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문아영에게 사과해!
최주희는 최강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을 머금고 달려가 억울한 척하며 고자질했다. “오빠, 문아영 이 싸가지가 내 얼굴에 커피를 끼얹었어!”
이렇게 먼저 나서서 피해자인 척하는 일은 최주희가 몇 년 동안 반복해온 수법이었다. 그래서 문아영은 이미 그녀의 이런 행동에 익숙해져 있었다.
문아영은 최강원이 자신을 변호해 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박정인에게 말했을 건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녀는 더 이상 남아 다툴 생각이 없었다. 비록 커피를 맞았지만 자신도 되갚아줬으니, 그걸로 충분히 끝난 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화상을 입은 손목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었다. 차가운 물에 대충 씻기라도 하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박정인은 최주희의 이런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단호히 맞받아쳤다. “최주희 씨, 아영이한테 먼저 커피를 끼얹은 건 그쪽이잖아. 그것도 뜨거운 커피를!”
박정인은 나가려던 문아영의 팔을 잡아 끌며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팔을 드러냈다. “아영이 팔이 이렇게 데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먼저 억울한 척하며 고자질을 할 수 있지?”
그러면서 이를 악물며 최주희를 향해 단호하게 경고했다. “만약 문아영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최주희 씨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박정인이 문아영의 팔을 보여주자, 그제서야 최강원은 문아영의 흰 티셔츠가 엉망이 된 것을 알아차렸다. 더불어 그녀의 하얀 팔에 선명히 남아 있는 화상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박정인의 말대로 최주희가 끼얹은 커피가 뜨거운 상태였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최강원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사과해.”
그 한마디에 최주희는 팔짱을 낀 채 문아영을 향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오빠 말 못 들었어? 얼른 나한테 사과해.”
하지만 최강원은 차갑게 최주희를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 “너한테 사과하라고 한 거야!”
최강원의 이 말에 문아영과 박정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문아영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인 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참 아이러니했다. 자신이 그와 부부로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았던 사람이, 이제 이혼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자신을 지키려 하다니!
그 순간, 문아영의 머릿속에 배유미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부질없는 것이란 무엇인가? 한여름에 입는 두꺼운 패딩, 한겨울의 부채질, 그리고 내가 이미 마음을 접은 뒤에야 네가 보여주는 호의!”
이제 그녀는 그의 보호 따위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행동에서는 단 1%의 고마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라고?” 최주희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오빠, 제정신이야? 왜 내가 사과해야 해!”
“내가 커피를 끼얹긴 했지만, 문아영도 나한테 끼얹었잖아!”
그러자 싸움에서 단 한 번도 밀린 적 없는 박정인이 바로 받아쳤다. “최주희 씨가 먼저 시비 걸고 악담을 퍼붓지 않았다면, 그리고 먼저 커피를 끼얹지 않았다면, 문아영 씨가 그쪽한테 커피를 끼얹었겠어요?”
말을 마친 박정인은 다시 시선을 최강원에게 돌렸고, 차가운 눈빛으로 날카롭게 말을 내뱉었다. “최 회장님, 당신 여동생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랑 아영이가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느닷없이 다가와서 아영이한테 귀가 먹었다고 욕을 하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먼저 시비 거는 사람이 한심한 것 아닌가요?”
최주희는 박정인의 “먼저 시비 거는 사람이 한심한 것 아닌가”라는 말에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문아영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최강원이 쏘아보는 눈빛 하나에 그 자리에서 움찔하며 멈췄다.
최강원의 차가운 시선에 겁을 먹은 듯했지만, 최주희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나 사과 안 해. 죽어도 이 여자한테 사과 못 해!”
그러자 최강원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잘못을 인정할 생각이 없다면, 앞으로 외출 금지다. 집에서 네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
최주희는 억울함과 분노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때, 최강원이 계속 침묵하고 있던 문아영에게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
그러나 문아영은 고개를 들고 차분한 어조로 거리감을 두며 그 요구를 단번에 거절했다.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어요, 별로 심각하지 않으니까.”
그녀의 담담한 태도와 차가운 말투는 둘 사이에 깊은 선을 그은 듯, 완전히 남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최강원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며 점점 알 수 없는 짜증과 불쾌함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최강원 또한 끝까지 고집했다. “이 정도로 데였는데도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니까요.” 문아영은 차분하게 답하며 여전히 거절했다. 병원에 가야 한다면 혼자 갈 것이며, 더 이상 최강원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최강원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고, 두 사람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한동안 대치한 채로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