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가지 말아줄 수 있어?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침실 문이 열렸다.

박건태는 온몸이 젖은 채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돌아오자 나는 도저히 잠을 계속 잘 수 없었다.

옷을 챙겨 입고 옷장에서 그의 잠옷을 꺼내 욕실 문 앞에 두었다.

그 후 나는 발코니로 향했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가늘게 내리는 비가 창밖을 적셨다.

어둑한 하늘 아래 빗방울이 기와에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박건태가 욕실에서 나와 있었다.

하체에 타월만 두른 채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탄탄한 몸매와 매혹적인 외모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리 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

나는 늘 그렇듯 순순히 다가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머리 좀 닦아 줘.”

이런 상황도 익숙했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고,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그의 뒤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닦아주었다.

“내일 할아버지 장례식이야. 아침 일찍 본가에 가야 해.”

일부러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육수연에게만 있었기에,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는 장례식조차 잊을 사람이었다.

“응.”

짧은 대답뿐.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했다.

그와 대화가 길어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나는 조용히 그의 머리를 닦고, 다시 침대로 가 누웠다.

임신 때문인지 요즘 유독 피곤했다.

평소 박건태는 샤워 후 서재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잠옷으로 갈아입더니 곧장 침대에 누웠다.

이상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나를 끌어안더니 부드러운 입맞춤을 퍼부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건태 씨, 나…”

“싫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짙은 눈동자는 밤처럼 어두웠고, 그 안에는 거친 본능이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싫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금만 조심해 줄 수 있어?”

아이는 이제 겨우 6주였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비가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번개가 치고, 방 안의 불빛이 흔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아픈 몸을 웅크린 채 식은땀을 흘렸다.

진통제를 먹고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하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침대 옆 탁자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박건태의 전화였다.

시계를 보니 이미 밤 11시였다.

이 시간에 박건태에게 전화를 걸 사람은 육수연밖에 없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추고, 그는 타월을 두른 채 나와 전화를 받았다.

“수연아, 장난치지 마.”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전화를 끊은 그는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못 본 척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를 붙잡고 간절하게 말했다.

“오늘 밤, 가지 말아 줄 수 있어?”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맛 좀 봤다고 이제 막 나가는군.”

차가운 말투에 조롱이 섞여 있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웃음만 나왔다.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일은 할아버지 장례식이야. 아무리 그녀가 소중해도, 이 정도 선은 지켜야 하지 않아?”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내 턱을 세게 잡았다.

“협박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눈빛은 차가웠다.

“심가영, 너 많이 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