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대표 사무실을 나선 강은채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채는 정신을 차리고 모르는 척하며 엘리베이터에 들어갔지만, 그 여자는 나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오랜만이에요.”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만한 목소리였다.
“…”
은채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이 사람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인물이었다.
“은채 씨,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여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은채의 침묵에 화를 냈다.
“그냥 모르는 척하죠. 당신 같은 사람과 대화하는 게 너무 역겨워요.”
은채는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증오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만났을 때 그 증오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음을 알았다.
“은채야...”
여자는 분노에 차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바로 그때 엘리베이터는 25층에서 멈췄고, 은채는 여자의 분노를 무시하고 결연히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이 도시로 돌아오기 전, 은채는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과 다시 만날 것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다. 그녀는 확실히 당황했다.
한때 이시훈과 어려운 시기에 이별한 이유는 방금 만난 그 여자 송세희 때문이었다. 한때는 수연이와 같은 가장 친한 친구였고, 함께 대학교를 다니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유학도 떠났지만, 결국 송세희는 강은채를 배신했다.
송세희는 분노와 의심을 품고 30층으로 올라갔다. 남편을 위한 세탁물을 들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직접 가지 않고 비서실로 향했다.
“방금 나간 그 여자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어요?”
세희는 다소 거만하게 물었다.
“여자요? 혹시 은채 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배 비서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세희가 누구를 말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맞아요, 강은채.”
송세희는 성급하게 답했다.
“은채 씨는 현재 우리 회사에서 근무 중입니다. MT 본사에서 파견된 수석 엔지니어세요.”
“여기서 근무한다고요?”
세희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은채 씨 이력서를 가져오세요.”
거의 명령처럼 세희는 매우 강압적이었다.
“죄송하지만 사모님, 대표님 허락 없이는 직원의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대표님께 직접 문의하셔야 합니다.”
배 비서는 세희의 태도에 익숙한 듯 보였고, 그녀의 강압에 전혀 굴복하지 않았다.
“배 비서... 내가 재욱 씨한테 당신을 해고하라고 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아요?”
세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으려 했지만, 재욱의 사무실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탁물을 먼저 드리고 가세요.”
배 비서는 침착하게 말하며 세희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위협은 그녀가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세희는 불쾌하게 세탁물을 쳐다보며 배 비서를 향해 냉랭한 시선을 보낸 후,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
대표 사무실의 문을 열자 세희의 분노와 강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정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변했다. 완벽한 연기를 하는 듯했다.
“여보, 옷을 가져왔어요.”
송세희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하게 변해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재욱의 차가운 경고의 눈빛이 그를 겨냥했다.
“미안해요, 깜빡했어요.”
세희는 즉시 말투를 바꾸며 차분하게 말했다.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집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어요. 오늘 아침에 비서가...”
“옷은 거기 두고 가.”
재욱은 단호하게 송세희를 쫓아내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
“알겠어요, 여기 소파 위에 두고 갈게요.”
세희는 물건을 두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내일은 주말이니까, 지민이 데리고 나가 바람이라도 쐐요. 계속 집에만 있게 할 수는 없잖아요.”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당신이 혼자 데리고 나갔다 와.”
재욱은 냉정하게 말하며, 목소리에는 온기조차 없었다.
“지민이 할아버지 댁에 있는데, 할아버지가...”
세희는 재욱의 단호한 태도를 무시하고 계속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재욱의 분노를 마주해야 했다.
“그 일들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잖아.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나가.”
윤재욱은 눈빛에 분노를 담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찮은 여자는 딱 질색이었다.
송세희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고, 강은채에 대해 묻지도 못한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퇴근 후, 은채는 곧장 유치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지민이를 만났다.
“지민아.”
딸보다 먼저 지민을 부르며 다가갔다.
“아줌마!”
윤지민은 은채를 보고 얼굴에 있던 우울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는 이제 지민 오빠가 더 좋아?”
강지유는 의도적으로 입술을 삐죽이며 느릿느릿 은채에게 다가갔다.
“아니야, 엄마는 너희 둘 다 좋아. 지민 오빠가 너를 잘 챙기니까 엄마가 지민이를 예뻐하는 건 당연하지.”
은채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이 아이를 보면 사랑스럽고 아껴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도 아줌마가 좋아요.”
“엄마, 제 생일이 언제예요? 아저씨가 지민 오빠와 제 생일이 비슷하다고 했어요. 혹시 제가 누나일지 알아요?”
은채와 지민이 서로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지유는 질투심에 급히 화제를 돌렸다.
“생일? 지유 너는 1월 23일이야.”
은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1월 23일? 이모, 제 생일도 1월 23일이에요.”
지민이 신나서 말하더니 지유를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우리는 같은 날 태어났어. 네가 꼭 누나일 수는 없어. 그래도 나를 오빠라고 불러, 내가 너를 보호해 줄게.”
지민은 자신이 지유보다 어리더라도 오빠가 되어 보호하겠다는 마음에 자랑스럽게 말했다. 두 아이는 누가 더 큰지 작은지 논쟁을 벌였고, 강은채는 지민이의 생일이 지유와 같다는 말에 놀랐다.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나다니, 인연일까, 우연일까?
“됐어, 너희 그만해. 지민이가 오빠고 지유는 동생이야.”
은채는 미소를 지으며 두 아이의 논쟁을 막았다.
“지민아, 오늘 누가 데리러 와? 아빠가 와 아니면 엄마가 와?”
은채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지민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민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빠는 한 번도 데리러 오신 적이 없어요. 항상 바쁘시거든요.”
지민은 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슬퍼했다.
“그럼 엄마는?”
은채는 지민의 우울한 표정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가 얼마나 아빠를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도 저를 데리러 안 와요. 저도 엄마가 오는 건 싫어요.”
엄마에 대해 말하자, 지민은 약간 반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왜?”
은채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부모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를 한 번도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요. 주말에 아빠가 집에 있을 때만 집에 가고, 아빠가 출장을 가면 할아버지 집에 계속 있어요. 항상 할아버지의 집사님이 저를 데리러 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