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지금 나한테 애정표현을 하고 있어

예상치 못하게 주안희가 또 따라와서 말했다.

"현진 오빠, 나 무시하지 마요. 진짜 방해 안 할게."

이현진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를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애매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을 선택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안석이 혀를 차며 말했다.

"와, 안희가 이렇게 순한 모습도 있네. 그런데 나 원래부터 궁금했어. 갑자기 해외로 나간 이유가 뭐야? 아무런 전조도 없이 사라졌잖아.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고."

주연준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궁금하면 네가 직접 가서 물어봐."

"그냥 궁금해서 한 말인데, 뭐 그렇게 차갑게 굴어?"

"관심 없어."

사실 주안희가 출국한 당시, 그는 영국에 출장을 가 있던 상황이었다. 그녀가 사라진 걸 알게 됐을 땐 이미 늦었고, 그렇다고 그가 그녀의 일에 특별히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곧 발표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SG 주얼리 매거진의 창립자가 무대에 올라 브랜드의 창립 역사와 비전을 소개했고, 그다음 임사호가 향후 발전 전략을 설명했다.

그는 첫사랑 시리즈가 이번 출시의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더 다양한 디자인과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드디어 모델들이 작품을 착용한 채 런웨이에 오르기 시작했다.

"현진 오빠, 이 시리즈 완전 예쁘다! 나도 사고 싶어."

주안희가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현진은 그녀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무대 뒤편을 향해 있었다.

오늘 디자인 담당자가 무대에 나온다고 했다.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이, 정말 여기에 있는 걸까?

한편, 강안석은 모델들의 주얼리를 감상하며 감탄했다.

"와, '샤인' 실력 대단한데? 확실히 재능이 죽지 않았어. 이 디자인들, 여자들이 보면 안 반할 수가 없겠는데? 이곳이 온통 첫사랑의 달달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주연준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모델 목에 걸린 목걸이 하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목걸이가 이별이의 목에 걸려 있다면 정말 예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피부는 희고 맑았고, 목선은 길고 우아했으며, 쇄골 라인은 완벽했다.

이걸 그녀보다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주연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모델의 손에 낀 반지로 향했다. 만약 이별이가 적당히 물러선다면, 그녀에게 반지 하나쯤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모든 모델들의 전시가 끝난 후, 사회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뜨거운 박수로 SG 주얼리 매거진 ‘첫사랑’ 시리즈의 디자이너, 샤인 님을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가 울려 퍼진 후, 한 사람이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SG 주얼리 매거진의 전속 디자이너, 샤인입니다."

강안석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잠깐만... 저거 네 와이프 아니냐?"

주연준의 시선이 무대 위로 향했다. 그는 깊게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샤인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이번 시리즈의 디자인 콘셉트와 소재에 대해 설명했다.

이때, 사회자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첫사랑 시리즈는 젊은 세대를 주요 타겟으로 한 제품입니다. 그렇다면 샤인 님께서 생각하시는 첫사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혹은, 특별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이별이는 잠시 정신이 팔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회자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되풀이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제 생각에 첫사랑은 풋풋하고 달콤한 감정이에요. 때로는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릴 때, 마치 숙성된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더 깊고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특별한 기억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첫사랑은 그 감정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 순간까지도 조용히 듣고 있던 주연준이 갑자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나한테 애정표현을 하고 있어."

강안석이 대답했다.

"...뭐?"

주연준은 이번만큼은 특별히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나 말고 또 누구한테 첫사랑 운운하겠어."

"......하 참, 진짜 끝내준다."

하지만 주연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 정도면 제법 눈치가 있잖아. 내 마음을 돌려보려고 이런 방법을 쓰다니, 생각보다 머리를 잘 썼네.

그때, 객석에 있던 기자 중 한 명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렇다면 샤인 님의 첫사랑은 언제였나요?"

이번에는 샤인이 한참 동안 대답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학교 때요."

주연준: "……"

강안석: "……와우."

다른 기자도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샤인 님께서 이렇게 오래 기억하고 계신 걸 보면, 그분이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었나 보네요? 어떤 점이 그렇게 인상 깊었나요?"

그 순간, 객석 아래에서 배두연이 미친 듯이 눈짓을 보냈다.

그제야 사회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화제를 돌렸다.

"개인적인 질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주얼리 관련된 내용으로 질문 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더 이상 이별이의 첫사랑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다시 발표회의 본론으로 돌아갔다.

객석에서 주안희는 이를 꽉 깨물며 화를 내고 있었다.

"어떻게 저 여자야? 진짜 역겹다! 이미 사촌 오빠랑 결혼한 주제에 아직도 첫사랑 타령이라니!"

이현진은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뭐라고?"

"현진 오빠, 제가 전에 말했잖아요! 저 여자가 가짜 임신으로 사촌 오빠를 속여서 결혼했다구요! 그러니까 절대 저 여자의 겉모습에 속으면 안 돼요. 완전 계산적이라니까요! 사촌 오빠도 그 여자한테 완전히 휘둘리고 있다구요!"

그때, 주연준은 차가운 얼굴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단단히 다문 입술이 지금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곁에서 강안석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바로 몇 분 전만 해도, 지금 나한테 애정표현을 하고 있어 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주연준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그의 아내가 거침없이 한 방을 날려주며, 현실의 냉혹한 맛을 그대로 안겨주고 있었다.

어쨌든 발표회가 끝나고 조명이 다시 밝혀졌다. 그 순간, 객석에서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이별이는 백스테이지로 돌아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바로 그때, 배두연이 흥분한 표정으로 뛰어왔다.

"별이야! 발표회 대성공이야! 지금 예약 주문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어! 세 가지 제품의 총 예약 수량이 벌써 10만 개를 돌파했어! 이게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알지?!"

이별이는 깊은 숨을 내쉬며, 결과에 만족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이현진은... 갔어?"

오늘 객석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 나는 못 봤어. 그런데 아마 그냥 가지는 않았을 걸? 분명 백스테이지로 찾아올..."

배두연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긴 다리를 한 걸음씩 내디디며 걸어오는 실루엣. 어두운 눈동자가 감정 없이 차갑게 빛났다.

주연준이었다.

이별이와 배두연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 다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지?'

몇 초 후, 배두연은 갑자기 대기실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걸 느꼈다. 얼마나 차가운지 이가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럼... 별이야, 난 문 밖에서 기다릴게."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달아났다.

그렇게, 대기실에는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주연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주얼리를 흘긋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쯤 되면, 나한테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

이별이는 그가 뿜어내는 싸늘한 분위기에 위축되어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물러서다가 테이블에 부딪혔다.

"무, 무슨 설명?"

주연준은 그녀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을 뻗어 그녀 뒤쪽에 놓인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차갑게 가늘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가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