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임신
임신 6주
초음파 결과지를 보는 순간, 네 글자가 내 눈앞에 선명하게 박혔다.
'임신 6주'
단 한 번이었는데, 어쩌다 임신까지 되어버린 걸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박건태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이혼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 그는 오히려 내가 아이로 협박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복잡한 마음을 누르며 초음파 결과지를 가방에 넣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 건물 앞에는 검정색 마이바흐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창문이 3분의 1가량 열려 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날렵하고 냉정한 눈매가 어렴풋이 보였다.
고급 차와 잘생긴 남자의 조합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돈과 외모—이것이 박건태의 기본 스펙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했다. 주변의 시선을 무시한 채 조수석에 올라탔다.
눈을 감고 있던 박건태는 인기척을 느끼자 살짝 눈썹을 찌푸렸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그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처리는 끝났어?"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에서 체결한 계약서를 그에게 건넸다.
"육권욱 원장님이 인사 전해달래."
원래 계약서는 내가 혼자 와서 사인할 예정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박건태가 나를 태우고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이 사건, 네가 끝까지 책임져."
계약서를 받지도 않고, 그는 짧게 한마디만 남긴 채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듣고 행동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게 되었다.
차는 시내 중심가를 향했다.
이미 해가 저물었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 보니 어디를 가려는 걸까?
궁금했지만, 나는 그의 일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침묵을 유지했다.
병원에서 받은 초음파 결과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옆을 보니 그는 여전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 언제나처럼 냉정했다.
"박건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꼭 쥔 채 말을 꺼냈다.
긴장한 탓인지 손바닥에는 땀이 배어났다.
"말해."
차가운 두 글자.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항상 나에게 이렇게 대했다.
오랜 시간 끝에 나는 이 모든 것에 체념하게 되었다.
긴장된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나…."
'임신했어.'
그 네 글자는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의 휴대폰이 울리며 내 말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수연아, 무슨 일이야?"
누군가의 다정함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깊은 애정이든, 즐거움이든, 박건태의 따뜻함은 항상 육수연을 향해 있었다.
전화를 통해 들리는 박건태의 다정한 목소리.
육수연이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갑자기 차를 멈췄다.
"알았어. 금방 갈게. 거기서 움직이지 마."
전화를 끊고, 그는 다시 냉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나를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내려."
단호한 태도, 여지도 없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말을 다시 삼켰다.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박건태와 나의 결혼은 우연이었고, 운명이었지만 사랑은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육수연에게 있었다.
나는 그저 장식품, 아니면 장애물일 뿐이었다.
2년 전, 박춘배 어르신이 심장마비로 병상에 누웠을 때, 그는 박건태에게 억지로 결혼을 강요했다.
박건태는 원치 않았지만 어르신을 위해 나와 결혼했고 그 이후로 그는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이제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고, 그는 이혼 서류를 준비하며 내가 사인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텅 빈 집은 마치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임신 때문인지 속이 불편해 밥 생각도 없었다.
나는 곧장 침실로 들어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희미하게 잠이 들 무렵, 마당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박건태가 돌아온 걸까?
그는 육수연과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