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더 이상 참지 않을 거야
박정인은 최근 계속 강성시에서 촬영 중이었다. 그날 문아영은 자신의 작가 선생님인 이은지를 만나러 간 김에, 박정인의 촬영장도 찾아갔다.
모든 작가들이 처음부터 드라마 대본을 혼자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문아영은 박정인의 소개로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이은지 밑에서 배우고 있었다. 드라마 개요만 2년을 썼고, 그 후에는 장면 분할을 배웠으며, 나중에는 서서히 독립적으로 한 에피소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최강원과 결혼하면서부터 문아영은 조용히 이런 일들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 일은 출근할 필요가 없어서, 그녀는 그때 최씨 집안의 며느리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자신의 작은 취미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에 김한세가 맡긴 드라마에 대해 문아영은 고민 끝에 자신이 아직 이 중책을 맡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김한세에게 이은지를 메인 작가로 해달라고 하고 자신은 계속 이은지를 보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한세와 이은지는 그녀가 4년 동안 경험을 쌓았으니 충분히 독립적으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의 인정과 격려는 문아영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고, 이은지도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자문을 구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문아영이 찾아 왔고, 오는 김에 박정인의 촬영장도 들러 직접 만든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3년 동안 최씨 집안의 며느리를 하면서, 그녀의 요리 실력은 이미 주방장급이 되어있었다.
문아영이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이은지는 감독과 회의 중이었어서 문아영은 먼저 박정인을 찾아갔다.
두 사람이 몇 마디 이야기를 나주지 못했을 때,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박정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싫은 듯이 말했다.
"분명 또 최주희 그 머리 텅텅 빈 애가 왔을 거야."
"최주희? 걔가 왜 와?"
최주희를 언급하자 문아영의 눈빛에 전혀 감추지 않은 혐오감이 스쳤다.
최주희는 최강원의 동생이자 김예지의 절친한 친구였다. 문아영이 최강원과 3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최주희는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매일 냉소와 조롱을 하는 것도 모자라, 최강원과 그의 부모님, 그리고 모든 친척들 앞에서 그녀를 비방했다. 그래서 최씨 집안 전체에서 최승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녀를 좋지 않게 봤다.
최주희는 대학 졸업 후 백수였다가 그럭저럭 예쁜 외모 덕분에 최강원이 설립한 미디어부에 들어갔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최씨 집안의 외모 유전자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최주희는 용모와 미모를 다 갖췄지만, 생각도 없고 연기력도 부족해서 계속 반짝 스타에 머물렀고 매일 여러 남자친구를 바꾸며 화제를 모았다.
그 남자들도 모두 기꺼이 그녀와 사귀었다. 그녀에게 그토록 매력적인, 권력 있는 오빠가 있었으니까.
최강원이 든든하게 뒤를 봐주니 최주희는 연예계에서 크게 뜨지 못해도 미래가 걱정되지 않았다.
박정인이 매우 경멸하듯 말했다.
"걔가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우리 촬영장의 서서브 남주 배역이야. 유명한 골드디거지."
문아영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최주희가 정말 싫었다. 최주희가 올 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인이 또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게 있어. 네가 맡은 그 드라마, 최강원이 투자하는 거니까 분명 최주희한테 역할 하나는 줄 거야."
그 말인즉슨, 만약 문아영이 최주희와 그 드라마 프로젝트에서 만나게 되면 최주희가 또 괴롭힐 테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문아영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최주희가 아무리 거만해도, 이제는 참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예전의 문아영이 아니었다. 최강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의 동생과 어머니의 온갖 모욕을 참아내던 그 문아영이 아니었다.
문아영이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문아영?"
"언제 돌아온 거예요? 여기서는 뭐 하고 있는 거고?"
"촬영장이 어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문아영은 뒤돌아볼 필요도 없이 온 사람이 최주희라는 걸 알았다. 이런 신랄한 목소리는 3년 동안 들어왔기에 당연히 틀릴 리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