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감히 나한테 손찌검을 해?

그는 ‘폐인’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며 낮고 깊은 목소리로 그녀를 자극했다.

남자는 일부러 더 가까이 다가가 차가운 기운을 한층 더 강하게 내뿜었다.

안여름은 불편한 듯 살짝 몸을 옆으로 틀었다.

잠시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어쨌든 이태현의 저택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당신의 사촌 형이에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가족조차 그렇게 말한다면, 이태현은 평소에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갔다.

안여름의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밀려왔다.

이태현 집안이 명문가라 해도, 그의 처지를 생각하면 지난 세월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으리라.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 잠시 놀라움이 스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그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안여름을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보았다.

헝클어진 머리, 촌스러운 검은 뿔테 안경, 낡은 긴 외투,

앞머리가 너무 두꺼워 눈을 거의 덮을 정도였다.

칙칙한 얼굴에는 작은 기미가 몇 개 박혀 있었고, 보기만 해도 답답해질 정도였다.

분명 이 여자는 소문 속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약혼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태현 집안은 여자의 외모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여자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혹여 상대가 바뀌었다 해도 문제 삼지 않을 터였다.

남자의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

그는 갑자기 안여름을 침대에 밀쳐 눕혔다.

말투에는 경멸과 악의가 가득 묻어 있었다.

“여기에는 우리 둘밖에 없어. 가식 떨 필요 없잖아.”

그는 비웃듯 덧붙였다.

“이런 외모라면 아직 순결하겠지? 네가 원하는 걸 채워줄 기회를 줄게.”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피부에 손끝이 닿자 순간 중독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짝!”

안여름은 있는 힘껏 그의 뺨을 후려쳤다.

“다른 사람도 너처럼 더럽게 생각한다고 착각하지 마!”

그녀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떨리는 손이 그녀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네 사촌 형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당장 나가.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해줄게.”

안여름은 이태현의 외모가 얼마나 흉측할지 여러 번 상상했지만, 이런 식의 상황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남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서늘한 기운을 뿜어냈다.

“감히 나한테 손찌검을 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몸싸움 도중 그녀의 안경이 바닥에 떨어졌다.

덕분에 그의 눈앞에 그녀의 얼굴이 선명히 드러났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떨리는 속눈썹과 함께 그녀의 긴장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가 뜻밖의 동정심을 느끼며 손을 멈췄다.

그는 옷깃을 가다듬으며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그 ‘폐인’을 계속 기다리길 바라.”

“쾅!”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안여름은 팽팽하게 긴장했던 신경을 조금 늦출 수 있었다.

경호원 한 명이 남자의 얼굴에 선명하게 찍힌 손자국을 보고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도련님, 얼굴에 무슨 일이...?”

남자는 무표정하게 얼굴을 만지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문에 부딪혔다.”

누가 봐도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지만, 경호원은 더 묻지 못하고 공손하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사모님의 개인 자료입니다.”

남자는 서류를 펼쳐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안여름.

못생긴 외모에 차가운 성격을 가진 여자가 ‘여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니.

그는 어이없다는 듯 씁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친엄마는 계부의 아이들만 애지중지하면서, 정작 친딸은 이렇게 내팽개쳤단 말인가?

그는 서류를 더 훑어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바보라고?”

경호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서류를 경호원에게 던지듯 돌려주었다.

“다시 조사해. 내가 원하는 정보가 아니면 다시 내 앞에 오지 마.”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똑 부러진 태도와 손찌검을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