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는 런던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곳은 이곳보다 9시간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아빠, 박우혁이 바람났어요. 나 이혼하려고요."
"아빠, 그 사람 회사에 투자한 돈, 다 빼주세요."
박우혁은 아직 모른다.
예전에 그의 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내 아버지가 투자자로 들어와 자금을 넣어준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을.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 이미 이혼하셨고, 나는 줄곧 엄마와 국내에서 살았다.
아버지와 다시 연락이 닿은 건 몇 년 전, 그가 해외에서 회사를 세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였다.
그때 박우혁에게 투자금을 따내기 위해 나는 직접 해외로 가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 일로 새어머니의 눈초리와 조롱을 견뎌야 했다.
새어머니의 아들은 내 얼굴에 물총을 쏘았지만, 나는 그냥 참았다.
새어머니가 다리를 주무르라거나 발 씻을 물을 준비하라 해도, 웃으며 했다.
식탁에서도 그녀는 비아냥거리며 "돈 뜯으러 온 거지? 재수 없는 년."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아버지는 아들만 챙기지만, 그동안 내게 미안해했기에 결국 박우혁에게 투자를 약속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지독히 미워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박우혁은 자신이 능력이 뛰어나 투자자를 끌어들였다고 믿었고, 나는 그의 체면을 위해 진실을 숨겼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하민아라는 여자가 도대체 어떤 얼굴인지.
그래서 박우혁의 회사 맞은편 카페로 갔다.
창가 자리에 앉아 세 시간을 기다렸다.
해질 무렵, 그가 회사에서 나왔다.
곁에는 젊고 예쁜 여자 하나, 웃을 때 보조개가 사랑스럽게 패였다.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내 딸을 유치원에서 대신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눈에 띌까 봐 택시만 불러 조용히 그의 차 뒤를 따라갔다.
강가였다.
그 일대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고, 오직 박우혁의 그 빌라만 불이 켜져 있었다.
2층 발코니 문은 열려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커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사이로 보였다.
하민아가 토끼 잠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분홍색 귀 머리띠, 목에는 검은 가죽 끈이 매여 있었다.
박우혁은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다.
하민아는 웃으며 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입으로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물어뜯듯 풀었다.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탐욕과 욕망이 가득한 눈빛, 마치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처럼.
나와 함께 있을 때처럼 형식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하민아의 머리가 그의 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자, 박우혁의 몸이 순간적으로 크게 떨렸고, 목젖이 요동쳤다.
몇 분 뒤, 그는 더는 참지 못한 듯 하민아를 세게 끌어안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그들이 서로를 꽉 껴안고, 박우혁이 하민아를 거실의 통유리창 앞으로 밀어붙이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흰 커튼 위엔 그들의 몸이 뒤엉키며 흔들리는 그림자가 비쳤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를 확대했다.
그리고 연속으로 여러 장 찍은 뒤, 영상도 남겼다.
울고 소리치는 것보다, 증거를 남기는 게 더 현명했다.
바람난 남자에게 양심 따위는 통하지 않으니까.
그날 밤, 딸을 재운 뒤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혼에 동의하지만, 딸의 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 다음 달에 하자고.
투자금 철회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하지만 뜻밖이었다.
늘 침착하던 박우혁이 그렇게 참지 못할 줄은 몰랐다.
공동 친구의 생일 파티 자리에서, 그는 내가 참석할 걸 뻔히 알면서도 하민아를 대놓고 데리고 왔다.
나는 교통 체증으로 조금 늦게 도착했다.
문 앞에 섰을 때, 안에서 박우혁의 친구 정민석이 그를 타이르고 있었다.
"진심이야, 우혁아? 농담이 아니고?"
"요즘 어린 여자애들 속이 얼마나 복잡한데, 예쁜 얼굴에 홀리지 마. 이소리는 너랑 진짜 힘든 시절 같이 버틴 여자야. 그런 사람은 쉽게 못 만나."
박우혁은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 앉아,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