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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당신은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2)

허찬욱은 보안 요원들과 함께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 하희진과 소혜진 앞에 섰다.

그는 하희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얇은 금테 안경을 살짝 들치며 소혜진을 바라보았다.

"저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소혜진은 눈썹을 찌푸렸다.

"소혜진인데, 왜요? 나한테 작업 걸려는 거면 눈치 좀 챙기고 들어오세요. 지금 나 엄청 바쁘거든요."

허찬욱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다시 한번 유심히 살폈다.

“우리 형님이 말씀하신 그 귀신 같은 여자랑 똑같이 생겼는데…”

원래 외모도 평범한 편인데, 진한 화장까지 덧칠해 오히려 더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자뻑하는 거야?”

"소혜진 씨,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저희 쇼핑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그는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부로 저희 대표님 명의의 모든 백화점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소혜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뭐?! 그 대표란 사람, 도대체 누군데 감히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난 이 백화점의 VVIP라고! 너희가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어?"

"대표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허찬욱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는 옆에 있던 보안 요원들에게 손짓하며 냉랭하게 명령했다.

"이 사람 당장 내보내."

보안요원 두 명이 다가와 한 명은 그녀의 팔을, 한 명은 다리를 붙잡고 매장에서 질질 끌어냈다.

소혜진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너희들, 나한테 무슨 짓 하는지 알기나 해?! 당장 날 내려놔!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고,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편, 하희진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허찬욱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이게 무슨 상황이죠?"

그러나 허찬욱은 대답하지 않고, 공손하게 인사한 뒤 조용히 매장을 떠났다.

그때, 직원이 포장된 코트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고객님, 구매하신 제품입니다."

"감사합니다."

하희진은 옷을 받아들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에테르나 럭스 주차장,

검은색 페라리 Sbarro-Tornado-SB1이 태양 아래에서 은은한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전 세계 단 10대 한정 생산된 초호화 스포츠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차 안, 한 남자가 눈을 감고 조수석 등받이에 기댄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창문이 반쯤 내려가 있어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지만, 그것 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허찬욱이 차량에 탑승하며 그를 한번 힐끔 보고는 금테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말했다.

"형님, 그 여자는 이미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형님 명의의 모든 쇼핑몰에서 그녀를 영구 블랙리스트에 추가했습니다."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지만, 단 한 음절만으로도 권위가 느껴졌다.

“내가 조사하라고 한 건?”

남자가 물었다.

"조사하라고 하신 건 말입니다…"

허찬욱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그 여성분 성함이, 하희진이라고 합니다."

하희진…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계속 말해."

남자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그분… 형님의 아내이십니다."

순간, 남자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확장된 동공을 뜬 채, 싸늘한 시선으로 허찬욱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상상도 못 한 결과였다.

인생이란 가끔은 기묘한 우연을 만들어낸다. 믿기지 않을 만큼 기가 막힌 우연을.

"네, 맞습니다."

허찬욱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형님과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아직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본 적 없는 아내라고 합니다. 방금 형님께서 회의 중일 때, 그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원래 회의 끝나고 바로 보고하려 했습니다."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어딘가 날카롭고 의미심장했다.

“…재밌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찬욱이 신중히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오른손 검지에 끼워진 은색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아직은 내버려 둬."

"네, 형님."

허찬욱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그런데… 오전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좀 쉬시는 게 어떨까요? 아직 부상도 다 안 나으셨잖아요."

사실, 허찬욱이 가장 존경하는 점이 바로 사경현의 강철 같은 멘탈이었다.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심지어 통증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까지 맞아가며, 겉으로는 멀쩡한 모습으로 버텼다.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어."

"아, 형님. 이건 아내 분께서 결혼 전에 겪은 일들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 많더군요.

허찬욱은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소태진, 하은지, 그리고 하희진 사이의 스캔들이 담긴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보여주었다.

사경현은 진지한 눈빛으로 내용을 읽어나갔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차갑게 소태진의 사진에 머물렀다.

사진 속 소태진은 한 골프장에서 여유롭게 스윙을 하고 있었다.

"이게 그 남자야?"

사경현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이렇게 못생겼다고?"

남자의 눈빛에 노골적인 경멸이 서렸다.

"사실 그렇게까지 못생기진 않았죠. 해성에서도 꽤 유명한 미남이고, 온화하고 지적인 이미지라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습니다."

"눈이 안 보이나 보네. 그럴 거면 떼다 파는 건 어때?"

"…에헴."

허찬욱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불만을 삼켰다.

쇼핑을 마친 하희진은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쇼핑의 기쁨 덕분인지, 아까 쇼핑몰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 잊은 듯했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은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리고는 팔을 뻗어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하희진, 오늘 오빠가 너한테 고백했지? 엄청 기분 좋았겠네?"

"그리고 어제 내가 아빠한테 맞는 거 보면서 속으로 얼마나 통쾌했어?"

하희진은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

"빌런이 벌받는 걸 보면 당연히 기분 좋지 않나?"

하은지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곧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 너 진짜 맞아야 정신 차리겠어?"

"필요하면 아빠 불러줄까?"

하희진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너…!"

하은지는 이를 악물었지만, 하희진은 더 이상 상대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쇼핑으로 피곤했던 터라, 말싸움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냥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려던 순간, 발밑에서 뭔가 단단한 물체가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바닥에 사경연 사진이 걸린 열쇠고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숙여 열쇠고리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하은지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와 그것을 낚아채며 차갑게 말했다.

"돌려줘."

하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움직인 탓인지, 그녀는 등에 있던 상처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렸다.

고통에 짜증이 난 듯, 그녀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하희진은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무시한 채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하은지가 사경연을 좋아한다고?'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에 살짝 놀랐다.

하은지는 늘 해외 셀럽들이나 외국 연예인들을 좋아했지, 국내 유명인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온 하희진은 기분 좋게 새로 산 옷을 거울 앞에서 하나하나 매치해 보았다.

그런 다음 책상 앞에 앉아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노트북을 켜고 곧바로 롤을 시작했다.

이 게임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살이 찌고 사람들에게 멸시받던 시절, 오직 이 게임만이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의 닉네임은 "세븐"

행운의 숫자가 7이었기 때문이다.

그 닉네임은 줄곧 국내 서버 랭킹 1위를 지켜왔고, 그녀는 유명한 솔로 랭크 최강의 원딜을 박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엄청난 실력 덕분에, 심지어 프로게이머들과의 1대1 맞대결에서도 손쉽게 승리하곤 했다.

수많은 프로팀에서 그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보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게임은 그녀에게 단순한 취미일 뿐이었고,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똑똑똑——"

막 게임을 시작하려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희진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문쪽으로 돌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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