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이혼하러 왔다가 바람맞았네
문아영이 일에 전념하겠다는 말을 듣자 박정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에 해외로 작가 연수 갈 기회가 있는데, 네가 정말 일에 전념하고 싶다면 내가 김 대표님한테 신청해 볼게."
문아영은 대학에서 연극영화학과를 전공했다. 졸업하자마자 최강원과 결혼해서 전업주부가 되긴 했지만, 박정인은 그녀의 재능이 묻히는 게 아까워서 작가 일을 소개해 줬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최강원도 모르고, 외부 사람들도 몰랐다. 문아영이 작가로 일할 때는 '아리아나'라는 필명을 썼기 때문이다.
박정인의 말에 문아영은 매우 기뻤다.
"정말?"
"당연히 진짜지." 박정인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 대표님은 늘 네 재능을 아주 높이 평가했어. 비록 네가 파트타임 작가이긴 했지만, 우리 회사와 정식 계약하면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고 너를 키워주실 거야."
박정인이 있는 타임즈 엔터테인먼트는 몇 년 전 은퇴한 배우 김한세가 친구와 함께 설립한 곳이다. 현재 국내 최고의 작가진, 감독진, 연예인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대박 드라마와 평가 좋은 영화를 연달아 내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문아영은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아, 할게."
이혼하고, 해외로 나가는 것. 이것이 지금 그녀에게는 최선의 길이었다.
해외에 나가면 강성의 모든 것을 마주하지 않아도 될 테니, 그녀의 마음도 그렇게 아프지 않을 것이다.
최강원의 이번 출장은 3일이나 걸렸고, 문아영은 계속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날 박정인은 그녀와 함께 타임즈 엔터테인먼트에 가서 정식 계약서에 서명했다. 계약서에 서명한 후 문아영은 최씨 저택에 갔다. 이혼을 결심했으니 할아버지, 최승학에게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씨 집안에서 최승학이 그녀를 가장 자상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30분 후, 문아영은 눈가가 붉어진 채로 최승학과 함께 서재에서 나왔는데, 마침 언제 출장에서 돌아왔는지 모를 최강원과 마주쳤다.
그는 회색 정장을 차려입은 채, 키가 크고 품격 있는 자태를 뽐냈다. 차가우면서도 고고한 얼굴에는 30대 남성 특유의 성숙한 침착함과 권력자로서의 위엄이 어른거렸다.
문아영은 처음 그의 이런 외모에 현혹되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최강원의 시선도 늘 그렇듯 그녀의 얼굴에 1초 정도만 머물렀다가, 곧 최승학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늦었네요."
최승학은 오늘 가문의 일로 최강원을 불렀는데, 문아영이 갑자기 찾아와 이혼하겠다고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아영이 단호하게 이혼하겠다고 하니, 이 손자에게 좋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정하게 한마디 했다.
"네가 사과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최승학은 말을 마치고 손을 휘저으며 가버렸다. 최강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옆에 서 있는 문아영을 바라봤다.
문아영은 그의 눈에 담긴 불쾌감을 읽었다. 그는 그녀가 또 할아버지 앞에서 그를 험담했다고 단정 지은 것이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 내가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모두 당신을 위한 거야."
문아영은 이 말을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그녀는 방금 할아버지께 이혼하겠다는 결심을 분명하게 전달했고, 그와 그의 첫사랑을 성사시켜주겠다고 했다. 이제 그는 평생 그녀의 결혼 생활에 시달릴 필요가 없을 테니, 이게 그를 위한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최강원의 얼굴은 문아영의 말에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는 물론 그녀의 말에 담긴 가시를 알아들었다.
3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그녀는 그의 앞에서 늘 온순하고 착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시 돋친 말을 하니, 그의 울화가 얼마나 치밀었을지 짐작할 만했다.
목의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하며, 그는 가슴 속의 분노를 누르고 최승학을 찾아갔다.
10분 후, 얼굴색이 어두운 최강원이 주방에서 문아영을 붙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