울지 마. 무슨 일인지 아줌마한테 말해 봐.”
강은채는 웅크리고 앉아 지민을 안았고, 그가 자신의 어깨에 엎드려 통곡했다.
“아줌마, 제가 유치원에 안 갔던 건 아파서가 아니라 엄마가 저를 때려서 못 간 거예요.”
윤지민은 강은채에 품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더욱 슬프게 울었고 참다 못해 유치원를 결석한 이유를 말했다.
“뭐라고?”
강은채는 순식간 분노했다.
그녀는 윤지민을 내려놓고 자초지종을 진지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엄마가 저를 때렸어요. 유치원 선생님이 몸에 있는 상처를 보시게 될까 봐 저를 유치원에 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지민이는 자신의 바지를 내렸고 허벅지에 멍이 선명하게 보였다.
강은채는 아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뭉쳤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아이를 이 지경으로 때릴 수 있어! 이러고도 친엄마라고?”
강은채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자주 저를 때리시고 아빠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세요. 아빠가 출장 가셔서 집에 안 계시면 저를 창고에 가뒀어요. 집에서는 아무도 제가 맞았다는 걸 몰라요. 저 다시는 엄마 보고 싶지 않아요. 아줌마 저 무서워요......”
윤지민의 작은 몸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매 맞고 갇혔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민아 울지마. 아줌마가 널 도와줄게.”
은채는 지민을 품에 꽉 안아 따뜻함을 주었다.
알고 보니 이것이 윤지민이 엄마를 싫어하고, 굳이 여기에 오겠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였다.
이 모든 것을 윤재욱은 정말 모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는 걸까?
은채는 반드시 재욱과 얘기해서 지민이가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은채는 아이를 달랜 후, 지민이와 지유를 데리고 침대로 갔다. 두 아이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강은채는 약을 가져와 지민이에게 발라주었다.
“아줌마, 아빠한테 말하지 마세요. 아빠가 아시면 엄마는 저를 더 심하게 때릴 거에요. 아빠는 자주 집을 비우셔서 저를 지켜주시지 못하고 바쁘시고 힘드신데, 걱정끼치고 싶지 않아요.”
윤지민의 말에 강은채는 눈물이 났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지민의 작은 품에 머리를 묻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어린 아이도 아빠를 위하는데, 정작 아빠는 그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 그렇게 매몰차게 아이를 대하다니.
강은채는 뺨이라도 두 대 갈겨서 그를 정신 차리게 하고 싶었다. 아버지로서, 아이가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을 짊어지게 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강은채는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추스렸고 계속 윤지민에게 약을 발라줬다.
허벅지에 약을 다 바르고 다른 곳을 살펴보던 중, 윤지민의 팔뚝에 있는 모반에 시선이 멈추자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강은채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윤지민의 왼쪽 팔뚝에는 손가락 두 마디 되는 크기의 모반이 있었는데 지유도 같은 위치에 같은 모양의 모반이 있었다. 다만 지민이는 왼쪽 팔뚝에, 지유는 오른쪽 팔뚝에 있었다.
강은채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멍해졌다.
“엄마 뭘 보고 있어? 약 다 발랐으면 이제 자야지.”
지유가 강은채를 일깨웠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너희들 먼저 자.”
강은채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강은채는 아이들을 먼저 재우고 흐릿한 스탠드 조명만 남겨두고 방을 나갔다.
거실 창가에 서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윤지민의 팔뚝에 있는 모반을 떠올리자 가슴이 아팠다.
윤지민에게 어떻게 그런 모반이 있을 수 있을까? 단지 우연일까? 그의 엄마는 정말로 친엄마가 맞을까? 만약 그렇다면 왜 자기 아이를 학대했을까?
강은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강은채는 출근하자마자 바로 대표실로 갔다.
“대표님, 지민이는 이틀 동안 저랑 같이 있을 겁니다. 아이의 안전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제가 아이를 이용해 대표님을 꼬시려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걱정도 안 하셔도 됩니다.”
강은채의 말투에는 불만과 분노가 역력했다. 그녀는 자신을 억제하고 싶었지만, 쉽지않았다. 지민이에게 아빠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미 한바탕 화를 냈을 것이다.
“넌 지금 내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네 결정을 통보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강은채, 지민이는 내 아이야. 미리 나한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윤재욱은 많은 사람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은채의 말투에 담긴 불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지민이가 평소에는 자주 할아버지 댁에서 지낸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대표님이 출장 가셔서 집에 없을 때는 지민이를 저희 집에 두고 가세요. 제가 잘 돌볼게요.”
강은채는 윤재욱의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말을 할수록 감정을 주제하지 못했다.
윤재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 밑에서는 서리가 서려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돌아서 두 걸음 내려와 강은채 곁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두 사람이 밀착되도록 제압했다.
“당신......”
강은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지민이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민이를 위해 참았다.
“이건 네가 날 도발한 벌이야. 강은채, 지민이는 내 아들이야. 걔가 어디서 어떻게 살지는 내가 결정해. 넌 아무것도 아니고 그 아이를 좌지우지할 자격도 없어. 그리고 명심해. 지민이한테는 엄마가 있어. 네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그는 비웃으며 비아냥거렸다.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마저 차가웠다.
“만약 내가 기어이 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면?”
강은채는 화가 나서 말을 가리지 않고 윤재욱을 도발했다. 만약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그녀는 누구보다도 지민이를 잘 돌보고 싶었다. 차라리 지민이의 엄마가 되고 싶었다.
“꿈 깨. 너 같은 사기꾼이 무슨 자격으로 지민이의 엄마가 되겠다는 거야.”
윤재욱은 완전히 화가 났고 그 위험한 눈동자는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위협적이었다.
강은채는 순간 멍해졌다. 그의 말투는 마치 4년 전의 이시훈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들었던 “사기꾼”이라는 말이 다시금 강은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보아하니 윤재욱은 이미 그녀의 모든 것을 조사했고, 그녀가 영락없는 사기꾼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맞아요. 저는 사기꾼이에요. 모두가 저를 사기꾼이라고 하니 부인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윤재욱 씨, 제가 당신의 무엇을 속였는지 묻고 싶네요. 감정인가요, 돈인가요, 아니면 당신 그 자체인가요?”
그녀는 큰 소리로 반격했고, 분노로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그녀는 윤재욱의 위협적인 태도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데도 재욱은 오히려 그녀의 눈에서 상처를 보았다.
“난 너에게 사기 당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손해를 보는 건 오히려 너야.”
윤재욱은 음흉하게 말하고는 강은채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갑작스럽게 강은채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한 손으로 강은채의 허리를 단단히 껴안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뒷머리를 감싸며 강하게 밀착했다. 그 힘이 너무나 강력해 강은채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음......”
강은채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오히려 윤재욱이 빈틈을 타 그녀의 입술 안에서 더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강은채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악......”
윤재욱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강은채를 놓아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