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한국어
챕터
설정

18화 경고를 당했다

강은채는 이번 소개팅으로 기분이 엉망진창이 되어 혼자 운전해 바닷가로 나와 그녀가 늘 앉았던 벤치로 갔다.

바다는 여전히 원래의 그 바다였고 바람이 불 때마다 물보라가 일었다. 벤치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리모델링 후라 그런지 새로웠다.

바다 위의 태양은 여전히 크게 떠 있었지만, 그녀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다.

예전에 부모님이 계셨을 때 그녀와 동생은 정말로 현실 속의 공주처럼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성적도 우수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다재다능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로 여겨졌다.

그때의 그녀는 이시훈이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남자이고 평생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재난이 그녀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남자친구의 마음속에서 사기꾼이 되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몇십억의 빚을 진 가난한 여자가 되었다.

빚을 갚기 위해 한때 자존심 강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대리모를 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멀리 떠나야만 했다.

이렇게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진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비참하게 비난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이시훈, 그녀가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가 고난의 순간에 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그를 미워했고 원망했으며, 그를 쓰레기라고 큰소리로 욕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참았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월요일.

강은채는 출근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쳤다.

그녀는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이미 돌아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보게 됐고, 그녀는 또다시 한 번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다. 그것도 꽃뱀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사기꾼말이다.

“난 너를 보고 싶지 않아.”

강은채는 가방을 한쪽에 내동댕이 치면서 짜증나는 티를 냈다.

“난 너를 보고 싶은데.”

송세희가 태연하게 말했다.

“너 미쳤어? 난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뭘 더 뺏으려는 거야? 송세희, 넌 네가 얼마나 비겁한지 알아? 대체 무슨 염치로 내 앞에 나타난 거야?”

강은채는 순식간에 화가 났다. 어제 이시훈을 만났을 때 그녀는 계속 참고 있었는데, 오늘은 또 송세희가 와서 시비를 걸었다. 이 사람들이 지금 내가 만만하다고 생각해서 번갈아 가며 도발하는 건가?

“난 아무것도 뺏지 않아.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을 가졌으니 네 거를 뺏을 필요도 없어.”

송세희는 의외로 소란을 피우지 않았지만, 그녀의 경멸 어린 말투는 너무도 명확했다.

“그래, 너는 모든 것을 가졌어. 그래서 오늘 자랑하러 온 거니? 그래, 네가 성공했어. 지금 네가 나보다 낫고 네 배경이 나보다 휠씬 강한 것 인정할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가줄래?”

서울에서 윤재욱 다음으로 괜찮은 남자를 만났으니 강은채는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송세희랑 '추억 이야기'를 나눌 기력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송세희가 빨리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랐다.

“강은채, 난 경고하러 왔어. 내 행복을 망칠 생각 하지 말고 내 앞에서 계속 자랑하려고도 하지 마. 지금은 네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가 아니야. 아무도 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거고, 아무도 네가 나대는 걸 도와주지 않을 거야. 이 도둑년, 네가 드디어 인과응보를 받는구나.”

송세희의 예쁜 얼굴은 갑자기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마음이 아직 다 가라앉지 않은 듯 그녀는 계속 말했다.

“강은채, 대학 다닐 때부터 나는 너를 올려다보아야 했고 너는 무엇이든지 나보다 다 잘했어. 넌 그때 비천했던 내가 무슨 심정이었는지 잘 알고 있겠지. 이젠 우리 서로의 처지가 바뀌었으니, 너도 남이 널 내려다보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껴봐.”

송세희는 무자비하게 감정을 털어 놓았다. 수년간 억눌렀던 감정을 풀기 위해, 그녀는 오랜 세월 이 날을 기다린 것 같았다.

“송세희, 양심 좀 챙기시지? 내가 언제 나댔고 언제 너에게 눈치를 줬다는 거야? 내가 공부 잘하고 과제 잘했던 건 내가 노력한 보람이지, 네 것을 뺏은 것도 아닌데 왜 나를 헐뜯는 거야?”

강은채는 분노에 찬 채 이해할 수 없었다. 송세희의 마음이 이렇게나 비뚤어졌을 줄이야. 그녀는 하얀 것도 검은 것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으로 왜곡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 몇 년 동안 그녀는 송세희를 위해 많을 일을 했는데, 돌아온 것은 이렇게 사람을 갉아먹는 배신이었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에서 그녀를 도와주지 않은 것도 모자라, 오히려 그녀의 남자친구까지 빼앗아 갔으니 강은채는 어찌 증오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양심이 없다고? 넌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 남에게 얹혀사는 그런 심정, 너도 한 번 느껴봐야 해.”

송세희는 목소리를 높였고, 눈에는 과거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네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난 여태껏......”

강은채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송세희를 얕잡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송세희는 그녀에게 이런 말들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설사 말을 했더라도 비뚤어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됐어, 내 앞에서 착한 척하지 마. 난 그냥 경고하러 왔어. 지금의 너는 나랑 맞설 능력이 안 되니, 나에게 어떻게 할 생각하지 마. 잘못하면 4년 전보다 더 비참해질 수도 있을 거야.”

“네가 1년 동안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거 알아. 1년 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가.”

송세희가 악을 쓰면서 말했다. 그녀의 오만한 태도만 봐도 지금의 지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었다.

“듣고 보니 너는 내가 돌아와서 복수할까봐 두려운 거구나. 걱정하지 마. 난 너 같은 야망도 없고 너 같은 사람이랑 다툴 생각도 없어. 하지만 더 이상 날 도발하지마. 아니면 나도 네 거, 한 번 뺏어볼 테니까.”

강은채는 전혀 원한을 품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고 누구에게 어떻게 할 생각도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아이와 고모, 그리고 여동생도 있다. 그들이 아무 탈 없이 같이 잘 사는 게 그녀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큰 재난을 겪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안정적인 삶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잘 살고 싶었는데, 누군가가 계속해서 그녀를 도발하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그녀를 궁지에 몰아세우려고 한다면 그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디 한 번 해 봐.”

송세희는 강은채를 노려보고는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갔다.

강은채는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녀 곁에 있었던 잠재적인 위험을 몰랐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김 팀장이 출장을 갔기 때문에 점심에 강은채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대표실에 가서 요 며칠 동안의 주요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배 비서님, 윤 대표님 안에 계신가요, 저 업무 보고할 게 있어요.”

강은채는 배원영에게 물었고, 그녀는 윤 대표가 자리에 없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강은채는 정말 진심으로 윤재욱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님 오후 1시에 출근하십니다. 아직 5분 남았으니, 강 부장님은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배원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전 그냥 밖에서 기다리다가 대표님이 오시면 같이 들어갈게요.”

강은채는 남에게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대표실에 사람이 없으면 그녀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

“대표님께서 타시는 전용 엘리베이터는 사무실 안쪽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대표님은 밖으로 다니시지 않습니다.

강 부장님, 들어가세요.”

배원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면서 대표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재욱은 평소 자신이 없을 때 그 누구도 그의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습관이 있었고, 권 비서와 배원영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윤재욱은 뜻밖에도 강은채가 오면 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분부했다.

그래서 배원영의 얼굴에 온기가 없었던 것이다.

강은채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문이 닫혔다.

그제서야 그녀는 윤재욱의 사무실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사무실은 꽤 넓었고 인테리어 스타일도 독특했다.

의자에 앉으려면 고급진 목재 계단을 두 걸음 올라가야 했고, 큼지막한 원목 책상은 삼면이 책꽂이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책꽂이에는 각종 책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창가도 책장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런 냉정한 남자에게도 지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았다. 독서를 좋아하다니.

강은채는 가죽 소파로 가서 단정하게 앉았다.

뒤편 창가 옆이 바로 엘리베이터 문이었고 엘리베이터 문은 실내 인테리어와 잘 어울러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엘리베러터인 줄도 몰랐다.

지금 앱을 다운로드하여 보상 수령하세요.
QR코드를 스캔하여 Hinovel 앱을 다운로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