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저녁이 되자 추무현은 언제나처럼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그가 마지막 반찬을 들고 나와 상 위에 올려두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생선모든찜 했어."
그가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린 채로 익숙한 손놀림으로 작은 공깃밥을 뜨더니 숟가락으로 살살 눌러 으깨며 말했다.
"의사가 단백질을 많이 보충하래."
나는 기계처럼 입을 벌려 그가 떠먹여 주는 밥과 반찬을 그대로 삼켰다.
추무현의 동작은 늘 그렇듯 조심스러웠고, 마치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깨져 버릴 도자기 인형을 다루는 사람처럼 살살 손을 놀렸다.
나는 그의 아래로 드리운 속눈썹과 집중한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한때는 그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지금은 속이 울렁거리기만 했다.
"왜 이렇게 조금 먹어."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눈살을 살짝 좁히더니 손을 뻗어 내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또 어디 안 좋은 거야?"
차가운 손끝이 닿는 순간 몸이 먼저 뒤로 물러나고 싶어졌다.
"응, 더 먹기 싫어." 내가 짧게 대답했다.
추무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달래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이 내 불룩 나온 배로 내려가더니 눈빛이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우리 애가 또 엄마 괴롭혀?"
그가 싱크대 쪽으로 돌아가 찬장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이거 좀 먹어, 입맛 돌아, 밥 안 먹으면 너도 애도 둘 다 안 좋아."
나는 산뜻한 과일 캔디가 든 병을 받아 들었고,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에 스치는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 같은 오한이 훅 치고 올라왔다.
그는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채 몸을 숙여 내 배에 귀를 가져다 대고 사람 좋은 목소리를 냈다.
"아가, 엄마가 너 품느라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 돼."
"엄마 힘들게 하면, 나중에 나오고 나서 아빠가 혼낼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만 바라봤다.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그는 언제나처럼 내 손을 잡고 마당을 천천히 걸었다.
내 손바닥은 그의 손에 그대로 파묻혀 있었고, 나는 그가 이끌어 주는 대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치료를 받고 나서도 내 손은 가장 단순한 동작만 겨우 해낼 수 있었고, 총을 쥐고 방아쇠를 당길 힘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피곤하지?"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아 추무현이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나가고 들어가고 싶어."
겨우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내가 임신을 한 뒤로 그는 점점 더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아졌고, 함께 걷는 것조차 나를 피곤하게 만들까 봐 늘 걱정했다.
욕실 안에서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몸을 씻겨 줬다.
따뜻한 물줄기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뼛속까지 스며든 냉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샤워를 마친 뒤 그는 나를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이불 가장자리를 하나하나 다듬어 주더니 옆에 누워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린아. 잘 자."
그가 귓가에 낮게 속삭였고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를 스쳤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등 뒤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느끼며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어 손바닥 안쪽을 깊게 파고들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벽을 멍하니 노려 보며 그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변해가는 걸 듣고 있자니 속에서 알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다음 날, 잠에서 깼을 때 옆자리에 추무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수하러 욕실로 향했다.
식당 앞을 지나가다가 테이블 위에 차려진 아침 식사와 그 옆에 놓인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손을 뻗어 그 쪽지를 집어 들자 익숙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여보, 나 본부 다녀올게.
집에서 얌전히 쉬고, 뭐 필요하면 이모한테 얘기해, 무리하지 말고.
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필체였고, 말끝마다 애교 섞인 분위기가 묻어 있었지만, 내 눈에는 온종일 들러붙는 벌레처럼 기분 나쁘게 꿈틀거려 보였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역겨운 마음을 그대로 실어 쪽지를 휴지통 쪽으로 던졌다.
이모에게 식탁 정리하라고 아무렇게나 한마디 던지고, 나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핸드폰을 들고 무의미하게 화면을 넘겼다.
잠시 뒤, 인스타 알림이 하나 올라왔고, 임유리가 새로 올린 피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사진 속에는 대형 관람차 꼭대기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임유리와 추무현이 있었고, 사진 아래에는 글이 하나 적혀 있었다.
'언제든 내가 널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넌 모든 걸 제쳐두고 내 앞에 와 주니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속이 뒤집히는 듯했고, 역겨운 감정이 파도처럼 치밀어 올라왔다.
나는 손에 쥔 휴대폰을 꽉 쥐었고, 갑자기 아랫배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고,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입 밖으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와 참지 못했다.
소리를 들은 이모가 허둥지둥 뛰어와 나를 부축해 병원으로 향했고, 한 손으로 나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둘러 추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무현이 병실 문을 거의 뛰어들다시피 열고 들어왔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가득했으며,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침대 옆으로 성큼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냈다.
"여보, 많이 아팠어? 괜찮아? 겁내지 마, 나 여기 있잖아. 우리 앞으로 애 안 가져도 돼, 너만 멀쩡하면 돼."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마치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을 다루는 사람처럼 살살 힘을 빼고 있었다.
나는 겨우 몸을 비틀어 그 손에서 벗어나려다 말았는데,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힐끔 내려다봤고, 순간 눈빛이 흘긋 흔들리더니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전화를 받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벨소리는 끊길 생각이 없었고, 그는 결국 내 손을 잡고 달래는 말투를 꺼냈다.
"여보, 회사에서 급한 일인가 봐, 통화만 하고 올게, 금방 올게."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휴대폰을 들고 병실 한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통화 버튼이 눌리는 소리와 함께 임유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무현 오빠, 나 버린 거야?"
순간 그의 목소리가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하게 변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조아린 뱃속 애가 조금 문제가 생겨서, 여기 잠깐 있어야 해서 그래."
두 사람의 대화는 하나도 흐려지지 않고 내 귀에 그대로 박혔고, 나는 구역질이 치밀어 목까지 올라오는 느낌에 숨을 깊게 들이켰다.
추무현이 통화를 끝냈을 즈음, 이번엔 내 휴대폰이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보낸 사람은 임유리였다.
그녀는 메시지에서 추무현은 애초부터 나를 사랑한 적이 없고, 나와 아이는 자기 위로 올라서기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적어 놓았고, 거기다 내가 침대 위에서 죽은 물고기 같다고 추무현이 늘 불평한다는 말까지 덧붙여 놨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고, 떨리던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움직여 메시지를 한 줄 한 줄 전부 저장해 두었다. 눈빛은 어느새 서늘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내일은, 내가 그 사람과 약속한 날이었다.
다가오는 복수의 순간을 떠올리자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고, 차갑게 식은 웃음이 조용히 번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