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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현우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한남동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고,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공기 속에 굳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테이블 위 태블릿에는 그가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든 영상이 계속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여기 100억 원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현우는 성큼 다가와 태블릿을 꺼 버리더니, 천천히…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재계에서 '감히'라는 말이 붙는 한성그룹 후계자가, 그 여자 때문에 내게 무릎을 꿇었다.

그 자체가 비참했고, 우스웠다.

"수연아…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늦은 거 알아. 그래도 약속할게.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도와주는 거."

목소리는 쉰 데다 피로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걔 아버지가 도박판에서 빚을 잔뜩 졌어. 사채가… 걔를 해외로 팔아넘기겠다고 했대."

"전에도 나한테 도움을 청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그래서 그 늙은 사채업자랑 결혼하기로 한 거고."

"난 그냥… 불쌍해서 그랬을 뿐이야. 믿어 줘…"

그저 불쌍해서.

그 말을 이현우가 몇 번이나 했는지, 본인도 이제는 모를 거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불쌍해서"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대가를 치르는 건 늘 나였다.

예대 등록금을 대 준 것도 '불쌍해서'.

그룹 계열사에 한가한 자리 하나 꽂아 준 것도 '불쌍해서'.

강남에 오피스텔을 사 준 것도 '불쌍해서'.

회소에서 사람을 계단 아래로 밀어 버린 것도 '불쌍해서'.

그리고 이제는… 100억을 들고 달려가 결혼식을 깨부순 것도 '불쌍해서'라고?

나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이현우, 당신 동정심은 삼성재단보다도 넉넉하네."

비꼬는 말이 꽂히자, 이현우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나를 안으려 했지만, 나는 그대로 밀어냈다.

"수연아… 너 또 나 떠날 거야?"

이현우는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깊게 패인 눈동자가 붉게 젖어 있었다.

나는 차갑게 말했다.

"이현우, 먼저 맹세를 깨뜨린 사람이… 충성을 요구할 자격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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