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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아침, 나는 서재욱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부인, 배세나 아가씨가 오셨습니다."

가정부의 목소리에는 눈치채기 힘든 망설임이 살짝 묻어 있었고, 나는 책을 덮는 사이 현관 쪽에서 은방울처럼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웃음은 딱 알맞게 과장돼 있었다.

배세나는 서재욱의 팔에 매달린 채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가 입은 디올 얼리 스프링 라인의 체리 블라썸 핑크 튤 드레스는 지난주 내가 잡지에서 동그라미 쳐 두고 내 생일에 디자이너에게 맞춰 달라고 할 생각이었던 바로 그 디자인이었다.

"언니!"

배세나는 서재욱에게서 떨어지더니 작은 걸음으로 달려와 내 손을 꼭 잡았고, 손끝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재욱 오빠가 언니 요즘 기분 안 좋다면서, 내가 일부러 같이 있어 주러 왔어."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수는 톰 포드 로스트 체리였고, 달큰함 속에 아몬드의 쓴맛이 섞인 그 냄새는 서재욱의 서재에서 자주 맡던 향과 똑같았다.

"세나가 네가 혼자 답답할까 봐 걱정하더라."

서재욱은 외투를 벗어 집사에게 건넸고, 내 얼굴을 훑는 시선이 잠깐 멈췄다.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어디 아파?"

그는 나를 걱정하는 척했지만 어조는 어디까지나 의례적이었다.

"잠을 좀 설쳤어."

나는 완벽하게 각 잡힌 미소를 걸어, 흠잡을 데 없는 서재욱의 아내 역할을 이어 갔다.

"세나, 오늘 정말 예쁘네."

"진짜?"

배세나는 들뜬 얼굴로 빙그르르 돌았고,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퍼졌다.

"재욱 오빠가 골라 줬어. 이 색이 우리 대학교 벚꽃축제 때 벚꽃 같다고 하더라."

공기가 순식간에 굳었다.

집사는 고개를 더 숙였고, 가정부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더 조용해졌다.

"언니, 나 케이크도 가져왔어."

뚜껑이 열리자 망고 크림 케이크의 달콤한 향이 퍼졌고, 나는 그걸 한 번 흘끗 봤다.

"나 망고 알레르기 있어."

배세나는 잠깐 얼어붙더니 곧바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미안해. 진짜 몰랐어."

서재욱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

"세나, 지우 저녁 연회 식기 좀 봐 줘."

그 변명은 어이가 없을 만큼 서툴렀지만 배세나는 해맑게 깡충거리며 가 버렸고, 방금 한마디가 정교하게 겨냥한 독이 아니라 순수한 실수였다는 듯 행동했다.

"괜히 생각하지 마."

서재욱은 내 옆으로 다가와 손바닥을 내 어깨 위에 얹었고, 골프를 치며 생긴 굳은살이 살을 쓸어 마찰감이 느껴졌다.

"세나는 그냥 동생 같은 애야. 응석 받아서 버릇이 좀 없을 뿐이지 악의는 없어."

나는 거의 비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남의 집 안방 배경을 소셜에 '실수로' 비출 줄 아는 여자가 악의가 없다니,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공연 끝났으니 바람도 쐬어야지. 우리 같이 좀 나가자."

서재욱의 목소리는 거절을 허용하지 않았다.

"송린으로 가자, 거기 바닷가 별장 하나 있어. 조용해."

송린.

재벌들이 사적인 즐거움을 누리는 은밀한 놀이터이자, 서린시에서는 하기 곤란한 일들을 처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

세 시간 뒤, 우리는 송린 해안지구에 도착했다.

차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해안 별장으로 들어섰고, 거대한 통유리 창 너머로는 사설 해변이 정면으로 펼쳐져 시야가 뻔뻔할 정도로 탁 트여 있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짐을 받아 갔고, 훈련된 듯 시선은 낮게 내려가 있었다.

배세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닷바람을 깊게 들이마시고 두 팔을 벌려 한 바퀴 돌았다.

"재욱 오빠, 여기 바다 뷰는 여전히 미쳤다. 역시 고마워요. 예전에 우리가 바다 좋아하는 거 아시고 어머님이 일부러 여기 열쇠를 우리한테 주셨잖아."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꺼냈지만, 시선은 깃털처럼 가볍게 내 쪽으로 흘렀다.

서재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옛날 얘길 왜 꺼내."

나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배세나는 서재욱의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유형에 딱 들어맞았다.

나는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고, 대리석 바닥은 사람 얼굴이 비칠 만큼 번들거렸으며 공기에는 값비싼 향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래, 여긴 애초에 '그들'의 기억 창고였고,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바다를 마주한 거실에 앉아 있었다.

배세나는 실크 가운으로 갈아입고 와인잔을 들고 소파에 몸을 말아 올린 채 느긋한 여주인처럼 굴었다.

"역시 여기가 제일 편해."

그녀는 잔 속의 호박빛 액체를 흔들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서린시 그 차가운 본가보다 훨씬 사람 사는 맛이 있어. 재욱 오빠. 우리 앞으로 여기 자주 오면 안 돼?"

서재욱은 태블릿으로 메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짧게 반응했다.

"응."

배세나가 술을 더 따르려는 순간, 서재욱이 손을 뻗어 그녀의 잔을 눌렀다.

"너 위 안 좋잖아. 적당히 마셔."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분명한 걱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잔을 내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버번 위스키였다.

배세나가 좋아하는 술이자, 서재욱이 습관처럼 '여자라면 이 정도는 마셔야 한다'고 여기는 술.

반면 나는 소주만 마셨고, 그는 한때 그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싸우던 그 시절에는.

나는 시선을 내리고, 잔 속에서 흔들리는 호박빛 액체를 바라봤다.

서재욱의 눈은 내게 오지 않았고, 오히려 삐죽 입술을 내민 배세나를 바라보며 달래듯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가닥이 아무 소리 없이 끊어졌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그제야 서재욱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바닷가 좀 걸을게."

내 목소리는 놀랄 만큼 차분했고, 나조차 그 차분함이 낯설었다.

"너무 멀리 가지 마."

서재욱은 무심코 당부했지만, 그 말투에는 늘 사람을 통제해 온 익숙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밤바람 세고, 또……"

그는 말을 끊었고, 그 뒤에 숨은 말은 아마 '위험하다'거나 '기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해변으로 이어진 유리문 쪽으로 걸어갔다.

바닷바람이 짠내를 머금은 채 얼굴을 때렸고,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 덕분에 머리는 이상하리만큼 또렷해졌다.

멀리서는 경호원들이 그림자처럼 말없이 서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고, 검게 가라앉은 바다와 별장 안에서 서로 기대어 있는 그들의 따뜻한 조명이 같은 화면에 걸렸다.

그리고 한진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제 진짜 못 버티겠어. 오빠 나 데리러 와 줘. 지금 당장.]

전송 버튼을 누른 뒤, 나는 한 번 뒤돌아봤다.

거대한 통유리 창 너머로 서재욱은 어느새 배세나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녀가 몰래 집어 들려던 술잔을 자연스럽게 빼앗듯 가져가며 손놀림은 익숙하고 친밀했으며 배세나는 그 틈을 타 그에게 기대어 웃음꽃을 터뜨렸다.

그 창은 거대한 무대 같았고, 그들만의 합의된 친밀함이 아무렇지 않게 상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 무대 아래, 유일한 관객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이 연극에 나는 더는 함께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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