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가족과 약속한 날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결혼식 준비를 떠맡는 일은 내 심장을 몇 번이고 능지처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영혼 빠진 꼭두각시처럼, 가장 전문적인 기준으로 하나하나 일을 처리했다.
벨라가 좋아하는 항공 화이트 로즈를 골라 주문했고, 최고급 경호팀을 섭외했고, 하객 동선을 가장 완벽하게 짰다.
모든 단계가 정확했고, 효율적이었고,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나만 알았다. 펜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전화를 한 통 할 때마다, 심장이 둔탁한 칼에 천천히 썰리는 것처럼 아파 온다는 걸.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결혼식을 내 손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내 심장도 내 편을 들어 주듯 하루가 다르게 더 아파졌다.
이틀 동안 최종 플랜을 정리한 뒤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 위에 펼쳐진 도면과 서류를 한 항목씩 다시 확인했다.
창밖은 어느새 어둑해졌고, 나는 따끔거리는 눈을 비볐다.
그때 갑자기, 심장에서 날카롭고도 처음 겪는 통증이 치고 올라왔다.
"윽…"
낮게 끙 소리가 새어 나왔고,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몸을 앞으로 접었다.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파도처럼 덮쳐 왔고, 눈앞이 여러 번 까맣게 꺼졌다 켜졌다.
목구멍까지 비릿한 무언가가 확 치밀어 올랐다.
"푸욱—"
아무 예고도 없이 피가 한 모금 튀어나왔고, 마침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최고급 실크 웨딩드레스 샘플 위로 그대로 쏟아졌다.
하얗게 빛나던 드레스 위로 새빨간 핏물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고, 흉측하고 절망적인 꽃 한 송이처럼 번져 갔다.
"꺄아악—!"
귀를 찢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벨라가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내 피로 더럽혀진 웨딩드레스를 가리키며 질겁한 얼굴을 했다가, 곧 증오로 일그러졌다.
"이 년, 일부러 그런 거지! 에드가! 빨리 와 봐! 이 악독한 년이 내 웨딩드레스를 망쳐 놨어!"
"우리가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거야, 결혼식까지 망치려는 거라고!"
"나 아니야…"
해명하고 싶었지만, 더 많은 피가 목까지 치밀어 올라와 격하게 기침이 터졌고, 제대로 말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와중에 잡아떼?"
벨라는 성큼 다가오더니, 내 창백한 얼굴과 입가의 피를 확인하고는 눈빛에 더 진한 악의를 띠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클러치백에서, 번쩍이는 단도를 하나 꺼냈다.
흑요석과 다이아가 박힌 특이한 손잡이의 칼이었다.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열여덟 살 때, 첫 임무 보너스를 모아 가장 뛰어난 장인을 찾아가 석 달 동안 디자인 끝에 만들어 낸 나만의 단도였다.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가볍고도 날카로웠고, 손잡이 라인은 내 손에 딱 맞게 깎아 둔 물건이었다.
그날 나는 그 칼을 에드가 생일 선물로 내밀었다.
'이게 나 대신 널 지켜 줬으면 좋겠어.'
그랬다.
지금 그 칼은 벨라 손에 쥐어져 있었고, 칼끝은 나를 향해 있었다.
"에드가가 네가 준 이 '기념품'을 나한테 줬거든."
벨라는 단도를 손가락 사이로 굴리며 달콤하게, 그러나 독하게 웃었다.
"그냥 흔한 장난감일 뿐이래, 내가 마음에 들면 갖고, 아니면 버리라더라."
흔한…
시선이 칼날에 떨어졌고, 머릿속이 순식간에 몇 년 전 그 오후로 끌려갔다.
들뜬 마음으로 칼을 내밀었을 때, 잠깐 스쳤던 그의 놀라움과… 아마도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를 부드러움까지 함께.
이어지는 발소리가 내 생각을 잘랐다.
고개를 들자, 벨라 눈에 섬광처럼 독기가 번쩍였다. 그녀는 단도를 쥔 손을 홱 뒤집더니, 자기 팔에 그대로 그어 버렸다.
깊진 않았지만 피가 바로 솟아올라 하얀 드레스 자락을 붉게 물들였다.
"꺄악! 에드가! 쟤가 나 죽이려고 했어!"
벨라는 단도를 바닥에 내던지고 상처를 움켜쥔 채,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척 에드가 쪽으로 쓰러졌다.
"칼로 나를 찌르려고 했어! 봐, 칼에 피도 묻어 있잖아! 결혼식 전에 나를 치워 버리려고 한 거라고!"
바닥에 굴러 떨어진 단도 끝에는 선명한 핏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녀 팔에서 흐르는 피, 웨딩드레스 위의 피까지 모두, 표면적으로는 내게 죄를 씌우는 증거처럼 보였다.
벨라를 부축한 에드가는 나를 보는 눈빛에서 온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칼바람 같은 냉기와 치명적인 실망만 남아 있었다.
"엘사, 정말… 실망스럽네."
그는 더 이상 어떤 설명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책상과 바닥을 물들이고 있는 피며 내 창백한 얼굴에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은 채, 소리 듣고 달려온 부하들에게 곧장 명령을 내렸다.
"지하실에 가둬. 규칙대로, 정신 차릴 때까지 '반성'하게 해."
앞으로 나온 두 부하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나와 에드가를 따라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잠깐 망설임과 안쓰러움이 스쳤지만, 에드가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엘사 씨."
한 명이 코끝이 붉어진 채 낮게 중얼거리면서도, 동작만큼은 단단히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끌리듯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하실로 향했다. 우리가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함께 보냈던 곳이자, 동시에 내가 도구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감옥 같은 공간.
무거운 철문이 등 뒤에서 닫히며, 빛을 잘라 냈고,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함께 잘라 냈다.
차갑고 탁한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어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엘사 씨."
조금 전 말하던 부하가 눈가가 붉어진 채, 얇고 예리한 소형 칼을 꺼냈다.
"보스 지시입니다. 최고 수위로 처벌해서… 고생 좀 시켜서, 정신 차리게 하라고."
어떤 절차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배신자나 중범죄를 저지른 핵심 인원에게만 시행하는 사형보다 잔인한 형벌, 칼로 살을 얇게 긋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는 형.
결국 그 남자가, 사랑하는 약혼녀를 위해 나한테 이걸 택했다.
나는 살려 달라고 울부짖지도, 발버둥도 치지 않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차가운 칼날이 피부에 닿고, 미끄러지듯 가르기 시작했다.
불꽃 튀는 통증이 선명하게 달려들었다.
한 줄, 또 한 줄…
팔과 등, 다리에 가느다란 상처들이 촘촘히 새겨졌다.
따뜻한 피방울이 스며 나와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소금.
거친 알갱이들이 가차 없이 생살 위로 뿌려졌다.
불에 던져진 것처럼 타들어 가는 고통이 신경줄을 죄다 훑어 내려갔다.
심장까지 덩달아 나를 괴롭혔다.
목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듯, 네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똑똑히 봐라, 하고 날 고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지만, 목 깊은 데서 흘러나온 신음은 결국 막지 못했고,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순식간에 옷을 다 적셨다.
형을 집행하는 부하는 얼굴을 돌린 채 손이 떨리면서도, 손을 멈추지 못했다.
더 많은 소금, 더 깊은 절망.
시간은 끔찍하게 느리게 흘러갔다.
숨 쉬는 순간마다 형벌 같았다.
의식이 흐려질 때까지, 몸은 본능적인 경련과 터져 나오는 끊어진 신음만 남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어느 순간, 드디어 형벌이 멈췄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걸레처럼 축 늘어진 채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에 내던져졌고, 상처는 불에 덴 듯 쓰라렸고, 몸에는 힘이 한 톨도 남지 않았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수없이 갈라진 상처들이 함께 욱신거렸다.
"보스가… 내일은,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부하의 목소리는 쉰 소리에 콧물이 섞여 있었고, 그는 서둘러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다시 죽은 듯한 정적만이 남았다.
피비린내와 어둠 속에 누운 채, 남아 있는 의식은 하나의 생각만 붙들고 있었다.
버텨, 엘사.
내일까지만 버티면 돼. 여기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