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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머리가 깨질 뜻이 아프다

강은채가 엘리베이터 문을 감상하고 있을 때 갑지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윤재욱을 본 강은채는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욱은 반쯤 웅크린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고,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올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은채가 황급히 일어나 달려갔다.

“윤 대표님, 윤 대표님 왜 그러세요?”

강은채는 당황하여 윤재욱을 부축하면서 그제야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것을 보았다. 평소 조각상처럼 뚜렷하던 냉엄한 얼굴도 핏기를 잃고 있었다.

은채는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윤 대표님, 괜찮으세요? 제가 당장 구급차를 부를게요.”

강은채가 핸드폰을 찾다가 그제야 방금 전 급하게 티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핸드폰을 가지러 나가려 했지만 윤재욱이 그녀를 붙잡아싿.

“구급차 부르지 마. 나 괜찮아.”

“그럼 제가 비서님을 불러올게요.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거에요.”

강은채가 다시 나가려고 하자 윤재욱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 남자 왜 이러는 거야, 구급차도 부르지 말라, 비서도 부르지 말라.’ 제일 화나는 점은 이렇게 아파 보이는데도 힘이 엄청 세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부르지 마.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돼. 날 휴게실로 부축해줘......”

윤재욱은 심한 두통을 참으며 간신히 말을 끝냈다.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강은채는 왜 아무도 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윤재욱이 머리가 깨질 듯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도 마음이 조급했졌다.

강은채는 힘겹게 윤재욱을 휴게실로 부축해 눕히려 했지만 윤재욱의 건장한 몸을 지탱하기 어려워 함께 침대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민망한 건 재욱의 몸 전체가 그녀를 짓눌렀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날 유혹하는 걸 잊지 않고 있네.”

윤재욱의 입에서 비집고 나온 이 말에 강은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빨리 일어나세요. 저 지금 깔려 죽기 일보 직전이에요.”

강은채는 윤재욱을 세게 밀었지만, 그의 몸에서 나는 남자의 향기에 본능적으로 끌렸다.

이 냄새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그녀에게 불쾌함을 안겼고,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냄새가 그녀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재욱은 머리가 아팠지만, 강은채의 몸에 누우니 왠지 모르게 팽팽했던 신경이 많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만의 독특한 냄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부드러운 몸 때문이었을까?

윤재욱은 일어나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재빨리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 여자와 떨어지기만 하면 그의 머리는 다시 터질 듯이 아팠다.

“많이 아프시신가요, 약 있으세요?”

강은채는 옷이 흐트러진 것도 신경 쓸 틈 없이 일어나서 윤재욱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서랍에 있어.”

강은채는 급히 약을 찾으러 달려갔고 서랍에는 약이 한 가지밖에 없었기에 그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을 먹는다고 해서 통증이 바로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 모습을 본 강은채는 안타까운 마음에 침대에 올라가 윤재육 옆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머리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좀 나아지세요?”

강은채가 문지르면서 물었다.

“아니.”

“그럼 제가 마사지 좀 더 해드릴게요.”

강은채는 계속해서 그를 마사지했고 아파서 얼굴이 일그러진 윤재욱을 보며 그녀의 마음속에 뭔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 받아보세요. 두통은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강은채는 문지르면서 타일렀다.

“그럴 필요 없어. 조용히 하고 마시지나 해.”

윤재욱은 이미 많이 나아져서 목소리에 힘이 생겼고, 냉기가 돌기 시작했다.

절대로 약을 먹어서 나아진 게 아니라 이 여자 덕분인 것 같았다. 약은 그의 위에서 아직 녹지도 않았기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강은채는 화가 났다. 지금 그의 머리가 아프지만 않았다면 분명히 그를 걷어찼을 것이다.

강은채는 무슨 말을 해도 결국 화나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지르며 눈을 감고 있는 윤재욱을 내려다보았다. 이 남자는 지나치게 정교하고 입체적인 이목구비로, 눈을 감고 있어도 황홀한 미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자꾸 미간을 찡그려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은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살며시 그의 눈썹을 만졌다. 일그러선 미간을 매만지려 할 때였다.

“거긴 안 아파.”

윤재욱의 갑작스런 냉담한 목소리에 강은채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얼른 손가락을 움츠렸다.

“저......많이 나아지신 것 같으니 저는 먼저 나가볼게요.”

그가 이미 그녀를 놀릴 힘이 있는 이상, 더 이상 그에게 마사지를 해줄 필요가 없었다.

은채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일어나려 했지만, 재욱이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당겨 그대로 그의 품에 쓰러졌다.

재욱은 두 손으로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당신......저......이거 놓으세요. 또 저한테 무례하게 구시네요. 윤재욱 씨, 계속 이러시면 저 일 관둘 거에요.”

강은채는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지만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나 아직 머리가 아파. 좀 더 쉬게 해줘.”

뜻밖에도 이번에 그는 노발대발하지 않았고 마치 병고에 시달리는 아이처럼 따뜻함을 찾고 있었다.

강은채는 온몸이 굳었지만 윤재욱을 계속 밀어내지 않았고 그가 안도록 내버려 두었다.

강은채는 4년 전 어쩔 수 없이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이후로 이렇게 남자와 가까이 접촉한 적이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주변에 남자가 없었기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떨림은 주체할 수 없었다.

윤재욱은 강은채를 품에 안은 순간 의외로 그녀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여자가 자신을 유혹하고 속이려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올 기회를 주었을까.

그녀를 품에 안은 느낌은 너무 특별했고, 포근하며 익숙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곳에서 반응이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심장 박동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욕망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를까 봐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저, 저 이제 일하러 가봐야 해요.”

강은채는 도저히 이 순간의 애매함을 차분히 받아들일 수 없어 아무 핑계나 대고 일어서려 했다.

“아직 업무 보고 하지 않았잖아.”

윤재욱은 목소리를 낮추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욕망을 억눌렀다.

“저, 그럼 제가 나가서 물 좀 가져다 드릴게요. 방금 약 드시고 물도 못 드셨잖아요.”

강은채는 빠르게 일어나 윤재욱의 품에서 벗어났다.

헝크러진 옷차림과 붉어진 얼굴을 정리할 새도 없이, 그녀는 황급히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배원영은 강은채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냉랭한 얼굴로 불가사의한 눈빛을 보내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강은채는 출근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대표의 침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대표의 휴게실은 청소부 외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4년 넘게 대표를 따른 비서인 그녀조차도 휴게실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은채는 달랐다. 심지어 옷이 흐트러지고 얼굴이 붉어진 채 휴게실에서 나왔다. 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 있었다.

“저......”

강은채는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까 윤재욱이 아무도 자신이 두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안 된다고 했던 말만 떠올랐다.

강은채는 그 말을 떠올리며 바로 휴게실 문을 닫았다.

문을 닫고 그녀는 마치 눈 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이 들어 얼른 해명했다.

“대표님께 물 한 잔 갖다드리려구요.”

강은채는 매우 당황했고, 분노가 가득한 배원영의 눈을 보니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이때 윤재욱이 휴게실에서 나와 강은채의 뒤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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