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이현진이 널 찾고 있어
"그렇죠. 여자들은 가끔 삐치면 직접 말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남자의 관심을 끌려고 해요. 부인께서 이혼을 요구한 것도, 어쩌면 주 회장님이 먼저 달래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요?"
주연준은 코웃음을 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헛소리."
이별이가 스스로의 위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었을 리도 없었다.
임남철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인께서 단순히 돈을 바라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주씨 그룹 앞에서 난리를 칠 때, 부인께서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건 주 회장님의 돈이지,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따귀까지 맞았습니다."
순간, 주연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가 맞았다고?"
"네, 꽤 세게 맞았습니다. 손자국이 선명할 정도로요."
짧은 정적 후, 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 남자가 진 빚이 얼마인지 확인해. 갚아주고, 다시는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
오후 3시 10분, 주연준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말했다.
"회사로 돌아가자."
그날 밤 스탠리 맨션의 침실, 그의 시선은 옷장 한편에 걸려 있는 파란색 줄무늬 셔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옷을 볼 때마다, 이별이가 떠올랐다.
만약, 이번 벨기에 출장에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그렇게 나온다면 그녀도, 이 셔츠도 함께 내던져 버릴 생각이었다.
...
SG 주얼리 매거진의 신제품 발표회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다. 무대 뒤에서 이별이는 모델에게 목걸이 길이를 조정해 주고 있었다.
그때, 임사호 편집장이 다가왔다.
"샤인, 오늘 정말 많은 유명 디자이너들과 재계 인사들이 왔어요. 당신의 디자인이 무대에서 빛을 발할 거예요. 오늘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알게 될 겁니다."
이별이는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전부 SG 덕분이에요. 전 그저 숟가락만 얻을 뿐이죠."
그녀는 진심이었다. SG라는 브랜드가 없었다면, 아무도 이름도 없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배두연도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겸손은, 이건 우리 모두의 영광이야. 그렇죠? 임 편집장님?"
임사호 편집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임사호가 떠난 뒤, 그녀는 이별이를 붙잡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이야, 놀라지마."
"왜?"
"방금... 이현진을 봤어."
탁!그 순간, 이별이의 손에 들려 있던 모델의 머리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배두연은 급히 바닥에 떨어진 핀을 집어 들었다.
"사실 이현진은 계속 널 찾고 있었어. 이번에 SG에서 홍보 전략으로 '3년 전 에버영 디자이너 컨테스트 우승 후 완전히 사라졌던 디자이너가 3년 만에 강렬하게 복귀한다!' 이런 스토리를 내세웠잖아. 그러니까, 그가 널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
이별이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배두연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괜찮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둬. 어차피 넌 이혼도 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게 뭐가 문제야?"
"아니... 난... '첫사랑' 시리즈 인터뷰를 생각하고 있었어."
첫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름답지만 상당히 민감한 주제였다.
이미 그녀는 작품의 영감에 대한 인터뷰는 가능하지만, 그녀 자신의 첫사랑 경험과 연결 짓는 건 절대 안된다고 잡지사 측에 확실히 전달한 상태였다.
이건 기준을 잘못 잡으면 당사자들에게 굉장히 불편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었고 지금은 이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이현진이 현재 연인이 있다면, 이 인터뷰가 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배두연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쳤다.
"아 맞다! 이 부분 다시 체크해야겠다. 내가 곧바로 언론사랑 얘기해서 절대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막을게! 나만 믿어!"
그 후, 이별이는 발표회 준비를 하면서도 어딘가 집중하지 못했다.
발표회 현장은 임사호의 예상대로, 현장에는 정말 많은 재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중에는 강안석, 그리고 막 벨기에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주연준도 있었다.
임사호는 주연준을 본 순간 잠시 당황했다.
이 대단한 인물이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강안석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임 편집장님, 이번에 SG에서 '첫사랑' 시리즈를 주력으로 내세웠잖아요? 내부 소식에 의하면 이번 작품들이 정말 엄청나게 예쁘다고 하던데. 그래서 말이죠 우리 주 회장님이 그걸 사서 부인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임사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는 전시용 제품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괜히 주씨 그룹이라는 대형 파트너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
그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강 회장님, 주 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발표회가 곧 시작됩니다."
강안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말했다.
"자, 이제 바빠지실 테니, 가보세요."
임사호가 자리를 떠난 후, 강안석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네 와이프 안 좋아한다며? 그런데 이 시리즈 주제가 첫사랑이야. 이거 선물하면 괜히 오해 사는 거 아니야?"
주연준은 무심하게 답했다.
"오해하면, 그건 본인이 생각이 많은 거겠지.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고."
"......"
강안석은 기가 막혀 속으로 욕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집에도 안 들르고 곧장 발표회장으로 달려왔으면서?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로켓이라도 한 대 사서 가져가지 그러냐.
그는 입을 열어 한마디 더 하려 했지만, 그 순간 문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오는 걸 보고 멈칫했다.
"저거... 주안희 아니야? 언제 귀국한 거지?"
주연준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힐끗 본 후, 무심하게 말했다.
"몰라."
그와 달리, 강안석은 상당히 흥미로운 장면을 포착했다.
보통 당당하고 제멋대로 굴던 주안희가 지금은 마치 껌딱지처럼 어떤 남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분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주안희도 그들을 발견하고 곧장 그 남자를 끌고 다가왔다.
"오빠! 안석 오빠, 연준 오빠! 여기서 뭐 해요?"
주연준은 짧게 대꾸했다.
"일 있어."
반면 강안석은 여전히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안희야, 오랜만이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안석 오빠!"
그녀는 곧장 옆에 있던 남자의 팔짱을 끼고, 신나게 소개를 시작했다.
"맞다, 이쪽은 이현진 오빠예요! 제가 해외에서 유학할 때 만난 사람이에요!"
그 순간, 이현진은 팔짱을 슬쩍 풀어내고 강안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현진입니다."
강안석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아, 우리 만난 적 있죠. 이 회장님 생신 때. 그때 들었어요. 3년 전에 해외로 나가셨다고. 이번에 돌아오신 건가요?"
"네, 얼마 전에 귀국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주연준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주 회장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주연준은 형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짧게 악수를 했지만, 그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를 마주하자마자 이상하게도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주안희가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오! 다들 아는 사이였구나! 현진 오빠는..."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발표회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자, 이제 모든 귀빈께서는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곧, 발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안희는 주연준과 강안석의 앞자리에 빈자리가 있는 걸 보고, 이현진을 향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우리 저기 앉아요!"
하지만, 이현진은 그녀와 함께 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난 따로 앉을게. 볼 일이 좀 있어서."
그러고는 그녀와 거리를 두기 위해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