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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박인강은 H시 의료계에서 이름난 의학 천재였다.

스물여덟에 H시 병원 간·신장센터 최연소 센터장에 올랐고, 사람들은 그를 '수술대 위의 기적'이라 불렀다.

그가 운영하는 개인 클리닉 앞에는 늘 재력가 집안 딸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학 세미나에서 김소진을 보고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음 날 그는 모든 중요 수술을 취소했고, 클리닉의 예약까지 전부 비웠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매일 꽃을 들고 그녀 회사 앞에 서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놀라서 그녀에게 귀띔했다.

그가 어느 여자에게도 이런 적은 없었다며, "벤츠남을 주웠다"고까지 부추겼다.

김소진의 친구들 역시 슬쩍슬쩍 밀어붙였다.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때? 너한테도 기회가 될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둘 사이의 격차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혹시나 잠깐의 호기심일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는 한 달을 버텼다.

폭염이든 장대비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어느 날, 야근을 마치고 창밖을 보니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김소진은 창문 너머에서 비에 흠뻑 젖은 흰 가운의 박인강을 보고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대체 뭘 원해서 이러는 거예요?"

그는 젖은 셔츠 깃을 느슨하게 잡아당겼다.

의사로서 늘 침착하던 얼굴이 처음으로 흐트러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단단했다.

"당신. 당신이 나를 딱 한 번만 봐주면, 내 인생은 그거 하나면 충분해."

그 한마디에 그녀는 모든 방어를 내려놓았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와 결혼했다.

결혼 후 그의 사랑은 더 깊어졌던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무심코 말한 취향이나 물건은, 비행기를 타야 하든 값이 천문학적이든 어김없이 다음 날 침대 맡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농담했다.

"김소진이 하늘의 별을 달라면, 박인강은 우주정거장까지 가서 따올 사람이야."

심지어 늘 반대하던 아버지조차 말끝을 바꿨다.

"인강이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야. 네 아버지가 죽어도 여한 없게 만들어줄 거다."

그렇게 김소진은 그가 쌓아올린 완벽한 사랑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백미나의 손을 잡고 자신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소진아, 이쪽은 미나야. 내 스승님 따님이니까 앞으로 잘 지내봐."

김소진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백미나가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결혼한 거 왜 숨기셨어요! 저는 몸이 약할 뿐이고, 우리 부모님은 가난해도 뜻은 절대 꺾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그런 마음으로 선배만 믿고 따랐는데…!"

그때 박인강은 아무렇지도 않게 백미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목소리는 평소 진료할 때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그녀가 내 아내인 건 사실이야. 하지만 넌 스승님의 딸이고, 난 널 챙길 의무가 있어. 그건 결혼 여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의학적으로 보면 너는 장기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해."

그 말 한 줄 한 줄이 수술 메스처럼 정확하게 김소진의 심장을 갈랐다.

그 일 이후 그녀는 울고, 소리 지르고, 심지어 이혼 서류까지 작성해 그의 앞에 내밀었다.

"당신이 백미나를 원한다면 난 양보할게. 네 와이프 자리도 내줄게."

하지만 박인강은 그 자리에서 식은 표정으로 이혼 서류를 찢어버렸다.

"소진아, 미나는 그냥 내 환자일 뿐이야. 이 모든 건 스승님의 부탁 때문이야."

"그 애가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지?"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김소진이 끝까지 이혼을 고집하자, 그는 오히려 의사 특유의 이성적 분석을 꺼내 들었다.

"김소진, 장인어른 건강이 안 좋은 거 너도 알잖아.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치료에 방해되면 안 되지."

"그리고 혈액 질환 환자에게 감정 기복은 치명적일 수 있어."

그녀는 고개를 확 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뜻이야?"

그의 목소리는 치료 계획을 설명하듯 단조롭고 차가웠다.

"우린 부부야. 비싼 치료비도 네가 고민할 필요 없어. 그건 남편인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그는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미나만 안정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그때 아기 하나 낳자. 장인어른도 좋아하실 거고. 이건 단지 잠시 필요한 의료적 조치일 뿐이야."

그러나 현실에서 박인강의 관심은 그의 말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백미나가 감기만 나도 수천억짜리 수술 협력을 통째로 취소하고 주사실에 붙어 다니며 하루 종일 그녀를 챙겼다.

학교에서 학술 교류가 잡히면 늘 사교를 싫어하던 그가 가운을 벗고 교복까지 맞춰 입고 그녀 손을 잡고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박사 논문 심사 때는 아예 '지도교수' 명목으로 정장을 차려입고 참석해 H시 일간지 머릿기사까지 장식했다.

김소진은 그 사진들 때문에 의료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녀가 뉴스 기사를 들고 붉어진 눈으로 따져 물었을 때조차 그는 눈꺼풀도 까딱하지 않았다.

"H시 기자들 원래 과장해. 너도 의사라면 좀 더 이성적으로 봐야지."

그리고 오히려 그녀에게 화살을 돌렸다.

"나는 너와 정식으로 결혼한 남편이야. 이런 기본적인 걸 모르면 어떡해? 감정적이면 몸에 안 좋아."

그렇게 실망이 쌓이고 또 쌓였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데리고 이곳을 도망칠 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보호자분, 아버님… 드디어 적합 골수가 나왔습니다. 골수는 이미 도착했고, 언제든 이식 가능합니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5년 동안 밤마다 하늘에 빌던 기도가 처음으로 응답받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조차, 박인강은 그녀 아버지의 생명을 인질로 삼으며 빼앗았다.

5년을 버티게 해 준 마지막 희망이 그의 손에 무참히 짓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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