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800억원, 내가 물러날게
"그때 내가 민 씨 그룹에서 기밀 파일을 빼돌리지 않았더라면, 하남경. 너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을까? 네가 얻은 것에 비해 800억원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민희진은 붉어진 눈으로 하남경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남경이 던진 혐오 섞인 시선을 마주하며 마음은 찢겨지는 듯했다. 하지만 민희진은 지금 민 씨 그룹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이 돈이 필요했다.
"하남경과 나는 여전히 부부야. 그가 결혼 중에 외도를 했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게 도리에 맞지 않아?"
"잊지 마. 넌 결혼 전에 이미 합의서에 서명했어. 내 아들이 번 돈이야.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
사영희가 날카롭게 말했다.
민희진은 사영희를 무시했다. 이를 악물고 하남경을 바라봤다. 눈가의 눈물은 고집스럽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남경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이 여자는 정말로 자기가 민 씨 그룹을 팔아넘겨 자신을 도왔다고 믿는 걸까? 그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하남경은 그런 짓을 부탁한 적도, 바라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혐오스러웠다. 민희진의 모든 행동이.
"하남경, 나 800억 원만 있으면 돼!"
"지금 나한테 흥정할 자격이라도 있다고 생각해?" 하남경이 차갑게 웃었다.
민 씨 집안 상황은 이미 귀에 들어왔다. 그는 눈앞의 어리석은 여자를 바라봤다.
"민희진, 경고했을 텐데. 후회하지 말라고. "
민희진의 머릿속에 병실에서의 장면이 스쳤다.
그때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민희진은 갑자기 들고 다니던 가방에서 과도를 꺼냈다.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칼을 목에 가져다 댔다.
"내가 죽어야 속이 시원해?"
하객들이 놀라 소리쳤다.
"미친 년! 이 파렴치한 여자가! 내 손자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 내 아들까지 해치려 들어? 뒤지고 싶으면 멀리 가서 뒤져!"
사영희는 관자놀이가 따가워 났다.
'이 여자는 정말이지, 못 할 짓이 없었다.'
"맞아, 죽고 싶으면 죽어. 누구도 안 말려!" 허가인이 덧붙였다.
허가인은 민희진이 자살할 거라 믿지 않았다.
"하남경, 나 후회해. 정말 후회해. 당신처럼 시비를 가릴 줄 모르는 인간을 사랑해서는 안 됐어.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것도 후회하지만, 나는 당신을 속이려 한 적 없어.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어머니가 당신의 음식에 약을 넣었어. 그래서 내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 "
"내가 천만 번 잘못한 건, 아이를 가졌으면서도 지킬 힘이 없어서, 당신들한테 당했다는 거야!"
민희진은 그 말을 하며 손에 든 과도를 자신의 피부에 찔렀다.
순식간에 피가 솟아 나왔다.
하객 중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남경의 얼굴색이 굳어졌다. 정말 할 거라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그 말뜻은…
"민희진,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사영희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헛소리를 하는지 아닌지는 하늘이 알겠죠. 아니라면 맹세라도 할 수 있으세요?"
민희진은 한 걸음씩 사영희에게 다가갔고, 목에서 흐르는 피는 섬뜩했다.
"당신 정말 미쳤어! 빨리 저 여자를 끌어내!"
사영희는 허세를 부리며 피하려 했다.
민희진은 더 이상 이런 말이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피로 얼룩진 눈으로 한쪽에 서 있는 알 수 없는 표정의 남자를 바라보며 체념한 듯 말했다.
"하남경, 800억 원. 나와 아이 두 목숨과 당신의 평온을 얻는다면, 손해는 아닐 거야. "
화려하게 치러졌던 잔치가 유혈 사건으로 변할 극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민희진, 그만해!" 하남경이 차갑게 말했다.
"하남경, 난 800억 원만 있으면 돼. 다시는 당신들 괴롭히지 않을게. 나… 축복해 줄 수 있어. 당신들이 영원히 한마음이 되기를 빌어 줄게. "
민희진의 눈물이 피와 섞여 떨어졌다.
목에 난 상처의 아픔은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민희진은 하남경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여전히 근심 없는 민 씨 그룹의 장녀였을 것이고, 여전히 사랑에 대한 동경이 가득 찬 마음 여린 소녀였을 것이다.
"당신은 합의서를 봤어야 했어. "
하남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독한 여자가 감히… 민희진이 아니었다면 김유리의 아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그렇게 여러 번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민희진의 실수로 힘겹게 버텨가는데, 이 여자에게서 한 치의 반성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결국 민희진이 아이를 잃은 것을 가엾게 여겨 거액의 위자료를 지불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 민희진은 스스로 그의 연민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나는 800억 원만 있으면 돼. " 민희진의 눈빛이 약간 흐릿해졌다.
그녀는 지금 오직 민 씨 그룹을 구하는 데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어떤 존엄도, 어떤 사랑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돈은 줄 수 있어. 하지만 조건이 있다!" 하남경이 말했다.
민희진의 눈에 빛이 돌았다. "말해봐!"
"앞으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하남경은 냉정하게 말했다. "영원히!"
칼이 떨어졌다. 그 반짝임이 그녀와 하남경의 얼굴을 스쳐갔고, '탕' 하고 떨어진 칼소리는 마치 그들의 관계의 단절을 표시하듯 하였다.
그녀는 그 순간, 모든 걸 잃은 느낌이었다. 800억 원은 그녀의 모든 것을 끊어놓았다.
이후 그녀는 어떻게 그 정원을 떠났는지, 어떻게 이혼 계약서에 서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고모에게서 800억 원의 자금이 회사 계좌로 입금되어 민 씨 그룹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만 기억했다.
그때 그녀는 실성한 듯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며 끝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했다.
3년간의 헛된 사랑은 터무니없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날 밤, 민희진은 그 곳을 떠났다.
하남경에 관한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미련을 두지 않을 것이며, 그 누구를 위해서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