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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모욕

“너!”

여자는 화가 난 듯 손끝까지 떨리고 있었다.

“황보재혁,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만약 네가 황보 집안의 둘째 도련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널 마음에 들어 했을 것 같아? 장애인 주제에 정말 자기가 대단한 위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감히 나를 여러 번씩이나 거절하다니!”

여자는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했지만, 황보재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센 기세에 압도당했다. 그의 어두운 눈빛을 보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원망스럽게 자신의 옷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던졌다.

“너 딱 기다려, 언젠가 나한테 무릎 꿇는 날이 올 거니까!”

그리고 여자는 자리를 떠났다.

그곳에는 심우리와 황보재혁만 남았다.

우리는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었고,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널 너무 쉽게 봤군.”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이 심우리에게 꽂혔다.

심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변명했다.

“방금…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너도 꺼져!”

재혁은 차갑게 명령했다.

심우리는 이마를 찌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오늘부터 당신의 비서예요. 그리고 당신이 나보고 직접 회사에 오라고 하지 않았나요?”

말을 마친 심우리는 바닥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그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제가 이미 왔으니, 당신도 약속을 지켜야죠?”

그가 답하기도 전에, 심우리는 그를 안으로 밀며 물었다.

“제가 뭘 해야 하나요?”

황보재혁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점점 더 강해졌고,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보아하니, 네가 정말로 죽고 싶어서 환장했는가 보군.”

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저도 사실 비서 노릇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건 할아버지의 뜻이라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할아버지로 날 협박하는 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저도 피해자인데요.”

심우리는 사무실이 어지러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닥에 서류 몇 장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니, 아까 떠난 여자의 짓인 듯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웅크려 앉아 떨어진 서류들을 주워 다시 정리해 책상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재혁의 눈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때마침 윤성이 들어왔다.

“도련님, 5분 뒤에 회의가 시작됩니다.”

윤성은 심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진짜로 회사에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재혁은 윤성에게 밀어달라고 신호를 보냈고, 윤성은 그의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보재혁은 갑자기 무언가를 생각한 듯, 눈빛이 번쩍였다.

“비서가 되고 싶다고? 그럼 내가 기회를 줄게.”

* * *

회의실 안,

우리는 재혁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녀가 나타나자 회의실 속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황보재혁의 곁에는 항상 비서 윤성만 있었던 걸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곁에 여자가 나타났으니, 모두들 이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심우리는 비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큰 회의는 처음이었다. 황보 그룹의 회의실은 엄청나게 컸고, 그 위압감에 그녀의 어깨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심우리는 윤성과 황보재혁의 뒤를 따라 걸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심우리에게 향해 있었다.

“회장님, 이분은?”

재영은 황보 그룹의 부회장이었기에 회의실에 함께 있었다. 심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도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심우리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긴장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탐구적인 시선 속에서 따뜻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황보재영이었다.

둘은 시선을 마주쳤고, 재영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심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심우리는 그 미소에 긴장이 조금 풀렸고, 그에게 살짝 미소를 되돌려주었다.

심우리는 황보재영이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작은 행동들은 황보재혁의 눈에 담겼다.

그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감돌았고, 날카롭게 시선을 한 번 쏘아보더니 소리 높여 말했다.

“간병인.”

“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재혁이 말한 간병인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심우리 역시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회장님, 혹시 이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황보재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보는 사람에게 냉랭하게 답했다.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찾은 간병인입니다. 제 일상생활을 돌보고 있죠.”

그 말에 심우리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비서로 일하러 온 것인데, 간병인이라니?

황보재혁은 그를 내려다보는 심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명령했다.

“커피.”

사색에 잠겨 있을 무렵, 재혁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윤성이 재혁의 뜻을 알아차리고 심우리에게 눈치를 주자,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 커피를 타는 건 비서가 해야 할 일이니깐.

우리는 커피를 타러 나갔다.

그녀가 커피를 타서 돌아오니 회의는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심우리는 황보재혁의 앞에 커피를 놓았다.

황보재혁은 한 모금 마시더니 이마를 찌푸리고 목청을 높였다.

“날 죽이려는 거야? 너무 달잖아!”

윤성은 얼굴이 변하며 덧붙였다.

“저희 도련님은 설탕을 넣은 커피를 드시지 않습니다.”

“당장 바꿔!”

할 수 없이, 심우리는 다시 커피를 탔다.

“너무 싱겁잖아!”

“다시 타!”

“하, 물을 너무 적게 넣었잖아!”

재혁이 회의실을 마치 심우리를 괴롭히는 장소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심우리에게 집중되었고, 그녀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황보재혁의 머리 위로 커피를 쏟아버리고 그만두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 생각에 분노를 억누르며 다시 커피를 타러 나갔다.

탁!

커피 잔이 무겁게 탁자 위에 놓이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 정도 일로 내 간병인이 되려고 하는 거야?”

심우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재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참을 수 없는 듯 말했다.

“재혁아, 이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아하, 편을 들겠다?'

황보재혁의 입가에 서린 미소는 점점 차가워졌다.

“형이 내 간병인을 그렇게 아낄 줄은 몰랐네. 형한테 줄까?”

회의실은 갑작스럽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황보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우리는 입술을 깨물며 화가 난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정말 너무해!'

그제서야 심우리는 왜 자신을 남기게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자신을 모욕하고 굴욕감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황보재혁에게 자신은 그저 돈과 권력을 위해 시집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자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그토록 미워했던 것이었다.

“재혁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그래도 네...”

'아내'라는 단어가 나오기 직전, 황보재혁은 단칼에 말을 끊어버렸다.

“그냥 커피 타는 일로 부회장님께서 너무 신경 쓰시는 거 아닌가요?”

황보재영이 심우리를 대신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으나, 심우리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제가 다시 타올게요.”

말을 마치고 심우리는 컵을 들고 회의실을 나갔다.

한 잔, 두 잔, 세 잔...

회의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우리는 여러 번 커피를 타며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황보재혁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도 그녀는 계속 커피를 타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윤성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황보재혁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이제 그만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냥 고생 좀 하는 걸로 충분한 것 같은데요.”

재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저런 허영심 많은 여자를 이렇게 다루지 않으면, 어떻게 어려움을 깨닫고 물러날 수 있겠어?”

그는 심우리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두고 보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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