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침대 위의 또 다른 사람
저녁, 호텔 VIP 룸에서 강은채의 환영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은채는 기분이 좋았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강 부장님, 제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협력 부탁합니다.”
김 팀장은 이미 술에 취해 있었고, 몇 잔째 권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걱정 마세요, 김 팀장님. 협력엔 문제 없을 겁니다.”
은채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같은 말을 몇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은채 언니, 저도 한 잔 드릴게요. 언니한테 많이 배우고 싶어요. 저도 언니처럼 유능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거든요.”
밝에 웃으며 말하는 이는 윤씨그룹에서 은채에게 배정된 조수, 도예지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지만,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그래, 열심히 하면 나보다 더 훌륭해질 수 있을 거야.”
은채에게 도예지는 동생 같은 존재였다. 은채가 말을 마치자, 누군가 외쳤다.
“윤 대표님! 윤 대표님이 오셨습니다!”
모두가 문 쪽을 바라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은채도 돌아보았고, 재욱이 실제로 나타난 것을 보고 약간 실망했다.
“윤 대표님.”
맨 마지막에 김 팀장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재욱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재욱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엄숙한 표정은 방 안의 흥을 단번에 가라앉혔다.
재욱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고, 강은채도 그의 옆에 앉았다. 은채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을 보며, 재욱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모두 앉으세요. 제가 온 것은 윤 씨 그룹을 대표해 강 부장님을 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윤 대표님, 잠깐만요. 방금 강 부장님이 회사 밖에서는 은채라고 부르라고 하셨어요. 대표님도 은채라고 부르시면 돼요.”
김 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고, 만약 맑은 정신이었다면 재욱의 말을 함부로 끊을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욱은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은채 씨.”
“윤 대표님,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단 직원이 대표님의 환영을 받다니 큰 영광입니다.”
은채는 무심한 듯 답했다. 지난 번의 교훈 덕분에 오해를 사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다.
“그럼 한 잔 마시죠.”
재욱이 말하며 옆에 있던 조수가 술을 준비했다.
“저, 윤 대표님...”
은채가 거절하려던 순간, 김 팀장이 다시 한 번 끼어들었다.
“강 부장님 저희 술은 안 마셔도 되지만, 윤 대표님의 술은 꼭 마셔야 합니다. 보통 누구에게도 술을 권하지 않거든요.”
김 팀장의 말에 은채는 거절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한 잔 마시겠습니다.”
그러나 이 한 잔이 시작된 후에는 멈출 수 없었다. 술이 계속 들어가면서 본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은채의 얼굴이 붉어지고 뺨에는 연한 홍조가 돌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윤재욱은 은채의 매력적인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결국 은채는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재욱은 그녀를 부축해 그녀의 가방을 뒤지다가 겨우 집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은채야 들어왔...”
문 소리에 서수연과 강지유가 다가왔고 강은채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기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이래요? 취한 건가요?”
서수연은 남자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재욱은 대답 없이 은채를 소파에 눕혔다. 이때 수연의 전화가 울렸다.
“응 엄마.”
“알겠어, 걱정하지 마. 곧 들어갈게.”
수연은 전화를 끊고, 초조한 표정으로 재욱에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 가봐야 돼요. 은채랑 지유 좀 부탁해요.”
수연은 남자가 누구인지도 신경 쓰지 않고, 말만 남기고 급히 사라졌다.
“아저씨, 엄마가 많이 취했어요?”
지유가 재욱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조금 마셨어.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거야.”
재욱은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저씨, 엄마를 침대에 눕혀 주세요. 여기서는 불편할 거예요.”
지유는 애써 보았지만 힘이 부족해 결국 재욱에게 도움을 청했다.
"..."
재욱은 냉담한 표정으로 은채를 부축해야만 했다. 그러나 은채는 전혀 협조하지 않았고, 결국 재욱은 그녀를 들어 올려 침대에 눕혔다.
"엄마 옆에서 자. 시간이 늦었으니 아저씨는 이제 가볼게."
재욱은 은채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떠나려 했다.
"아저씨."
지유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재욱을 멈춰세웠다.
"저 혼자 자는 게 무서워요. 제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줄 수 있나요?"
간절한 지유의 눈빛에 재욱은 떠나지 못하고 다시 침대 옆에 앉았다.
"자리에 누워. 네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줄게."
"고맙습니다, 아저씨."
지유는 기쁜 얼굴로 재욱의 손을 잡고 침대 옆으로 이끌었다.
"아저씨, 여기 앉아 주세요. 제가 잠들 때까지요."
지유는 엄마 옆에 누웠고, 재욱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눈 감고 빨리 자."
재욱은 말하면서도 지유가 왜 계속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빠 같아요."
지유의 갑작스러운 말에 재욱은 강은채와 강지유, 둘만의 생활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빨리 자."
재욱의 목소리는 현저히 누그러졌고, 그 역시 냉정하고 무관심한 성격임에도 이렇게 기대 가득한 아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 은채는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모든 것이 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지유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대표님이 왜 여기 계세요?"
강은채는 지유를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재욱은 왜 여기 있는지, 어떻게 잠들게 되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는 낯선 곳에서는 잠들기 어려운 사람인데 말이다.
"대표님..."
은채는 어젯밤의 일을 기억해내려 했지만, 결국 필름이 끊겼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다.
은채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이 여전히 어젯밤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재욱의 옆으로 가서 그를 침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윤 대표님, 어젯밤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기서 주무시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이유든 집으로 가셨어야 했어요."
강은채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늘 남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킬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수로 재욱이 그녀의 침대에서 잠들어 버렸다. 이 소문이 퍼지면 은채가 대표님의 세컨드라는 말이 돌게 될지도 몰랐다.
"곧 갈 겁니다. 저도 은채 씨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거든요. 특히 은채 씨 같은 돌싱녀와 엮이는 건 더더욱 원하지 않습니다. 은채 씨 친구분이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해서 저한테 은채 씨와 따님을 부탁하고 갔을 뿐이에요."
재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은채의 다소 흐트러진 모습을 응시했다.
"윤 대표님,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제가 돌싱인 건 맞지만, 저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다니요? 저 그렇게 엉망인 사람 아닙니다. 그리고 대표님에게도 전혀 관심 없어요."
은채는 재욱의 능력은 인정했지만, 남자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오래전에 끊었다. 특히 가정이 있는 남자와는 더더욱 엮일 생각이 없었다. 재욱이 자신을 이렇게 깎아내리자, 은채는 몹시 화가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