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대본과 관련된 분쟁
“나 요즘 위가 좀 안 좋아. 담백한 한식으로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최강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김예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순간, 김예지의 눈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다. 그녀는 스테이크 같은 서양 음식을 매우 좋아했고, 최강원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며 둘의 식성이 잘 맞는다는 점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 자부심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김예지는 애써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가 정말 위가 안 좋은 거라고 이해하려 했고, 그래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또 위가 안 좋은 거예요?”
최강원은 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난 1년간 그의 위는 편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문아영과 함께 지내던 시절, 그녀는 매일 세 끼를 정성스럽게 준비하며 그의 식단을 세심하게 관리해 주었다.
그때 그녀는 위병은 식이요법으로 천천히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당시 그는 그런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혼 후 1년 동안의 현실은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식사가 사라지자, 그의 위병은 언제든 다시 찾아와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김예지가 옆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커피는 끊는 게 좋겠다고. 담배랑 술도 적게 해야 하는데, 전혀 듣질 않잖아요 정말.”
커피 이야기가 나오자, 김예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과거 문아영이 매일 아침 최강원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강원이 이혼한 후, 김예지는 그를 위해 커피를 내리는 것도 배우고 몇 번 직접 만들어 주었다. 자신이 꽤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최강원은 항상 한 모금만 마시고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 최강원의 반응에 속이 뒤틀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그런 노력조차 지치고 버거워졌다. 결국 그녀는 위 건강을 핑계로 커피를 끊으라고 권하기 시작했다.
커피를 끊게 하면, 문아영이 그에게 길들여 놓은 이런 습관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예지의 이런 불만 섞인 말에도 최강원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무반응은 커피를 끊지 않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의사 표시였다.
차에 타고 난 후, 최강원은 김예지를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가는 길에 김예지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본 대본은 만족스러웠어요?”
그녀의 질문에 최강원이 간단히 네 글자로 대답했다. “괜찮았어.”
김예지는 속으로 이를 악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근데 마지막 결말이 좀 어색하다고 생각 안 해요?”
최강원이 담담히 되물었다. “뭐가 어색한데?”
김예지는 감정을 최대한 차분하게 보이려 애쓰며 말했다. “결말이 총애받지 못한 왕비와 왕이 결국 서로 사랑을 이루고, 왕이 평생 사랑했던 첫사랑이 흑화해서 죽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동안 그렇게 왕이 첫사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강조해 놓고, 결국 첫사랑을 죽이는 게 맞는 건가?”
그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미묘한 날이 서 있었다.
사실, 김예지는 미팅 중에 속이 뒤집힐 뻔했다. 이 대본이 문아영이 쓴 것이라는 걸 몰랐다면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아영이 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대본의 결말이 마치 그들 세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사극 대본의 남자 주인공은 예왕이라는 왕으로, 예왕에게는 황제가 강제로 정해준 정실 왕비가 있었다. 하지만 예왕은 이 왕비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마음속에는 평생 사랑해온 첫사랑이 있었다.
김예지는 이 설정이 현실에서의 김예지, 최강원, 그리고 문아영 세 사람의 관계를 그대로 비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문아영은 이 대본에서 첫사랑을 죽이고, 총애받지 못하던 왕비를 예왕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문아영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감정을 대본에서 위로받으려는 거 아닌가?
김예지의 이런 지적 덕분에, 최강원도 이 대본 속 캐릭터 설정이 자신들과의 관계와 다소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이 설정에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이야기 전체 구조와 주요 플롯이 마지막 결말을 이렇게 이끌어낸 거야. 난 전혀 어색하지 않아.”
그는 이어서 덧붙였다. “예왕비는 예왕과 함께 수많은 풍파를 겪었잖아. 왕위 계승 다툼, 변방 전쟁, 예왕이 중상을 입고 생사가 불투명했던 시기, 그리고 황위에 오르기까지! 예왕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왕비가 곁에 있었어. 특히 예왕이 생사를 알 수 없던 그 시기에는 예왕부를 혼자 지탱했으니,예왕이 그녀에게 오직 그녀만을 위한 후궁과 태평성대를 약속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결말인 거야.”
최강원은 자신의 설명이 철저히 스토리의 흐름에 기반한 냉철하고 이성적인 분석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김예지는 그의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