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나는 서린시 청람동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고, 마치 3년 내내 쓰고 다니던 화려한 가면을 한 겹씩 벗겨 내는 기분이었다.
통유리 창 앞에는 안개빛 그레이 컬러의 엘리 사브 오트 쿠튀르 드레스가 걸려 있었는데, 그건 서재욱 비서가 보내온 '업무 메모' 같은 것이었다.
택에는 '서 회장 지시: 내일 저녁 착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문장은 우리 결혼처럼 차갑고 무미건조했다.
이제 때가 됐다 싶어, 나는 곧장 서재욱의 서재로 걸어갔다.
금고는 딸깍 소리를 내며 열렸고, 안에는 보석도 현금도 없었으며 '유지우'로 살던 내 무덤만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맞춤 목걸이였다.
서재욱이 내게 준 첫 선물이었고, 그날 그는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올 만큼 긴장한 얼굴로 내게 약혼해 달라고 청했으며, 그 진지함이 한때는 나를 흔들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목걸이는 결혼한 뒤로 단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늘 첫사랑이 있었고, 나는 고작 그녀를 조금 닮았다는 이유로 선택된 정략결혼 상대였을 뿐이었다.
두 번째는 낡은 장부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첫 번째 큰돈'을 벌어들였던 기록이 담겨 있었고, 가장 앞쪽 몇 장은 내 글씨로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거래들이 연필로 꼼꼼히 적혀 있었으며 옆에는 서재욱의 휘갈긴 메모가 덧붙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작은 테이블 하나에 바짝 붙어 앉아, 50만 달러짜리 거래를 맞추겠다고 밤을 새우며 계산을 반복했었다.
지금은 그가 배세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끼워 준 반지 하나가 500만 달러를 훌쩍 넘길 테니, 참 우스운 일이다.
나는 장부를 덮었고, 그 순간 어리석고 천진하던 과거도 함께 덮어 버리는 것 같았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챙길 물건은 많지 않았다.
화려한 드레스들과 보석들, 그리고 약혼식 때 그의 어머니가 내 손가락에 끼워 줬던 반지까지 전부 그대로 두었다.
그건 '서재욱의 아내'에게 속한 것들이지, 나에게 속한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 입던 옷 몇 벌과 낡은 시계 하나만 가져왔는데, 그 시계는 회사가 상장하던 날 그가 이를 악물고 사 줬던 선물이었다.
그때 그는 "앞으로 더 좋은 걸 해줄게"라고 말했지만, 더 좋은 것들은 결국 전부 다른 사람에게 갔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휴대폰 화면이 환하게 켜졌다.
최고급 주얼리 브랜드 공식 계정이 배세나의 만찬 사진을 올려 놓았는데, 그녀의 약지에 낀 거대한 다이아 반지는 눈이 아플 정도로 번쩍였고, 그 익숙한 디자인이 나를 바로 찔렀다.
일주일 전, 서재욱 비서는 그 반지를 '중요한 고객에게 줄 선물'이라며 내게 "참고해 달라"고 했었다.
게다가 사진의 배경은 더 노골적이었다.
분명 내 명의로 되어 있으면서도 나는 단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던 송린 해안 별장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 버렸고, 더는 보지 않았다.
오늘은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지만, 그는 분명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가장 평범한 토마토소스로 파스타를 삶았고, 물이 금세 끓어오를 즈음 그가 돌아왔다.
그는 신발을 갈아 신고 주방으로 들어와 냄비를 힐끗 보더니, 가벼운 농담처럼 말했다.
"기념일 저녁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파스타를 접시에 담았다.
그는 작은 상자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 내 쪽으로 밀어 놓았다.
"네 거야. 기념일 선물."
나는 그를 한 번 바라본 뒤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팔찌가 들어 있었다.
체인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늘었고, 가운데에는 작은 다이아 조각들이 박혀 있었는데, 작고 정교하며 꽤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상대가 평범한 여자라면 모를까, 내게는 너무도 얄팍했다.
나는 상자를 다시 닫았다.
"나가서 먹자, 자리도 예약해 뒀어."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봤다.
"세나 반지, 예쁘더라."
그의 표정이 찰나처럼 굳더니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렸다.
"술 마시고 지나가다가 그걸 갖고 싶다고 해서, 좀 달래 준 거야."
나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가, 결국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럼 너는 비싼 다이아 반지를 배세나에게 주고, 법적으로 네 아내인 나는 결혼기념일에 이런 '정교한' 선물을 받는 거네?"
서재욱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우야, 나 피곤해. 방금 골치 아픈 일 처리하고 시간 내서 들어온 거니까 내 선택을 후회하게 하지 마."
그때 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고, 그는 전화를 받더니 잠깐 듣는 사이 내게 시선을 얹었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가, 네가 해야 할 일 해."
그는 잠깐 멈칫했고, 내 순순함이 의외였다는 얼굴을 했다가 내게 다가와 안아 주며 거래를 성사시키듯 말했다.
"여보, 역시 너는 이해가 빨라. 나중에 크게 보답할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자 집 안은 다시 죽은 듯 고요해졌고, 나는 쓰레기통 앞에 서서 팔찌를 그대로 던져 넣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얼음처럼 떨리던 감정이, 불처럼 뜨거운 결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평범한 고아 유지우'로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송린 한가'의 유일한 후계자, 한윤진이었다.
그가 버린 건 팔찌 하나가 아니었다.
그가 나를 붙잡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