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주연준은 그의 아내를 좋아하지 않아
주씨 가문은 원래부터 이별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녀의 가짜 임신이 들통난 후, 그들의 태도는 더욱 차가워졌다.
늘 형식적인 대우만 할 뿐,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 주연준이 그렇게 화를 낸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결국 그녀가 완전히 잘못 건드린 셈이었다.
이별이는 다시 며칠을 기다렸다. 그러나 여전히 주연준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날 트와일라잇 클럽에서의 만남을 떠올려보면, 그가 이혼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는 뻔했다.
완전히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 어디를 가든 그녀가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하기 위해서, 그가 과거에 그녀에게 당한 걸 똑같이 되갚아 주려는 거였다.
주연준은 질기게 버틸 인내심이 있었지만, 이별이는 그와 이렇게 계속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원래 그녀는 이혼 절차를 끝낸 뒤, 그 후의 계획을 차차 세우려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배두연은 그녀가 일을 찾겠다고 하자, 손에 들고 있던 감자칩을 내려놓으며 금세 눈을 반짝였다.
"야, 우리 잡지사로 와! 요즘 우리 매거진에서 자체 브랜드 론칭하려고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있거든!"
이별이는 잠시 망설였다.
"나... 할 수 있을까? 벌써 3년이나 작품을 안 냈어."
"야, 당연히 괜찮지! 해보는 거야. 어차피 손해 볼 것도 없잖아?"
이별이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해볼게."
배두연은 워낙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바로 다음 날, 이별이의 3년 전 작품을 들고 편집장실을 찾아갔다.
편집장 임사호는 작품을 한참 동안 살펴본 후, 서명란에 적힌 이름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
"샤인이 네 친구니?"
"맞아요! 진짜 대단한 사람이에요. 작품 감각도 정말 뛰어나고요. 저희가 그녀를 영입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임사호는 당연히 샤인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주얼리 디자인 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존재였다.
단 한 번의 작품으로 모든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떤 이는 그녀가 큰 상을 받은 후, 영감을 잃고 더 이상 창작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그녀가 재벌에게 발탁되어, 비밀리에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고도 했다.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모두가 그녀를 잊어버린 이 시점에, 그녀가 다시 돌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임사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친구 오늘 저녁 시간 괜찮아? 같이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해 보자."
배두연은 그 말이 거의 확정이라는 신호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돼요! 지금 바로 연락할게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별이는 임사호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몇 번이나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임사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했다. 단지 그녀에게 이번 주 안에 지정된 스타일로 작품 스케치를 하나 내놓으라고 했다.
만약 사장님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즉시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미 시간이 꽤 늦어졌다.
"이 근처는 택시 잡기가 어려워. 이 시간에 둘이서 돌아가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내가 태워다 줄게"
임사호가 말했다.
"와, 좋아요! 근데,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더니 이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도 갈래?"
이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임사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천천히 다녀와. 괜찮아."
화장실에서 나와 손을 씻으며 배두연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드디어 됐다! 완벽한 성공이야!"
하지만 이별이는 아직도 조심스러웠다.
"너무 일이 술술 풀려서 좀 불안해. 혹시라도 내가 만든 디자인을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너랑 임 편집장님께 너무 미안하잖아."
배두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괜한 걱정 하지마! 우리 사장님 완전 푸근한 성격의 아저씨야. 잡지사 운영도 거의 신경 안 쓰고, 대부분 중요한 결정은 임 편집장님이 내려.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임 편집장님이 널 이렇게 적극적으로 밀어주는데, 틀림없이 잘 될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장실 문 앞에서 뾰족한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서서아가 그녀들 앞에 나타났다.
서로 예상치 못한 만남에 잠깐 정적이 흐른 후, 서서아가 비웃음을 머금고 콧방귀를 뀌었다.
"진짜 짜증나는 년이네.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니는구나"
이별이는 종이 타월을 집어 들고, 손에 묻은 물을 닦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맞을 생각이면 그냥 말해. 괜히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너...!"
서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번에 자신이 이별이의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그녀 혼자가 아니라 배두연까지 함께였다.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이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배두연이 팔짱을 끼고 비꼬았다.
"뭐, 확성기라도 가져와서 ‘여기 불륜녀 구경하세요!’ 하고 외쳐 줄까?"
서서아는 냉소를 지으며 비아냥댔다.
"이별이, 넌 진짜 염치도 없냐? 네가 어떤 수를 써서 주씨 가문에 들어갔는지, 네 스스로도 잘 알지 않아? 이제 와서 날 보고 불륜녀라고? 네 꼴도 나랑 다를 게 뭐가 있다고? 설마 네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차지했다고 착각해서, 창녀짓 해놓고 순결한 여자 코스프레라도 하겠다는 거야?"
배두연이 바로 반격하려 했지만, 이별이가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막았다.
그러고는 담담한 시선으로 서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얘기, 주연준이 해줬어?"
서서아는 단순했다. 앞선 두 번의 만남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뭔가 결정적인 것을 손에 넣었다는 듯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는 이제 막 그 사실을 알게 됐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가 널 얼마나 혐오하는지 말해줬어. 그가 그러더라,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역겨웠다고. 트와일라잇 클럽에서 널 만난 건 인생 최악의 실수였고, 넌 마치 떼어낼 수도 없는 고약한 악취가 나는 파스 같다고. 피부까지 벗겨서라도 닿았던 흔적을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더럽다고!"
서서아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마쳤고 이별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뒤늦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한 발 물러서며, 그녀가 다시 손을 댈까 봐 경계했다.
하지만 이별이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고, 그녀를 때릴 생각도 없었다.
쓰레기통에 종이를 던지듯, 손에 들고 있던 물티슈를 툭 던지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나갔다.
배두연은 얼른 그녀를 따라갔다.
"야, 이별이, 저 여자 말 신경 쓰지 마! 그 개자식 커플, 하나는 개고 하나는 뻔뻔한 불륜녀일 뿐이야! 그냥 개 짖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그녀가 정신없이 떠들고 있을 때, 배두연의 시선이 앞쪽에 머물렀다.
그리고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녀가 방금 욕했던 개자식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연준이 멀지 않은 곳에서 담담하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눈길도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대로 지나쳤다.
강안석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다가오는 여성을 바라보다가 흥미롭게 중얼거렸다.
"어? 저기 네 와이프 아니야? 여긴 또 왜 왔지?"
주연준은 시선을 돌려 바라보며, 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여기까지 와서 또 단순히 이혼을 원한다는 말을 하고싶다는 걸까?
그가 그녀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이별이는 단 한 번도 그를 쳐다보지 않은 채, 멈추지도 않고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
배두연은 살짝 멈춰 섰다가, 마치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주연준을 힐끔 쳐다봤다.
그를 욕하려는 듯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다는 걸 깨닫고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강안석은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면서 대충 얼버무리듯 말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
사실, 주연준이 아내를 싫어한다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