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그때 면접관이 분명 자신에게 만족해했는데... 임임지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보다 더 적합한 상대를 찾은 건가? 임지연은 생각해 보니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아니었다.
저녁.
차서운은 돌아오자마자 서재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마 업무에 관련된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오후에 임지연은 정숙 이모님한테서 차서운이 좋아하는 요리에 대해 알아보고는 저녁밥을 직접 준비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흡족했던 정숙 이모님은 웃으면서 말씀했다.
“이게 바로 아내가 해야 할 일이죠. ”
임지연은 고개를 숙이고 그저 웃었다. 부탁해야 할 입장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의 비위를 맞추진 않았을 것이다.
옆에 있던 정숙 이모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님은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어르신은 둘째 부인님을 맞이했죠. 그 후론 도련님은 자주 고택에 오지 않으셨어요. 겉으론 냉정한 것으로 보여도 사실 정이 많으셔요. ”
임지연은 말이 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백 씨 아가씨 말이에요, 어렸을 적 도련님을 구해드린 적이 있어요, 어른이 된 후론 계속 도련님을 따랐어요. 도련님은 그전까지만 해도 그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그때 출장에서 돌아오신 후부터 그녀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변하셨어요.... 하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작은 사모님이야말로 진정한 안주인이시니깐요. ”
정숙 이모님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위안했다.
임지연은 머리를 숙이고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누구랑 잘되든 자신이 말할 자격은 없었다. 비록 명의상의 부부 사이지만 그 둘은 그토록 낯설었다.
이 결혼에 대해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임지연은 서재 쪽으로 보고는 아침에 백소정이 끓인 블랙커피가 생각나 정숙 이모님에게 물었다.
“이모님, 커피 원두는 어디에 있어요? 제가 그이에게 커피를 끓여주려고요. ”
정숙 이모님은 들으시더니 임지연이 마음을 쓴다고 생각했는지 커피 원두를 꺼내 그녀에게 주셨다.
“설탕과 우유는 빼주세요. 도련님은 단 것을 싫어하세요. ”
임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원두를 받은 그녀는 아주 빨리 커피 한 잔을 끓인 후 정교한 커피잔에 커피를 붓고는 직접 서재로 들고 갔다.
그때 서재에서 한창 통화 중이던 차서운은 조금 화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인사부는 뭐 하는 거야? 번역원 한 명 뽑는데 이렇게 어려워? ”
그가 할 줄 아는 언어가 적지 않았지만, A 국의 언어는 진짜 그라도 알지 못했다. 통용이 되지 않은 언어이기도 하고 이 프로젝트는 새로 확장한 것이라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그는 업무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인사부 부장한테 말해, 하루, 딱 하루만 더 시간을 줄 테니까 직원을 찾아오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사표를 써야 할 테니까! ”
똑똑.
차서운은 화가 잔뜩 난 상태라 갑자기 밖에서 문을 두드리니 그 냉랭한 말투도 그대로였다.
“들어와! ”
임지연은 못내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지금 그가 화내고 있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이미 문을 두드린 상태라 그가 화내고 있더라도 눈 딱 감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임지연은 애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커피 끓였어요. ”
차서운은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서부터 천천히 손에 든 커피로 향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침에 그를 무슨 독사를 보듯 혐오했으면서 지금은 또 그를 위해 커피를 준비해 주었다고?
하, 변덕스러운 여자 같으니라고.
차서운은 폰을 내려놓고는 앉아 그녀가 무슨 수작질을 할 건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임지연은 커피를 탁자 앞에 놓았다.
“당신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
차서운은 커피를 건드리지도 않았고 몸을 더욱 더 편하고 나른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자 임지연은 아부하면서 말했다.
“마셔볼래요? ”
차서운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녀의 태세 전환은 아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그녀를 비웃었다.
“갑자기 아첨하는 이유가 리펄스만 부지 때문인 거지? ”
임지연은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가 이렇게나 빨리 알아차릴 줄 몰랐던 것이다.
차서운은 느닷없이 임지연의 턱을 쥐어 잡고는 말했다.
“이게 바로 임 씨 집안이 내가 절름발이인 걸 알면서도 널 나한테 시집보낸 이유인 건가? ”
그의 손가락의 힘은 장난이 아닌지라 임지연은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입을 열고 해명을 해보려 했지만...
어떻게 해명을 하지?
그녀야말로 버려진 그 존재라고?
하지만 말했다한들 그가 이 사실을 믿을까?
“아니에요. 전....”
“나가! ”
차서운은 그녀를 매섭게 뿌리쳤다.
그가 너무 빨리 떨쳐버린 탓에 그녀의 팔은 잔에 부딪혀 커피가 그만 엎어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탁자 위의 서류가 검은색 액체에 적셔졌고, 차서운의 안색은 완전히 어둡게 변했다.
임지연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당황한 나머지 그저 탁자를 닦기에 바빴다.
차서운은 빠르게 서류를 치우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큰소리로 꾸짖었다.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 ”
그는 이런 식으로 남에게 빌붙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싫었다.
임지연은 하는 수 없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잠깐! 이것들도 다 가지고 나가! ”
차서운은 보기만 해도 짜증 났다.
그 말에 임지연은 커피잔을 들고 나갔다.
저녁 시간에 차서운은 밥을 다 먹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임지연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차서운의 성격이 엉망이라 다가가기조차 힘든데, 부지를 얻어 임인섭으로부터 주도권을 취득하는 일은 더욱 불가능했다.
임지연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 위에 누웠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잠이 안 와서 그냥 일어났다. 아까 차서운에게 커피를 갖다주다가 서류에 쏟은 커피를 생각하니 그녀는 내심 미안한 감이 들어 무엇이든 해보려고 그의 서재로 갔다.
그녀는 불을 켜보았더니 탁자 위에는 아직 젖은 서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때 그녀는 서류가 A 국의 글자로 된 것을 보았었다. 커피에 젖은 곳의 부분적인 글들은 이미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깨끗한 종이를 가져와 서류에 적힌 글을 베껴 적었다.
임지연은 이 나라의 문자를 알고 있었다. 이 나라의 문자가 널리 쓰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사과한다는 의미에서 그가 보기에 편하게 본국 언어로 번역해 주었다.
10장이나 되는 내용을 번역하고 다시 베껴 쓰기까지 어느새 시간은 새벽 세 시가 되었다. 그녀는 필을 놓고 시큰시큰 쑤시는 손목을 주물렀다. 그 서류들을 순서에 맞게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뒤 책상에 정연하게 놓고는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차서운이 아침밥을 먹을 때 임지연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어제 너무 늦게 잔 것과 임신으로 인한 졸음 증상 때문인 것이었다.
차서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어요? ”
정숙 이모님은 눈을 내리깔고는 말했다.
“아니요, 두 분은 부부사이니까 저 같은 외부인보다 더 잘 알겠죠. ”
차서운은 정숙 이모님의 말이 무슨 뜻이 지 알아 못 들을 리가 없었다.
“됐어요. ”
차서운은 해명하는 데에 능숙하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돌봐온 정숙 이모님이어도 말이다.
“도련님, 작은 사모님과 도련님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 결혼은 부인님이 살아계실 적 도련님을 위해 정하신 혼사예요. 그리고 제가 볼 땐 그분도 도련님을 꽤 신경 쓰시는 것 같아 보였어요. 어제 점심 일찍이 돌아온 뒤 도련님이 좋아하시는 반찬에 대해서 알아보고는 저녁도 밥도 하시고 도련님한테 직접 커피도 끓여드렸어요. ”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비위를 맞추는 건 임 씨 집안이 리펄스만 부지를 얻기 위한 수작일 뿐이지 않는가?
자신을 신경 쓴다고?
차서운은 웃겼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정숙 이모님한테 말했다.
“그 여자의 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