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중절수술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장승희는 급하게 다그쳤다. 순간 무언가 생각난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 때 받은 배상금이 가해자가 준 것이 아니지?”

그녀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쳤고, 아들의 장례식에도 많은 돈을 썼었다. 귀국하기 전, 임지연은 가해자가 준 배상금 중 입원비와 장례식 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돈이라며 그녀에게 돈을 준 적이 있었다.

임지연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었다.

장승희는 그녀의 침묵을 묵인으로 받아들였다. 아직 어린 딸이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났지만 한편으론 믿기지가 않았다.

"너, 너 설마… 몸을… 아니지? 지연아, 아니라고 해줘 제발."

그녀는 임지연의 손목을 붙잡고 소리쳤다.

"이 아이는 낳으면 안 돼! 지금 당장 병원에 가자!”

"왜?"

임지연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이 아이를 낳으면 너의 인생은 골로 가는 거야! 네 인생은 끝나는 거라고!"

이미 시집을 간 딸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알려지면 인생을 망칠 것이 뻔했다.

"엄마, 제발, 낳게 해줘."

임지연은 울면서 애원했다.

하지만 딸이 아무리 빌어도 장승희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제 하나 남은 딸의 인생이 더 힘들어지는 걸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당일 바로 임지연을 병원에 데려갔다. 그녀가 가지 않으려 하자 장승희는 죽음으로 위협하면서까지 억지로 끌고 갔다.

중절수술은 각종 검사를 받아야 했다. 장승희가 검사 결과지를 가지러 갔을 때, 임지연은 홀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배를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쓰리고 막막했다.

"서운 씨, 이젠 괜찮아요.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요. 살짝 데인것 뿐인데요 뭐."

이때 백소정이 웃으며 말했다.

검은색 타이트 스커트를 입어 몸의 라인을 그대로 드러낸 그녀는 어깨에 정장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 옆에 선 차서운은 흰색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올려 탄탄한 팔을 드러냈다.

차서운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화상은 제때에 치료 안하면 흉터가 남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백소정이 그의 품에 기대며 애교스럽게 물었다.

"흉터가 남으면 저 싫어할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백소정은 깔깔 웃었다. 그녀는 차서운이 그렇게 얄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천천히 고개를 든 임지연은 백소정이 차서운에게 기대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둘의 모습은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

그들에 비하면 그녀는 정말 볼품 없었다. 어린 나이에 순결을 잃었고, 뱃속에 아비도 모르는 애를 임신하고 있다.

그녀가 한창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차서운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다음 환자분."

수술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뒤에는 젊은 여인이 배를 감싸고 걸어 나오며 중얼거렸다.

"중절수술이 안 아프다며, 누가 그래? 엄청 아프잖아...”

차서운은 미간을 찌푸리고 시선을 임지연의 얼굴에 고정했다.

‘내 앞에서는 뱃속의 아이를 엄청 신경 쓰는 척하더니, 뒤돌아서고 바로 중절수술하러 온 거야?’

그는 마음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백소정도 그의 눈길을 따라 그가 보고 있는 방향을 보았고, 그렇게 임지연을 봐버렸다.

임지연을 본 순간, 백소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듯한 얼굴인데 말이다.

그녀는 차서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여자 알아요?”

"몰라."

차서운은 싸늘하게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임지연에게 많은 꼬리표를 달았다.

사생활 문란, 어린 나이에 임신, 그의 앞에서 모성애를 보이고는 바로 낙태하러 달려오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정말 여우같은 여자다!

"잘 생각해 보셨어요?"

간호사가 거듭 확인했다.

임지연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내키지 않고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임지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도 보지 않고 간호사를 따라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의 문이 닫히니 바깥의 모든 것이 차단됐다.

한편 백소정은 차서운이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리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다정하게 팔짱을 끼면서 "서운 씨.”라고 부드럽게 차서운을 불렀다.

하지만 차서운은 냉랭한 얼굴로 대답했다.

"가자.”

백소정은 그의 팔을 더 꼭 껴안았다. 그녀는 이미 닫힌 수술실 문과 차서운의 반응을 번갈아 보더니 생각에 잠겼다.

둘이 모르는 사이는 아닌듯 했다.

오랫동안 그의 곁에 있었는지라, 한 번도 나타난적이 없는 여자인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방금 그 여자는 누구일까?

그는 왜 화가 났을까?！

"서운 씨, 아까 그 여자......”

차서운은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은지라 이내 그녀를 껴안았다.

"상관없는 사람야. 마음 쓰지마.”

백소정은 비록 그 여자가 누구인지 엄청 궁금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 안에서 차가운 기구들을 본 임지연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안돼! 이 아이를 이렇게 버릴 수는 없어, 안돼!’

"여기 누우세요."

의사가 수술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수술 안 할게요.”

임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 수술실을 뛰쳐나갔다.

너무 빨리 달린 나머지 당황하여 앞길을 미처 살피지 못한 그녀는 맞은편에서 몰려오는 사람들 사이의 한 남자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그녀는 이마를 만지며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임지연 씨?"

하유준은 그녀를 보면서도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녀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