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남편의 비서가 내게 암벽 등반을 배우다 다쳤고, 그 일로 남편은 나를 높이 100미터 절벽에 매달아 놓았다. 유명한 해안 절벽 루트를 도전하는 암벽등반 캠프를 이끌던 날, 남편의 비서 이세미가 함께 따라왔다. 출발 전에 나는 몇 번이고 말했다. 등반화로 갈아 신고, 하네스와 헬멧은 반드시 착용하라고. 하지만 이세미는 끝까지 말을 안 들었다. 도시에서 막 넘어온 사람처럼 멋부린 부츠에, 그냥 캐주얼 바지 차림 그대로였다. 결과는 뻔했다. 코스의 3분의 1쯤 올랐을 뿐인데 이미 숨이 턱까지 차 있었고, 손바닥에는 피가 배어 나온 물집이 줄줄이 터져 있었다. "저 좀 끌어 올려 줄 수 있어요? 진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이세미가 내게 매달리듯 애원했다. 나는 예비 슬링 하나를 건네며 달랬다. "앞으로 5미터만 더 가면 턱이 있어요. 거기 올라가서 쉬게 해 줄게요. 그다음엔 사람을 보내서 밑으로 내려보낼 거예요." 결국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못해 나와 함께 더 올라갔다. 다음 날, 남편 강수현이 그 일을 알고는 싸늘하게 물었다. "이세미가 고열 난 채로 집에 갔다가, 결국 병원에 실려 간 거 알아?"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낙차 60미터 넘는 코스라고 설명했잖아. 20미터도 못 버티면서 왜 그렇게까지 해서 오려고 한 거지?" 강수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래, 네 말이 맞지. 고생 많았어." 그러곤 내 앞에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그걸 마신 뒤, 나는 깊은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절벽 중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손은 밧줄에 묶인 채, 금방이라도 뜯겨 나갈 것 같은 확보 지점에 겨우 연결되어 있었고, 발끝 아래로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출렁거렸다. 조금 떨어진 전망대 위에는 강수현이 이세미를 끌어안은 채 서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암벽 등반 그렇게 잘한다며… 그럼 이번엔, 맨손으로 저 위까지 기어 올라오는지 한 번 볼까." 설마 그가 그 자리에서 라이브 방송을 켤 줄은 몰랐다. 유튜브 생방송과 틱톡으로 내 상황이 그대로 송출되었고, 순식간에 전 세계 수많은 시청자가 내 처절한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됐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무전기를 끌어당겨, 기억해 둔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구경 그만하고, 날 데리러 와. 지금 당장."
제1화
남편의 비서가 내게 암벽등반을 배우다 다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나를 백미터 절벽에 매달아 버렸다.
내가 운영하는 암벽등반 캠프 멤버들을 데리고 유명한 해안 절벽 루트를 도전하러 갔을 때, 남편의 비서 이세미도 따라왔다. 시작 전에 등반화로 갈아 신고, 하네스와 헬멧은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그녀는 굽 낮은 부츠와 캐주얼 바지를 고집했다. 결국 우리는 전체 루트의 3분의 1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숨이 차서 말을 잇지 못했고 손바닥에는 피가 배어 나올 만큼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나 좀 끌어올려주면 안 돼요? 진짜 더는 못 하겠어요."
이세미가 거의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매달렸다.
나는 예비 슬링을 건네며 진정시키려 했다. "앞으로 딱 5미터만 버티면 돼요. 바로 위에 쉴 수 있는 턱이 있어요. 거기 올라가면 사람 불러서 내려가게 해줄게요."
그녀는 마지못해 나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다음 날, 남편 강수현이 이 일을 알게 되자 차갑게 따져 물었다. "이세미가 집에 돌아가자마자 고열로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간 거 알아?"
나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말했잖아. 이 코스 낙차가 60미터가 넘는다고. 20미터도 못 버티던 사람이 왜 굳이 오르겠다고 한 거야?"
강수현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네 말이 맞아. 너도 고생 많았겠다."
그러고는 커피 한 잔을 건넸다.
나는 그 커피를 마신 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뜬 순간, 나는 절벽 중턱에 매달린 상태였다. 손은 허술한 확보 지점에 밧줄로 묶여 있었고, 두 다리는 아래로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 위에 공중에 떠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전망대 위, 절벽 끝에 선 강수현은 이세미를 품에 안은 채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반을 그렇게 잘한다면서? 그럼 맨손으로 꼭대기까지 다시 올라오는 거, 한번 보여줘봐."
그는 심지어 이 장면을 유튜브 라이브와 틱톡으로 생중계까지 하고 있었다. 수많은 시청자가 내가 절벽에 매달린 채 필사적으로 버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무전기를 잡아 번호를 눌렀다.
"보고만 있지 말고… 당장 와서 나 좀 꺼내."
...
바닷바람은 칼처럼 뺨을 베어갔고, 절벽 끝을 감도는 축축한 공기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아래에서는 파도가 절벽을 두들기며 죽음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라이브 채팅창은 눈 돌아갈 만큼 빠르게 올라갔다.
[자, 베팅 드가자! 난 두 시간도 못 버틴다에 한 표!]
[저 높이에서 맨손으로 올라오면 내가 밧줄 씹어먹는다.]
그들은 한 명의 인간이 망가져가는 장면을 기다리는 듯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강수현은 절벽 정상의 전망대 끝에 걸터앉아 이세미를 품에 안은 채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와인을 건네고 있었다. 잔을 타고 흘러내린 차가운 물방울이 바람을 맞으며 반짝일 때, 그건 갈라질 만큼 바짝 마른 내 입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느긋하게 아래를 내려보며, 밤바람만큼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 네 힘으로 올라오든가, 아니면 세미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든가."
이세미는 눈을 내려 깔고, 동정과 난처함이 섞인 척했다.
"수현 씨, 됐어요… 제가 너무 약해서 하린 씨한테 폐만 끼친 거예요."
그 여린 표정이야말로 그녀가 늘 써먹는 무기라는 걸 나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역시나, 강수현의 눈빛은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순진한 척 그만해. 하린아, 넌 세미를 질투해서 일부러 힘들게 만든 거야. 오늘은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그 말은 나를 참혹했던 기억 속으로 끌어당겼다.
결혼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그는 이세미를 회사 비서로 데려왔고, 사실상… 그녀는 그의 내연녀였다. 한번은 내가 사무실 에어컨 온도를 조금 낮춰달라고 부탁했고, 이세미는 춥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그녀가 감기에 걸리자 강수현은 나를 회사의 냉동 보관실에 하룻밤 동안 가둬버렸다.
"추위를 그렇게 좋아한다며? 그럼 여기서 실컷 생각해."
그가 남긴 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자외선 차단용 얇은 셔츠 한 장에 의지해 겨우 살아남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 깊은 금이 생겼다.
그 후로 그는 내가 회사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암벽등반 훈련 캠프를 차리고, 다시 처음부터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이제, 규칙을 어기고 무리하게 등반한 건 이세미인데도… 그는 또다시 나를 탓하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뜨거운 눈물이 저절로 고였다.
내 모습을 본 강수현이 잠시 굳어섰고, 그의 눈에 스치듯 동정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세미가 그의 어깨에 기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정도 일로 울다니… 저는 손에 물집이 생겨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는걸요."
강수현의 얼굴이 마치 분노가 터져오르는 것처럼 단숨에 어두워졌다.
"세미가 저렇게 고생한 건 전부 너 때문이야. 최하린 장갑 벗겨. 맨손 등반이 어떤 건지 직접 느껴보게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