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4년 후
4년 후.
포세이돈호 럭셔리 크루즈 위.
"또각, 또각. "
10cm짜리 금빛 스팽글 하이힐이 대리석 바닥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듯했다.
무릎까지 오는 검은색 스커트 자락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운 술 장식을 스쳤고, 하얗고 가느다란 두 다리는 눈길을 사로잡았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은 핸드백을 잡은 채 가느다란 허리 옆에 살짝 닿아 있었다.
검은 망사 예모가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클래식한 미모가 아련하게 드러났다.
붉은 입술은 불꽃처럼 선명했고, 그 모습은 절대적인 존재감으로 빛났다.
"희진, 목표 인물이 나타났어. "
이어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희진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찬란한 조명 아래 눈빛이 매력적으로 흘러넘쳤다.
앞쪽에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를 반듯이 넘긴 서양 남자가 동행한 남자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이번 작전의 목표 인물, 에단 워서프였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키 큰 남자를 보는 순간, 민희진의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그럴 리가 없어… 하남경이 왜 여기에?'
에단은 마주 걸어오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자 말을 멈췄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는 무심코 휘파람을 불었다.
동행한 남자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어두운 눈동자가 여자를 스치듯 한 번 보았을 뿐인데, 뭔가 감지한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민희진은 눈을 한 번 깜빡이며 모든 감정을 마음속에서 지워냈다.
귀 옆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넘기며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나지막한 비명과 함께 몸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려 했다.
에단이 재빠르게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순간 그의 마음이 요동쳤다.
"Thank you. "
민희진은 간신히 균형을 잡고, 겁먹은 듯 연약한 표정으로 에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별말씀을. "
에단은 손을 여자의 귀 옆으로 한 번 흔들었고, 마술처럼 금박 명함을 꺼냈다.
"내 명함이야. 오늘 밤 시간 있으면 한잔 어때?"
민희진은 요염하게 웃으며 명함을 받고 떠났다.
한두 걸음 걷다가 뒤돌아 그 남자에게 윙크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자가 점점 멀어지자 공중에는 잔향만 남아 있었다.
에단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방금 그녀의 허리를 감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허리 치수를 재보듯 손으로 비교했다.
"세상에, 정말 가늘군. 역시 동양 여자가 최고야. "
대답이 없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하남경의 시선은 아직도 여자가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뭘 발견한 거지? 여자 근처에도 안 가던 우리 하 대표가 미색에 끌리는 순간도 있다니. "
하남경은 정신을 수습했다.
그 몸매, 그 눈빛이 그에게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게 했다.
"남경, 넌 이미 아내랑 아이가 있잖아. 이 여자는 내 거야. "
에단이 장난스럽게 하남경의 어깨를 쳤다.
"역시 오길 잘했어. 난 꼭 동양 여자를 아내로 맞을 거야. "
하남경은 그를 흘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에단은 웃으며 따라붙다가 어깨를 감으려 했지만, 하남경이 자연스럽게 피했다.
"남경, 형수님께 부탁해서 몇 명 더 소개시켜 줘. "
……
민희진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청소부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청소부와 스쳐 지나갈 때, 민희진은 손에 쥔 방 카드를 청소부의 손에 건네주었고, 태연한 표정으로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희진, 잘했어. "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희진은 말없이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희진, 정말 그만둘 생각이야? 잘하고 있었잖아. 네가 떠나면 우리 어디서 너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찾겠어?"
이어폰 속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민희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4년 만에 다시 본 그 남자, 여전히 잘생겼다.
세월이 흘러 서른을 넘긴 지금, 하남경은 예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냉정해졌으며, 얼굴선은 더 날카롭고 기세는 더욱 강했다.
이곳에서 그를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희진, 네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나도 그리울 거야.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게. "
이어폰 속 목소리는 여전히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어디에 있든 마음은 함께야. 우리는 최고의 파트너잖아. "
민희진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이어폰을 뺐다.
문을 밀고 나오자, 그녀는 이미 옅은 보랏빛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진한 복고풍 메이크업은 깨끗이 지워졌고, 입술에는 연핑크 립글로스만 남았다.
거울 속의 여자는 부드러운 눈매 속에 예전보다 단단한 기품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진짜 민희진이었다.
세면대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따라 천천히 훑었다.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바라보자, 그림자도 함께 웃었다.
그 미소엔 더 이상 주저함이 없었다.
지금 이곳에 선 사람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민희진이었다.
그녀가…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