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한국어

영화 배우가 뭐 대수라고

12.0K · 완결
퇴색한표지
7
챕터
383
조회수
9.0
평점

개요

15억짜리 요트에서 약혼 파티를 앞둔 전날 밤, 나는 약혼자가 그의 매니저를 몰래 배에 들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광고 계약 마무리를 위한 업무상 만남이라고 설명했지만, 샴페인 타워는 우리의 결혼식을 위한 것이지 둘의 한밤중 회의용으로 준비된 게 아니었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갑판 위에는 와인 잔들이 달빛을 받아 잔혹한 농담처럼 빛났다. 바닷바람은 배신만큼이나 날카롭게 얼굴을 스쳤고, 사랑이 자리해야 할 곳에는 차가운 공허만 남아 있었다. 바다로 나온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결국 그의 눈을 마주하고 모든 것을 끝낼 말을 꺼냈다. "권준오, 우리 이제 끝내자."

현대물사이다후회남 불륜관계

제1화

15억짜리 요트에서 약혼 파티를 앞둔 전날 밤, 나는 약혼자가 그의 매니저를 몰래 배에 들이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광고 계약 마무리를 위한 업무상 만남이라고 설명했지만, 샴페인 타워는 우리의 결혼식을 위한 것이지 둘의 한밤중 회의용으로 준비된 게 아니었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갑판 위에는 와인 잔들이 달빛을 받아 잔혹한 농담처럼 빛났다. 바닷바람은 배신만큼이나 날카롭게 얼굴을 스쳤고, 사랑이 자리해야 할 곳에는 차가운 공허만 남아 있었다.

바다로 나온 지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결국 그의 눈을 마주하고 모든 것을 끝낼 말을 꺼냈다.

"권준오, 우리 이제 끝내자."

......

"왜?"

권준오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에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 그대로 새겨졌다.

"김가영,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우리 5년이나 만났잖아. 내일이 약혼식인데 갑자기 헤어지자고?"

나는 난간에 기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2년 동안 공들여 준비한 모든 계획과 디테일이 꿈처럼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우스운 농담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곧 알게 될 거야."

침묵을 깨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권준오가 문을 열자 그의 매니저 최혜나가 서 있었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부드럽고 달콤했고, 아양을 떠는 기색이 분명했다.

"준오 씨, 루소 광고 계약 마무리해야 해요."

그녀의 시선이 나를 훑고 지나가더니, 잠깐 우쭐한 표정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이 요트에 탄 지 이틀 동안, 한밤중까지 포함해서 그 계약을 열두 번도 넘게 '마무리'했는데, 그래도 내일 약혼식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순간 권준오의 눈에서 짜증이 번쩍였다.

"가영아, 이 계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내 커리어에서 정말 큰 일이라고."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웃기네. 한 달 동안 약혼식 메뉴 좀 봐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는지 기억나? 항상 너무 바빠서 시간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최혜나가 좋아한다는 망고 디저트 추가하려고 하우스 매니저를 만나더라? 나는 망고 냄새만 맡아도 두드러기 나는 사람인데."

권준오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 최혜나의 눈에 때맞춰 눈물이 맺혔다. 목소리는 마치 연습이라도 하고 온 듯 정확한 떨림을 띠고 있었다.

"제 잘못이에요. 어젯밤에 제가 망고 얘기를 꺼냈어요. 준오 씨는 탓하지 마세요. 제발 이런 작은 일로 두 분 사이가 틀어지면 안 되죠."

그녀는 셔츠 밑단을 꼬아 쥐고 속눈썹을 떨며, 연약한 척하는 모습까지 빈틈이 없었다.

"준오 씨가 요즘 너무 바빴어요. 제가 스케줄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지켜보았다. 손을 뻗어 권준오의 옷깃을 고쳐주는 동작까지, 백 번은 연습해본 사람처럼 매끄러웠다. 그는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녀가 하기 쉽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가슴이 타들어갔다.

"준오와 내 관계에 외부인은 필요 없어."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눈물이 예쁘게 맺혀 있었다.

"죄송해요... 방해하면 안 되는 건데. 저는 정말 일 때문에 온 거예요."

그녀의 손이 문손잡이에 닿는 순간, 권준오의 손바닥이 문을 막았다.

"가지 마."

그는 몸을 살짝 돌려 그녀를 가리고 섰고, 다시 나를 마주한 얼굴에는 전에 본 적 없는 차가움이 떠올라 있었다.

"가영아, 그만해.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잖아. 네 감정 하나하나를 다 맞춰줄 순 없어."

나는 비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지 않았다.

"그래? 매니저랑 밤새 붙어 있어야만 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인데?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야 그녀가 너한테 '자기야'라고 부르는데?"

나는 파파라치 사진들을 엄지로 넘기며 보여줬다. 장미, 촛불, 케이크. 흐릿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그녀의 얼굴.

"네 매니저는 촛불 켜놓고 너랑 발렌타인데이를 보낼 수 있는데, 정작 약혼녀인 나는 열이라도 나면 '따뜻한 물 많이 마셔' 같은 말이나 듣고 끝이야."

최혜나의 입가가 잠깐 굳었다가 다시 순진한 얼굴로 돌아갔다.

"가영 씨, 너무 오해하신 거예요. 그 애칭은 대사 연습하다가 나온 거고, 식당도 우연이었어요. 그날 밤엔 진짜 일 때문에 만난 거였어요."

"그만."

권준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언제 이렇게 악의적으로 변한 거야? 혜나는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을 때 도와준 사람이야.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어."

나는 냉소를 감추지 않았다.

"은인이라고? 좋지. 그럼 실제로 그녀가 성사시킨 계약이 몇 개인데?"

그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혜나의 눈에 다시 눈물이 촉촉하게 차올랐다.

"제가 신입이라서 그래요... 더 많이 못 해드린 게 제 잘못이에요."

그 말에 권준오의 몸이 마치 보호라도 해야 한다는 듯 반사적으로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

"그녀는 제안서 준비하느라 사흘 밤을 꼬박 새웠어. 나 도우려고 자기 몸 다 망가뜨리고 있다고. 그런데 네가 그녀 능력을 비웃는 거야?"

그가 진심이라고 믿는 그 표정이,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맞아. 사흘 밤을 그녀와 보냈겠지. 정작 약혼자인 나는 너 얼굴 보려면 최소 하루 전에는 예약해야 하는데."

그의 말투는 점점 다급하고 방어적으로 바뀌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그녀는 내 매니저야. 가까이 지내야 하는 건 업무의 일부라고. 너는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너한테만 매달리길 바라는 거야? 가영아, 배 타기 전에도 말했잖아. 남자는 커리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내 세상이 오직 한 사람만 중심으로 돌 순 없어."

나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분노가 날카롭게 정제되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그럼 잘 들어. 내 사랑은 세 명이 타는 구조가 아니야."

권준오의 턱근육이 굳어졌다. 최혜나는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비단처럼 부드럽지만 칼날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영 씨, 정말 오해하신 거예요. 준오 씨와 저는 그냥 파트너예요. 저는 그분에게 그런 감정 없어요."

나는 코웃음을 쳤다.

"감정이 없다고? 나를 바보로 아나?"

권준오의 주먹이 꽉 쥐어졌고, 눈빛은 단단한 쇠처럼 굳었다.

"그만해. 그녀는 내 매니저야. 가장 가까운 협력자라고. 그녀를 모욕하는 건 용납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