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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헤어졌다

윤재욱은 강은채보다 더 엉망진창이었다. 옷이 흐트러진 것도 모자라 머리카락도 예전의 단정함을 잃었다. 두 사람은 마치 불타오르는 성인간의 대화를 막 끝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배원영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처음으로 윤재욱의 이런 느슨한 모습을 봤다.

여자랑 함부러 엮이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윤 대표도 결국 여자라는 관문을 넘기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강은채는 배원영의 시선을 느끼고 몸을 돌리다 마침 윤재욱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은채는 말문이 막혔고 뭐라고 변명 할 여지도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 대표를 꼬신 상간녀가 된 기분이었다.

은채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들어온 사람이 대표 사모가 아니라 배원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분명 자신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강은채는 조금 피곤해서 소파에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

“엄마, 오늘 지민 오빠 유치원에 안 왔어.”

지유는 약간 우울해하면서 소파로 다가왔다.

“유치원에 안 왔다고? 무슨 일 있나?”

강은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선생님이 오빠가 아픈 것 같다고 하셨어. 엄마가 오빠한테 전화 좀 해보면 안 돼? 나 오빠가 걱정 돼.”

지유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강은채도 마찬가지로 걱정이 됐다.

“지유야, 나중에 오빠한테 전화해볼게. 지금 아저씨가 아직 집에 가시지 않아서 우리도 연락이 안 될 거야.”

강은채의 말이 끝나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강은채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출장 다녀왔어?”

온 사람은 서수연이었다.

“점심에 왔어. 어때. 어제 내가 소개해준 소개팅남 괜찮았지?”

서운연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수연 이모 안녕!”

“귀요미 안녕!”

서수윤의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어 대충 인사를 건넸고, 은채의 대답을 기다렸다.

“소개팅 자리에 나온 사람은 그 남자가 아니었어.”

소개팅 이야기를 꺼내자 강은채는 화가 치밀었다.

“그럼 누구였는데?”

서수연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강은채는 아이를 한 번 쳐다보고, 서수연을 보며 아이가 들을까 봐 주방으로 가서 말하자고 눈치를 줬다.

두 사람은 주방으로 나와 강은채가 저녁을 준비하면서 서수연에게 어제 소캐팅에 대해 얘기했다.

“소개팅 자리에 나온 사람이 이시훈이라고?”

서수연의 얼굴은 놀라움이 가득했다.

“응. 날 한바탕 모욕까지 했어.”

강은채는 아직도 이시훈이 준 수모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 진심을 바쳤지만 돌아온 건 불평뿐이었다.

“모욕? 미친 거 아냐? 안 되겠어. 내가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야겠어.”

“됐어......”

그 불같은 성격으로 이런 일에는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수연은 은채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꺼내 바로 소개팅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소개팅 자리에 안 나올 거면 적어도 말을 해줘야지. 다른 사람을 보내면 어떡해?”

강은채는 서수연을 알게 된 날부터 그녀가 말재간이 좋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수연이 한바탕 퍼부으면 상대방은 끼어들 틈도 없이 욕만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서수연은 실컷 욕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은채야, 미안해. 그 사람이 어제 갑자기 일이 생겼는데 내 전화도 안 받아서 네가 기다릴까 봐 친구를 대신 소개팅 장소로 보냈대. 나도 그 친구가 이시훈인 줄 몰랐어.”

수연의 얼굴은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이번 소개팅이 엉망이 된 데에는 그녀의 책임도 있었다.

“됐어. 다음에는 안 나갈 거야.”

강은채는 담담히 말했다.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겠는가.

“응. 나의 사랑하는 은채얌, 수연이가 정말로 미안해.”

서수연은 강은채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은채가 책임을 묻지 않을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 친구가 이번 일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언제 시간 되면 너에게 직접 사과하겠대. 그리고 다시 소개팅하면 돼.”

“됐어. 또 이시훈을 만나면 그건 내가 스스로 사서 고생하는 게 되잖아.”

강은채는 다시는 이시훈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보면 과거의 상처들이 떠오를 것이다.

4년 전 그녀가 남자 앞에서 무력하게 앉아 있었을 때, 무자비게 수모를 줬었던 이시훈의 전화와, 자신이 돈 때문에 대리모를 했던 일까지 모두 생각날 것이다.

“이시훈이 또 성가시게 굴면 내가 그 사람 회사에 찾아가 전 직원들 앞에서 그를 욕해줄 거야.”

서수연은 은채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힘든 삶을 살고 있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니, 가장 친한 친구로서 그녀가 다시 괴롭힘 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지 마. 그 사람 회사에서 송세희라도 만나면 더 피곤해질 거야.”

강은채는 쓸데없는 일을 벌이기보다는 조용하고 평온하게 인생을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그녀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일 없어. 두 사람 헤어졌는데 어떻게 송세희를 만날 수 있겠어.”

서수연이 확실하게 말했다.

“헤어졌다고?”

강은채는 놀랐다.

송세희가 그렇게 애써서 이시훈을 뺏어갔는데 어떻게 헤어질 수 있었을까.

“나도 얼마 전에 들었어.”

서수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우리 셋이 유학을 마치고 두 달 차이로 귀국하게 되었잖아. 너네 집에 그런 일이 생겨서 네가 먼저 귀국했고, 난 두 달 뒤에 귀국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난 송세희를 본 적이 없었어.”

“송세희는 내가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귀국했어. 걔가 사실은 부잣집의 혼외자식인데 귀국하자 마자 돈 많은 아버지에게 갔다고 들었어. 당시 이시훈 집안의 기업은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고, 송세희의 콧대가 높아져서 이시훈이랑 헤어졌대.”

“난 걔가 어느 집안의 혼외자식인지는 아직도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거고, 게다가 이시훈이 지금까지 솔로라는 거야.”

서수연은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강은채에게 털어놓았고 강은채는 매우 놀랐다. 그러면서도 송세희의 오만함이 떠올라, 혹시 그녀가 윤재욱의 여동생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두 사람은 정말 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인간말종이야.”

그렇게 힘들게 나를 배신했는데, 결국 두 사람이 헤어졌다니. 강은채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너도 너무 신경쓰지 마. 이미 오래전 일이잖아. 더 이상 걔네가 네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

“맞다. 나 올해에 또 5천만 원 넘게 모았는데, 네 빚 아직 못 다 갚았지? 이 돈으로 가서 빚 갚아.”

강은채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서수연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니야 괜찮아. ‘은혜의 집’ 이제 팔 수 있으니 그거 팔면 거의 다 갚을 수 있을 거야.”

강은채는 고개를 돌려 고마운 눈길을 보냈다.

“수연아, 나는 이미 너한테 많이 빚졌어. 네가 몇 년 동안 모은 돈 다 나한테 있잖아. 이제 나도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네 돈은남겨 둬서 네 결혼 자금으로 써.”

“나 시집 갈 돈은 우리 부모님이 이미 다 준비해놨어. 이 돈은 내가 가지고 있어도 필요 없으니 그냥 가져가.”

서수연의 집안 형편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부모님이 모두 의사였고 그녀는 의료기기 방면에 종사하여 생활이 매우 넉넉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돈도 충분해. 최 아저씨 4억과 네 2억만 빼면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어.”

그녀는 한결 홀가분해진 듯 말했다. 아버지가 남긴 빚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그녀는 4년을 거쳐 마침내 거의 다 갚았다.

“은채야, 그 당시 사고 당한 부상자에게 줄 돈은 준비 됐어?”

수연은 여전히 은채가 걱정됐고 오랜 세월 동안 그녀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서수연뿐이었다.

“8억 준비됐어. 다만 계속 부상자와 연락이 안 돼. 전화번호도 이미 없는 번호라고 하고 그때도 만난 적이 없었어. 그쪽에서는 줄곧 변호사가 나섰고.”

강은채는 이 8억을 진작부터 준비했었다. 빨리 이 돈을 주고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풀고 싶었지만, 계속 부상자를 찾지 못했다. 가장 답답한 것은 변호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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