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아이를 잃었다.
내 마음도 그날 함께 죽어 버린 것 같았다.
박혜정이 "목숨으로 갚겠다"며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난리를 치자, 이현우가 직접 옥상에서 그녀를 안고 내려왔다.
하지만 그 뒤로 그는 정말 태도를 바꿨다.
모든 호의도 거둬들였고, 더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왔다.
내가 이혼 서류를 이현우 앞에 밀어 놓았을 때,
그는 진짜로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울먹이며 내게 물었다.
"수연아… 정말 나 버릴 거야?"
그는 병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못한 아이처럼, 같은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 잘못했다고.
이현우의 눈물은 놀랍도록 진심처럼 보였다.
열여덟 살, 비 오는 날 내게 고백하던 그 얼굴 그대로였다.
나는 앨범을 뒤적였다.
중학생 이현우가 남긴 "잘 자, 내 여왕" 같은 문장들.
고등학교 때 학교가 달라졌을 때도, 매주 담을 넘고 오 킬로를 뛰어와 따뜻한 도시락을 내 손에 쥐여 주던 사람.
백화점 광고만 봐도 떠올랐다.
대학 때 내게 명품 가방 하나 사 주겠다고, 지하 도박장에 알바를 들어갔다가… 하필 제일 못난 디자인을 골라 와서 민망하게 웃던 날.
추억은 엉킨 실타래 같아서, 끊어 내기가 어렵다.
이현우와의 사랑은 이미 내 뼈와 피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쉽게 떼어낼 수 없었다.
한동안 나는 심각한 PTSD와 불안장애에 시달렸다.
심장 박동을 세며 잠들 정도로.
그때 이현우는 모든 회의를 미뤘다.
가장 좋은 정신과를 데려가 줬고, 매일 내 옆을 걸어 줬고, 내게 시를 읽어 줬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는 나에게 수많은 상처와 굴욕을 줬고, 내 눈물을 바닥까지 쥐어짰다.
하지만 동시에… 내 청춘을 관통하며, 십 년 넘게 나를 사랑해 온 사람이기도 했다.
사랑도 진짜였고, 상처도 진짜였다.
그런데 나는 이현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또 웃음거리가 된 건, 결국 나다.
내가 미련했고, 내가 바보였고, 내가 자초한 일이다.
이현우.
어린 네가, 지금의 너를 위해 벌어 준 마지막 기회였는데.
넌 또 버려 버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