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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밤이 너무 깊어져, 바다마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복도 비상등만이 희미하게 빛을 내며 카펫 위로 차가운 사각형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오래된 앨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우리의 사진 위에서 멈췄다. 처음 만난 날, 어설프고 순진한 미소. 종이는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약했고, 마치 그 기억 자체가 이미 곯아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자물쇠가 찰칵 소리를 냈다.

권준오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발걸음은 가볍고 머뭇거렸으며, 이제는 자기 것이 아닌 공간에 몰래 들어온 사람 같았다. 아니면, 단지 죄책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직도 안 자고 있어?"

그가 억지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여기 춥잖아. 침대로 와."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얼어붙은 미소들 위에 박혀 있었다.

"우리 얘기 좀 해."

내 목소리는 평평했고, 칼날처럼 단정했다.

두 박자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그가 앨범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앨범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을 틀었다. 그의 손은 허공에서 멈칫했다가 힘없이 내려갔다.

"가영아, 이러지 마."

"그럼 제대로 얘기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앨범을 덮고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

"좋아. 약혼 취소 얘기부터 하자."

그가 급히 다가와 내 팔을 너무 세게 움켜쥐었다.

"뭘 원하는 거야? 난 널 떠날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어. 양가 가족들이 다 준비하고 있는데, 이러면 모두 망신당하는 거야."

나는 천천히 돌아서서, 차갑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지지 않는 건 간단해. 대신 그녀와 관계를 끊어. 최혜나를 네 인생에서 삭제해. 어디서든 차단하고, 연락 일절 금지. 그거 할 수 있어?"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턱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입술은 단단하게 다물렸다.

"매니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그녀를 해고하는 건 내 커리어에 불 지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입가에 가늘고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진짜 중요한 매니저는 있어. 영향력 있고 인맥 있는 사람. 그런데 그녀는 신인이야. 도움 대신 혼란만 가져와. 모르는 척하면서 나를 무시하지는 마."

그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체면을 지키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조금만 너그러울 수는 없어? 우리 정말 순전히 업무 관계야. 왜 계속 이걸 파고드는 거야?"

"내가 파고드는 거야? 아니면 네가 먼저 선을 넘은 거야?"

내 말은 군더더기 없이 그 체면이라는 가면을 베어냈다.

"넌 이제 그 이름 없는 단역배우가 아니야. 업계 최정상이지. 십수 명의 베테랑 매니저들이 너랑 일하려고 줄 서 있어. 그런데도 너는 그녀를 택했어. 인맥도, 영향력도, 성과도 없는 그녀를.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는 우리 삶 구석구석에 다 스며들어 있더라."

나는 멈추지 않았다. 칼날을 한 번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발렌타인데이에 너는 집에서 조용히 보내자고 약속했어. 그런데 그녀한테 전화 한 통 오더니 갑자기 '야근' 때문에 우리 집에 오게 됐지. 우리 영화 보는 날엔 그녀가 '우연히' 표가 두 장 더 생겼다며 세 좌석을 일렬로 만들었고, 그녀는 네 옆에, 나는 혼자 맨 바깥에 있는 자리였지. 그리고 오늘 밤,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도 그녀였는데, 넌 또 그녀 편을 들었고."

그의 숨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는 시선을 피했다.

"난 자유가 필요해. 유명한 매니저들은 숨 막혀. 혜나는 나를 옭아매지 않아. 편하게 일할 수 있게 해줘."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건 협상이 아니야. 최후통첩이야. 그녀가 떠나든지, 아니면 우리가 끝이 나든지."

그의 동공이 바늘처럼 좁아졌다. 충격이 얼굴 위로 정확하게 지나갔다.

그때 문이 세게 두드려졌다.

"준오야!"

김민재의 목소리는 거의 공황 상태였다.

"혜나가 쓰러졌어!"

그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공포가 그의 얼굴을 그대로 찢고 지나가며 그는 질주하듯 문으로 뛰어갔다.

나는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등을 곧게 세우고 낮고 단단하게 말했다.

"준오 씨, 지금 나가면 우리는 끝이야. 영원히."

그가 문턱에서 멈춰 뒤돌았다. 애원하는 눈이었다.

"가영아, 이러지 마. 그녀는 여기서 나밖에 몰라. 아프고… 겁먹었을 거야."

복도에서 김민재의 흐릿한 외침이 이어졌다.

"수액을 거부하고 있어!"

권준오가 마치 이미 몇 시간 전에 선택을 끝내놓은 사람처럼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나중에 얘기하자."

문이 벌컥 열렸고, 바람이 스위트룸으로 밀려들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총성처럼 짧고 날카로웠다.

꽃과 레이스, 결혼식의 환상으로 가득한 방은 단숨에 냉랭해졌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 낭비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내일 약혼식은 취소합니다.]

하우스 매니저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육지로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바로 이어 보냈다.

[아침에 하선하겠습니다.]

여행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맞춤 제작한 하얀 드레스를 조심스레 접어 넣었다. 앨범, 서류, 처방전, 벨벳 보석 상자를 하나씩 가방에 넣었다.

지퍼가 마지막 직사각형의 소리를 내며 닫혔다. 금고처럼 완전히 봉인되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유리문 너머를 바라봤다.

바닷바람은 소금과 쇠의 맛을 품고 있었고, 녹슨 자물쇠상자처럼 무거웠다.

이 페이지는 넘겨졌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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