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그는 결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바로 갈게. 간호사가 먼저 네 옆에 있게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응?”
김백두는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했지만, 눈빛은 깊고 어두워져 있었다. 심연희의 말을 들은 뒤 그의 마음속엔 누구도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좋아요, 기다릴게요.” 심연희는 기쁜 목소리로 답했다.
전화를 끊은 김백두는 깊은 숨을 내쉬며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인에게 간서영에게 저녁을 챙기라고 전하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묵묵히 밖으로 나섰다.
차의 엔진 소리가 웅웅거리며 점점 멀어지자, 간서영은 주 침실 창가에 조용히 서서 검은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으로 굳어 있었고, 입가에는 희미하게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창밖의 어둑한 풍경을 멍하니 응시하며, 그녀의 머릿속에는 방금 떠나던 김백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서둘러 떠난 이유.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조차 없었고, 오직 심연희를 향한 걱정과 다급함만이 가득했다.
‘그는 정말로 심연희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뭘 바라고 있었던 걸까?’
그날 밤, 김백두는 반산 빌라로 돌아오지 않았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병원에서 심연희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
결혼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출장 외의 이유로 밤을 비우는 일은 처음이었다.
간서영은 그에게 메시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다.
품위 있고, 온화하며, 완벽한 아내로 남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자각하며, 그녀는 그저 조용히 견뎠다.
김백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날, 간서영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조언했다.
“남편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해. 그래야 평생 네 곁에 머물 거야.”
그녀는 어머니의 말대로 행동했고, 그렇게 노력해왔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녀가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김백두는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보여주지 않는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그녀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싫어했고, 그녀에게 어떤 감정도 없었다는 것.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간서영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절대 그럴 리 없어.”
한밤중, 그녀는 꿈도 꾸지 못한 채 뒤척였고, 아침이 밝아오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은 김백두였다.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의 목소리가 낮고 차분하게 이어졌다.
“일어났어?”
"네."
"두 벌의 옷을 준비해서 병원으로 가져다줘.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을 보길 원하지 않아. 네가 직접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의 말투는 부탁이라기보다 명령에 가까웠다.
간서영은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얼굴은 창백했고, 머릿속이 텅 빈 듯 혼란스러웠다.
조용히 되묻듯 물었다.
"제가 병원에요?"
"그래, 네가 가져다줘."
"저는 연희 씨와 친하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저는 그저 외부인일 뿐인데, 그녀가 저를 보고 싶어 할까요?"
김백두는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빨리 준비해줘, 알겠지?"
간서영은 입술을 깨물며, 가슴 속에 차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려 애썼다.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건 마지막이야. 이번 한 번만 더 하자. 이건 내 마지막 인내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알겠어요. 한 시간 안에 도착할게요."
김백두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속에서 솟구치는 고통은 그녀를 점점 더 짓눌렀다.
겨우 어제 최희원의 차를 타고 온 것뿐인데, 그에게 이렇게까지 복수를 당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더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이 결혼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다는 결심만 강해졌다.
심연희가 깨어난 이상, 이제부터는 그가 온 마음을 심연희에게만 쏟을 게 뻔했다.
그런 날들이 끝없이 반복될 것을 상상하니 견딜 수 없었다.
간서영은 옷장에서 계절별로 준비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두 벌을 꺼내고 차에 올랐다.
병원으로 향하며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으로 뒤엉켰다.
병실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손을 들어 노크하려던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백두 씨, 내 지금 이런 모습… 정말 못생겼겠죠? 간서영 씨가 보면 웃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