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나는 내가 이현우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줄 몰랐다.
학생 시절엔 늘 그가 나를 따라다녔다.
붙어 다니며 싸움도 대신 해 줬고, 위험한 순간엔 몸으로 막아 줬다.
그를 잃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엄격했나. 그를 너무 몰아붙였나.
그래서 그날 전화할 때, 나는 할 수 있는 한 낮아졌다.
"돌아와 줘. 너… 걔랑만 끊으면, 우리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낼 수 있어. 응?"
내 목소리는 조심스러웠고, 비참할 만큼 비굴했다.
그런데 그는 안 된다고 했고 박혜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걔는 바닥에서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애야. 난… 걔한테 깨끗한 세상이 뭔지 보여 주고 싶어."
나는 그를 집으로 돌려놓기 위해, 박혜정에게 매달 '생활비'를 주겠다고까지 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도 이현우는 매일같이 밖으로 돌았다.
오늘은 귀한 와인이 들어왔다며 팔아 현금으로 바꿔 그 여자 가방을 사 주고,
내일은 오페라 VIP 티켓이 생겼다며 "세상을 좀 보게 해 주겠다"고 데려갔다.
심지어 박혜정 이름을 건 갤러리까지 하나 열어 줬다.
박혜정이 술 취한 이사에게 희롱당했을 때, 이현우는 망설임 없이 그 사람을 계단 아래로 밀었다.
다행히 높은 층은 아니었지만, 거액의 합의금과 입막음 비용이 오갔고, 그룹 인맥을 총동원해 겨우 덮었다.
나는 붉어진 눈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당신, 이럴 때 나랑 아이 생각해 봤어?"
"아이가 태어날 때 아빠가 감옥에 있어도 괜찮아?!"
이현우는 오히려 나를 차갑다고, 동정심도 없다고 비난하며 우리가 살던 집을 미친 듯이 부쉈다.
추억으로 가득했던 아파트는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
찢겨 나간 결혼사진, 깨진 유리 조각에 난 균열이… 나와 이현우의 얼굴을 완벽하게 갈라놓았다.
깨진 건 다시 붙지 않는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다. 그걸 몰랐다.
결혼기념일, 나는 예약해 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마감 시간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받은 건 이현우가 아니라, 박혜정의 SNS였다.
"불완전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사진 속 박혜정은 내가 산 것과 똑같은 최신 샤넬을 입고, 한정판 에르메스를 들고 있었다.
그건 내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네가 가진 것, 나도 다 가질 거야.'
이현우는 내 삶의 방식으로… 그녀를 다시 키웠다.
그 순간, 구역질과 분노가 나를 덮쳤다.
나는 눈물로 앞이 흐릿한 채 운전대를 잡고, 이현우가 평창동에 그녀를 위해 사 준 빌라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박혜정이… 내가 결혼식 날 입었던 맞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키스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미쳐 버린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둘을 떼어 놓았다.
아수라장이 된 그 순간, 혜정이 나를 밀쳤다.
나는 계단을 굴러 떨어졌고, 차가운 대리석 위에 쓰러졌다.
피가… 바닥을 덮을 만큼 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