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산업단지에 도착한 나는 내가 그려 온 요구 사항과 스케치를 현장 소장 데이브에게 내밀었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그 자리에서 바로 팀을 불러 컴퓨터로 3D 조감도를 뽑게 했다.
그 회사 시스템은 이미 완전히 자리 잡혀 있었다. 나랑 아빠는 곧바로 한도 없는 신용카드를 한 장 건넸다.
우리는 필요한 자재 목록을 자세히 적어 넘겼다. 철골이랑 콘크리트, 태양광 패널 같은 기본 자재에서부터 구역을 어떻게 나눌지까지 하나하나 정확하게 요구했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외벽이랑 출입 통제 시스템을 군용 최고 방폭 등급 기준으로 시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데이브, 우리 요구만 최대한 빨리 맞춰 주면, 돈은 진짜 문제가 안 돼."
데이브는 카드를 받아 들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소집하기 시작했다.
인부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공사에 들어갔다. 낡은 석면 판넬을 걷어 내고 새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고, 공사장은 금세 불이 붙은 것처럼 분주해졌다.
아빠는 설계도를 받아 들고 배수 시스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리고 데이브를 보며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여긴 시 하수도에 바로 연결하지 말고, 독립된 바이오가스 순환 시스템으로 바꿔 줘."
나는 바로 아빠 의도를 알아챘다. 바이오가스면 발전도 할 수 있고 난방도 가능했다.
그래서 곧바로 말을 이었다. 단지 맨 구석 지하에 초대형 지하 벙커를 하나 더 파서, 우리가 쓸 비축 창고이자 마지막 피난처로 쓰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빠는 즉시 건설회사 본사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수십만 달러 규모의 예산을 추가로 얹었다.
그는 인력을 두 배로 늘리고 삼교대로 돌려서, 무조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공사를 끝내 달라고 요구했다.
아빠 자본이 뒤에서 버티고 있으니, 역시 일이 두 배는 빨리 풀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그 회사의 최우선 VIP 고객이 됐다.
회사에서는 인부들을 더 많이 투입했고 속도는 놀랄 만큼 빨라졌다. 벙커를 파고, 창고를 보강하고, 방폭문을 설치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원래는 낡고 방치됐던 산업단지가 완전히 딴곳처럼 변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지하 벙커였다. 모든 생활 구역에서 비밀 통로를 통해 지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지상은 이미 삼중 방어선까지 갖춰 둔 상태였다. 그래도 피난로를 하나 더 만들어 두는 편이 언제나 안전했다.
그날, 소장 데이브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우리에게 물었다.
"사장님, 이 지하 공간이면 웬만한 아파트 한 동은 짓고도 남겠는데요. 정말 이렇게까지 크게 만드셔야 해요?"
아빠는 머리 회전이 빨라서 곧장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장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중을 보고 미리 준비해 두는 거지. 먼저 땅부터 잡아 놔야 나중에 편해."
인부들은 알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했다.
이쪽 공사는 완전히 궤도에 올랐다.
나는 다시 엄마에게 물자 구매 리스트를 보여 줬다. 엄마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내 목록에서 몇 가지를 쓱쓱 지워 버리고, 훨씬 더 전문적인 새 리스트를 다시 작성했다.
주식은 장기 보관이 가능한 진공 포장 쌀과 밀가루로 바꾸고, 주문할 때마다 기본이 수백 파운드였다. 압축 비스킷, 군용 전투식량, 각종 통조림, 항생제, 응급 약품, 생필품은 아예 컨테이너 단위로 들여오기로 했다. 거기에 대량의 냉동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사서, 수백 대의 대형 냉동고를 구매해 꽉 채워 넣을 계획까지 세웠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엄마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네 말대로라면 나중에 물이랑 전기, 인터넷이 전부 끊긴다는 소리잖아. 우리는 진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해. 병아리랑 사료도 왕창 더 사 오자. 어차피 공간은 넉넉하니까 우리끼리 직접 키우는 거야."
"아빠, 엄마,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날 믿어 줘서 고마워. 나 먼저 집에 좀 다녀올게. 마크한테 우리 준비를 들키면 안 돼."
"우리 딸,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몸부터 잘 챙겨. 아빠랑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야. 여기 일은 걱정 말고 수시로 연락만 해."
신혼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휴대폰으로 건설회사에서 보내 온 최종 설계도를 받았다. 꼼꼼히 한 번 훑어 본 다음, 시공팀에게 모든 내벽과 외벽에 강철 판을 한 겹씩 더 덧대라고 지시했다.
우리가 만들 요새는 거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라 좀비가 산등성이를 넘어오기도 쉽지 않았다.
단지 전체 부지가 워낙 넓어서 설계를 다 끝내고 보니, 바깥은 1차 방어선이었고 내부는 방어 구역이 겹겹이 포개진 구조였다.
거기에 이중 돔 구조와 자연 공기 순환 시스템까지 갖추면 나중에 외부에서 물이나 전기 공급이 완전히 끊겨도 우리는 충분히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전체 설계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마음이 놓였다. 아직도 보름 넘게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도면을 다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바로 그때, 신혼집 현관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원래라면 이 시간에 마크가 집에 올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애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