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전처에 대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네
최강원은 전화번호를 받았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김한세를 바라보며 한마디 던졌다. “김 대표님, 회사 신인을 이렇게 아낌없이 키우고 지원하시다니, 정말 훌륭한 멘토십을 보여주시네요.”
김한세는 최강원의 말에 숨겨진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 최강원이 자신이 문아영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해외 연수에 보내고 독립적인 작가로 기회를 준 것이 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은근히 비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한세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최 회장님, 보아하니 전처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제가 좋은 멘토라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충분히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뛰어나기에 우리가 기회를 주고 싶어진 거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처음에 박정인 씨가 문아영 씨를 파트타임 작가로 소개했을 때, 제가 시험 삼아 그녀에게 진행 중인 대본 초안을 맡겼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쓴 초안이 신입 작가들 중 가장 매력적이었죠. 특히 이은지 선생님께서 단번에 그녀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분께서 직접 저를 찾아오셔서 문아영 씨를 제자로 삼겠다고 하셨거든요.”
최강원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놀라움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분명했다. 이은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신입 작가를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먼저 나서서 문아영을 제자로 삼겠다고 했다니, 이는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한세는 최강원의 표정을 읽으며, 조용히 미소를 유지했다. “그녀는 단순히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 신인이 아니에요. 그녀의 재능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입니다.”
김한세는 최강원의 눈에 비친 놀라움을 놓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문아영 씨 말인데요, 어릴 때부터 문학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대학 입시 때는 강성대 문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졸업할 때는 국문학 전공 1등으로 졸업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잠시 멈췄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어쩌면 저나 이은지 선생님이 없었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각광받는 드라마 작가로 떠올랐을 겁니다.”
그러다 한순간 말을 바꾸며, 다소 날카롭게 말했다. “물론, 최 회장님과의 그 3년간의 결혼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이미 유명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문아영은 최강원의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가 일을 겸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대본 작업에 쏟을 여유가 없었고, 이는 그녀의 커리어에 분명히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이 말은 명백히 최강원이 문아영의 커리어를 방해했다는 점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었고, 그 말은 최강원의 가슴에 날카롭게 꽂혔다.
최강원은 차가운 눈길로 김한세를 쏘아보고,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단단히 쥔 채 사무실을 나섰다.
문아영이 문과 수석, 전공 1등 졸업생이며, 이은지가 먼저 제자로 삼고 싶어 할 만큼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알아본 적이 없었다는 자각에, 답답함과 혼란이 밀려왔다.
그는 문아영이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초반,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았다는 분노 속에서 살았다. 그 분노는 문아영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이어졌고, 그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침대에서 그녀를 가혹하게 대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의 밑에서 떨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때, 이상할 정도로 만족감을 느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 감정이 차분해졌을 때조차, 그는 그녀 앞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결과, 그녀와 평화롭고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알아갈 기회도 없었다.
최강원이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김한세의 사무실을 나설 때, 김예지가 그를 향해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끼었다. “김 대표님과 대본 얘기는 다 끝났어요?”
최강원이 낮은 소리로 대꾸했다. “응, 가자. 먼저 널 데려다줄게.”
그 순간, 김예지가 그의 팔에 기대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하루 종일 강원 씨랑 있고 싶단 말이야.”
그녀의 말에 최강원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한 톤으로 대꾸했다. “난 매일 바빠. 너도 알잖아.”
김예지는 적당한 선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조르지 않고 화제를 바꿨다. “그럼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요? 같이 식사한 적도 너무 오래됐잖아요.”
그 말에 최강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래. 나중에 영호한테 예약하라고 해서 알려줄게.”
그러자 김예지가 그의 팔에 더 기댄 채 졸라댔다. “나 스테이크 먹고 싶어요. 우리 자주 가던 그 이탈리아 레스토랑 어때요?”
최강원은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는 문득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얼마 전, 문아영이 소고기와 양고기 같은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스테이크조차 왠지 모르게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