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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합의서를 기부 서류로 위장하자, 전남편이 미쳐버렸다

15.0K · 완결
달빛
8
챕터
792
조회수
9.0
평점

개요

"나는 이혼 합의서를 기부 서류로 위장해, 첫사랑의 공연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내밀었다. ""오늘 밤 기부 결재 서류야?"" 서재욱의 시선은 무대에 붙어 있었고,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물으며 몽블랑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그의 첫사랑 배세나가 디올 체리 블라썸 핑크 튤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물기를 머금은 눈빛이 흐르듯 번지고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그 한 사람을 위해 피어나는 듯했다. ""네."" 나는 속을 뒤흔드는 파도를 눌러 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하게 답했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서재욱의 아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법을 배웠다. 서씨 집안이 골라낸, 얌전하고 온순한 정략결혼용 도구. 그는 '서재욱' 세 글자를 대충 휘갈겨 사인했고,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꿈속 여신에게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모를 것이다. 저 서명이 고아를 돕고 빈민을 살릴 수는 있어도, 우리 결혼만큼은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내가 사업 감각이 조금 있는, 평범한 고아 출신 여자라고 믿었다. 서씨 집안의 기반을 단단히 받쳐 줄 '현명한 내조'쯤으로. 하지만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나는 전설처럼 숨겨져 있던 재벌가, '송린 한가'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걸. 그가 자랑스러워하던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와, 매번 세상이 떠들던 인수합병의 성공 뒤에는 전부 나, 한윤진의 손이 있었다는 걸."

현대물후회물 사이다이혼감정사기

제1화

나는 이혼 합의서를 기부 서류로 위장해, 첫사랑의 공연을 보고 있던 남편에게 내밀었다.

"오늘 밤 기부 결재 서류야?"

서재욱의 시선은 무대에 붙어 있었고,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물으며 몽블랑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그의 첫사랑 배세나가 디올 체리 블라썸 핑크 튤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물기를 머금은 눈빛이 흐르듯 번지고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그 한 사람을 위해 피어나는 듯했다.

"네."

나는 속을 뒤흔드는 파도를 눌러 담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하게 답했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서재욱의 아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법을 배웠다.

서씨 집안이 골라낸, 얌전하고 온순한 정략결혼용 도구.

그는 '서재욱' 세 글자를 대충 휘갈겨 사인했고,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꿈속 여신에게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모를 것이다.

저 서명이 고아를 돕고 빈민을 살릴 수는 있어도, 우리 결혼만큼은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는 내가 사업 감각이 조금 있는, 평범한 고아 출신 여자라고 믿었다.

서씨 집안의 기반을 단단히 받쳐 줄 '현명한 내조'쯤으로.

하지만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나는 전설처럼 숨겨져 있던 재벌가, '송린 한가'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걸.

그가 자랑스러워하던 회사의 모든 프로젝트와, 매번 세상이 떠들던 인수합병의 성공 뒤에는 전부 나, 한윤진의 손이 있었다는 걸.

"됐다."

그는 서류를 나에게 툭 던져 돌려주며, 하찮은 일을 하나 처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막 커튼콜을 마친 옛 연인을 찾아 백스테이지로, 참을 새도 없이 성급하게 걸어갔다.

나는 서류를 챙겨 넣었고, 손끝은 힘이 들어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3년짜리 결혼이, 30초 만에 끝났다.

그는 자신이 손으로 무엇을 끝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몇 분 뒤, 그는 다시 좌석으로 돌아왔다.

입가에는 감추지 못하는 웃음이 걸려 있었고, 립밤을 바른 입술마저 어쩐지 바싹 말라 보였다.

7분.

그는 발정 난 수컷 개처럼, 정말 단 한순간도 못 참았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고작 7분이다.

웃기지도 않았다.

배세나는 대체 어떻게 저 남자를 견디는 걸까.

그가 내 시선과 마주치자, 웃음은 서서히 가셨고 곧 익숙한 무표정이 얼굴을 덮었다.

"오늘 밤 본가로 가. 부모님 돌아오셨다."

그건 늘 그렇듯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알겠어."

나는 늘 그랬듯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다시 다음 공연을 바라봤다.

나는 자리를 뜨고 화장실로 향해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몸에 밴 애매한 냄새가 속을 뒤집어 놓았다.

정말 더럽기 짝이 없는 남자였다.

30분 뒤, 우리는 마이바흐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집으로 가고 있었다.

차가 10분쯤 달렸을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배세나였다.

그는 내 쪽을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야. 뭐 하고 있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조급함과 긴장이 섞여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샴페인 코르크가 터지는 소리와 시끄러운 음악이 들려왔다.

전화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일부러 애교를 부린다는 걸.

"재욱 오빠가 모를 리가 있나? 오늘 모금 행사 축하하고 있지."

"그만 마셔, 얼른 집에 들어가."

"싫어."

그녀는 일부러 끝음을 길게 늘였고,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반항이 묻어 있었다.

"나 오늘 본전 뽑아야 돼! 오빠, 나 오빠가 오면 좋겠어!"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차창 밖 풍경이 속도에 쓸려 흐릿해지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차 안은 그들의 대화 말고는 적막했고, 기사는 룸미러로 내 반응을 훔쳐보며 내 분노를 놓칠까 조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실망했을 것이다.

서재욱의 아내는 늘 우아하고 고상했고, 남 앞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서재욱은 초조함 속에 걱정을 끼워 넣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그는 기사에게 눈짓했고, 차는 길가에 멈춰 섰다.

그는 내린 뒤 내 쪽 창으로 다가와 말했다.

"미안.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러 가야 해. 너는 내려, 택시 불러 줄게."

웃겼다.

이 남자는 거짓말조차 못 했다.

이딴 핑계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다니.

나는 그저 담담하게 한마디만 던졌다.

"아까 사인한 서류, 잊은 건 아니지?"

"알았어. 이따 회사에 가져가서 처리할게."

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날아가 있었고, 대답은 성의 없이 퉁명스러웠다.

서린시의 차가운 밤바람 속에 서서, 그를 태운 마이바흐가 먼지처럼 멀어지는 걸 지켜봤다.

내 마음은 이 밤바람보다 더 차가웠다.

괜찮아, 서재욱.

우리는 법적으로도, 오늘로 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