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절벽 아래 흩어져 사라진 물보라를 바라보던 이세미는 갑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수현 씨…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하린 씨 걱정하느라 너무 급해져서…"
방금 전까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강수현도, 그녀의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보자 표정이 서서히 풀렸다. 마침내 그는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됐어. 세미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의 대화조차 제대로 들을 힘이 없었다.
의식이 파도처럼 출렁이며 까맣게 가라앉았고, 숨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때 강수현이 절벽을 따라 내려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고 억지로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다.
"최하린, 정신 차려. 들려? 내가 널 끌어 올릴게."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온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밀어내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얼굴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를 덮치는 건 따뜻함도 걱정도 아닌 차갑고 깊은 혐오뿐이었다.
바로 그때, 이세미의 목소리가 독침처럼 파고들었다. "수현 씨, 이러면 안 돼요. 아직 저한테 사과도 안 했잖아요… 게다가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어요. 다들 베팅도 했고요. 하린 씨를 그냥 끌어 올리면…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요? 수현 씨가 진 거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 한마디에 강수현의 눈빛이 즉시 어두워졌다. 그리고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최하린. 세미한테 사과해. 그러면 여기서 끝낼게. 지금 바로 끌어 올려주겠다."
나는 남은 힘을 몽땅 짜냈다.
입술이 갈라진 채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꿈 깨."
그리고 내 온 힘을 모아 그를 밀쳐냈다.
힘없는 몸으로 내뿜은 저항은 우스울 만큼 미약했지만, 그 안에는 내 모든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강수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철빛으로 굳어졌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얼음처럼 차갑게 명령했다.
"저 상태로 오래 못 버틴다. 잡아 눌러. 무릎 꿇리고 사과하게 해."
곧바로 경호원 두 명이 로프를 타고 내려왔고,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무게가 실린 순간, 날카로운 바위가 무릎 밑에서 살을 파고들었고, 차갑고 잔혹한 고통이 뼛속까지 전달되며 내 몸을 억지로 굽혀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그 순간 이세미가 겉으로는 놀란 척 외쳤다. "조심하세요!"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위에서 몸을 날리듯 내 쪽으로 들이받았다.
내 얼굴 절반이 그대로 얼음처럼 차가운 바위에 짓눌렸다.
거칠고 단단한 표면이 피부를 그대로 뜯어냈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입가까지 번지며 쇠맛이 퍼졌다.
숨이 막히는 압박과 칼날 같은 통증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얼굴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내 귓가에 속삭였다.
"처음부터… 널 여기서 살아 보내줄 생각 따위 없었어."
정신이 아득해지고, 의식이 무너져 내리려는 바로 그 순간, 하늘이 우르르 터지듯 엄청난 굉음이 내려앉았다.
헬리콥터의 로터가 절벽 전체를 흔들 만큼 강풍을 일으키며 회전했고, 그 바람을 맞은 이세미는 중심을 잃고 뒤로 비틀거리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
헬기에서 한 남자가 로프를 타고 전속력으로 내려왔다.
군용 부츠가 바위를 치며 돌가루가 원처럼 튀어 올랐다.
동작 하나하나가 날카롭고 정확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그의 뒤를 따라 검은 전투복을 입은 팀원들이 물결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그들은 이세미를 그대로 밀쳐냈고, 이세미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하며 비명이 튀어나왔다.
남자는 곧장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내 몸을 암벽에서 떼어내듯 가볍게 끌어올렸다.
넓은 가슴에서 전해지는 규칙적인 심장박동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그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최하린, 도대체 무슨 꼴을 만들고 다닌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