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이혼에 동의할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붙잡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도라도 해봐야 했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혼에 동의할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오늘 밤은 여기 남아줘. 내일 할아버지 장례식에 함께 참석하고, 끝나자마자 이혼 서류에 서명할게."

박건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차갑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날 즐겁게 해봐."

손을 풀며 다시 날 내려다보았다.

"심가영, 모든 건 실력으로 증명하는 거야. 말로만 떠들어대는 건 소용없어."

차갑고 낮은 목소리였다.

그의 의도를 알았지만, 나는 그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그의 허리를 감쌌다.

큰 키 차이로 인해 내 행동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붙잡으려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그는 내 손을 단단히 막았다.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짙고 어두웠다.

"그만해."

차갑고 무심한 말투.

순간 당황했다.

그가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있는데, 그는 침대 위에 있던 회색 잠옷을 집어 우아하게 걸쳤다.

나는 얼떨떨했다.

이게… 남겠다는 의미였을까?

그런데 기뻐할 새도 없이, 창밖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비와 함께 들려왔다.

"건태 오빠…"

나는 놀랐다.

그러나 박건태는 나보다 더 빨리 반응했다.

그는 몇 걸음에 발코니로 나가더니 얼굴을 굳히고 외투를 챙겨 방을 나갔다.

발코니 아래, 육수연이 얇은 옷을 입고 빗속에 서 있었다.

빗물에 젖어 초라해 보이는 그녀는 더욱 연약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박건태는 외투를 그녀에게 덮어주었고, 꾸짖기는커녕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였다.

그 광경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박건태 곁에 2년이나 있었지만, 육수연의 한 통의 전화보다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는 육수연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계단 입구에서 젖은 두 사람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비켜."

박건태는 냉랭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 눈동자는 나를 혐오하는 듯했다.

속상한지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슴보다 더 아픈 건 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끼는 모습을 직접 봐야 했으니까.

"박건태, 결혼할 때 할아버지께 약속했잖아.

내가 이 집에 있는 동안, 그녀는 절대 이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이 집은 우리가 함께 생활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의 수많은 밤을 육수연에게 양보했지만, 마지막 남은 이 공간마저 더럽혀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웃기시네."

박건태는 차갑게 웃으며 나를 밀쳐냈다.

"심가영, 넌 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

그의 말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는 육수연을 안고 객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밤은 결코 평온할 수 없었다.

육수연은 비를 맞아 고열이 났다.

박건태는 그녀를 보살피며 옷을 갈아입히고 물수건으로 열을 식혔다.

그리고 나를 힐끔 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넌 박씨 저택으로 돌아가. 수연이가 이렇게 아픈데 오늘은 여기서 못 나가."

이 시간에 저택으로 가라고?

내가 거슬린다는 거였다.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시간에 저택으로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내가 여기 있는 게 육수연의 휴식을 방해하는지 여부였다.

가슴속의 서러움을 눌러 담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냥 침실에서 잘게. 이 시간에 저택으로 가는 건 무리야."

그가 나를 아끼지 않는다고 해서, 나까지 나 자신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객실을 나와 복도로 향했다.

그때, 급하게 달려오는 정이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검은색 잠옷 차림에 신발도 신지 못한 상태였다.

급히 오느라 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