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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빌어봤자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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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간서영은 10년 전부터 한 남자를 사랑해왔다. 그 남자, 김백두를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결혼했지만 결혼 후 1년, 그는 첫사랑인 심연희를 이유로 망설임 없이 이혼을 요구한다. 자존심을 지키고자 그녀는 그 요구를 받아들이며 단 하나의 조건을 건다. "이혼 후, 우리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해요." "너, 후회하지 마." 그는 그런 그녀를 비웃었지만, 이혼 후 그녀는 철저히 그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몇 년 후, 그녀는 새로운 약혼자의 팔을 잡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눈물을 머금은 김백두가 그녀에게 외쳤다. "서영아, 이제 그만 장난치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간서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꺼져."

복수임신재벌남아내남편로맨스물로맨스소설

제1화 이혼 후에,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해요

반산 빌라.

북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장이었다.

주 침실에서 한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무표정하게 욕실로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 애틋했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는 건, 간서영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고 입었다. 긴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매혹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엔 더욱더 그랬다.

남자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와 간서영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무표정했다.

“이거, 서명해.”

그는 침대 옆 서랍에서 서류를 꺼내 침대 위에 던졌다.

간서영은 고개를 숙여 서류를 살폈다. 그 위에는 ‘이혼 합의서’라는 눈에 띄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혼하자는 거예요?”

“연희가 깨어났어. 이제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해.”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잘생긴 얼굴에는 무심한 기색만 가득했다.

간서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눈빛에 담긴 감정을 숨긴 채, 입술을 깨물며 큰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정말 이혼해야만 해요? 어떤 타협도 없는 건가요?”

“간서영, 우리가 결혼한 이유는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한 번 연희를 저버린 적이 있어서, 두 번 다시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의 말은 직설적이었고, 어떠한 협상도 여지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그의 의도는 명확했다.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는 것.

그가 “연희”라는 이름을 말할 때 그의 눈에 스친 부드러움을 본 간서영은 부러웠다. 동시에 그녀는 그가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던 심연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에 비해, 간서영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간서영은 차분한 눈빛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고, 몇 초 뒤 또렷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좋아요.”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 남자는 미묘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표정은 잠깐이었고, 금세 사라졌다.

“너,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지나치지만 않으면 다 들어줄게.”

간서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따뜻했다.

“저는 딱 하나만 요구할게요.”

“뭔데?”

“이혼 후에,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해요.”

그녀의 눈빛엔 결연함이 가득했다.

남자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간서영, 지금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간서영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 없죠.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어떤 억지나 감정이 섞인 행동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백두는 쉽게 믿지 않는 듯했다.

그는 살짝 찌푸린 눈썹을 고쳐잡고, 차갑게 대꾸했다.

“네가 요구가 있다고 해서 말하라고 한 거지, 유치한 감정 싸움에 쓰라고 한 게 아니야.”

“다신 안 보자고? 네가 생각해도 너무 유치하지 않아?”

“유치한가요?”

그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고요히 대답했다.

“그게 제가 원하는 전부예요. 다른 건 필요 없어요.”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릴까 두려워 급히 등을 돌렸다.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고는 한 번도 살펴보지 않은 채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빠르게 서명했다.

단호하고도 신속했다. 망설임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간서영의 마음은 고통스러웠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이 남자를 10년간 사랑해왔다는 사실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

결혼한 지난 1년 동안 그는 그녀에게 온갖 정성을 쏟으며 남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빠져 사랑의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이제야 물건은 제 주인을 찾아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녀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고, 김백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절차는 언제 진행할 건가요?”

그 말에 김백두는 미간을 찌푸렸다.

1년 동안 부부로 지냈는데도, 그는 늘 온순했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과의 관계를 빨리 끊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급한가? 그리고 너도 알잖아,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할아버지와 우리 김씨 집안에서 널 얼마나 아끼는데, 그분들과도 다 끊어버릴 수 있겠어?”

“백두 씨, 이혼하자는 건 당신이잖아요.”

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혼하는 마당에, 제 일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잖아요?”

간서영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담담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신은 몰라요. 이런 말들이 나로 하여금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를 아쉬워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착각하게 만든다는 걸.”

그녀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웃으며 물었다.

“아니면 혹시… 당신이 연희 씨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사랑하게 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