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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심우리는 하룻밤 혼자 빈방을 지켰다. 너무 일찍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옷들을 옷장에 정리하고, 방을 완전히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어젯밤, 황보재혁이 그렇게 명확하게 말했으니, 그는 이 방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방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 되었다.

명목상 부부일 뿐, 두 사람은 사실상 남남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 * *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하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배가 고팠던 심우리는 주방 위치를 물어보려 했으나, 하녀가 뜻밖에 손을 뻗어 그녀를 제쳐버렸다.

“웬 여자가 여기서 길을 막고 있어? 비켜!”

우리는 하녀에게 밀려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기세등등하던 하녀는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숙연해졌다.

따뜻하고 큰 손이 심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심우리는 고개를 돌렸고, 부드러운 눈을 가진 남자와 마주쳤다.

주름 하나 없는 흰 셔츠를 입은 남자는 마치 3월의 봄바람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멍해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두 걸음 물러서며 그와 거리를 두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제수씨.”

“제, 제수씨요?”

“재영이라고 해요. 재혁이 형이에요.”

황보재영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아, 형님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손을 내밀어 황보재영과 악수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주버님.”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

“방금 저희 집 하인이 잘못했으니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우리 황보 집안 사람들은 다 좋은 분들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나중에 제가 잘 말해놓을게요.”

심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주버님.”

재영은 미소를 지으며 무슨 말을 더 하려던 순간, 차가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내가 올 때가 아닌가 보네.”

이 목소리는… 심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윤성이 휠체어에 앉은 황보재혁을 밀고 걸어오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재혁의 다리에는 얇은 담요가 덮여 있었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온 세상을 군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갑고, 예리한 칼날처럼 심우리의 얼굴을 향했다.

심우리는 무언가 찔린 듯 고개를 떨구었다.

잠깐, 내가 뭐가 찔릴 게 있다고? 그저 그의 가족과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

“재혁아, 집에서 널 다 보게 되다니 의외네.”

재영은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동생을 맞이했다. 하지만 재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형.”

“아차, 너희 둘 방해하면 안 되지. 난 이만 출근하러 가볼게.”

말을 마치고 황보재영은 심우리에게 다시 상냥하게 말했다.

“제수씨, 저는 이만 회사로 가볼게요.”

우리는 그저 우두커니 고개를 끄덕였고, 재영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나가자 옆에 있던 황보재혁이 비아냥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혼한 여자들은 그렇게 남자에게 목말라 있나? 벌써부터 남자를 꼬시려고 애쓰는 게 아주 티가 나는데?”

이 말을 듣고 심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며 반박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재혁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고, 눈 밑은 피곤에 찌든 듯 그을려 있었다. 그의 격노가 느껴지자 심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래입술을 꽉 깨물었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야비한 여자가 아니에요.”

“그래?”

황보재혁의 입가에는 차가운 비웃음이 스며들었다. 마치 그녀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번째 기회를 찾으려는 여자가 야비하지 않다는 거야?”

우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약간 화가 났다.

그녀가 스스로 두 번째 기회를 찾고 싶어 이런 상황에 처했나? 그녀도 원치 않은 선택을 한 것뿐인데.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남는 게 최우선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불끈 쥐었던 주먹이 서서히 풀렸다.

“너, 약속 지켜. 우리 집안 사람들과는 남남처럼 지내. 만약 네가 우리 황보 가문의 이름으로 밖에서 딴짓을 하거나, 우리 집안 사람들에게 뭔가 목적이 있는 걸 내가 알게 된다면, 너에게 생지옥을 보여줄 테니까. 가자 성아!”

재혁은 윤성에게 휠체어를 밀라고 지시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한 하녀가 다가와 심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작은 사모님, 큰 회장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큰 회장님? 황보 집안의 그 큰 회장님?

우리는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왔다. 전에 엄마가 심달리를 황보 집안에 소개한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심우리를 동생 대신 결혼시키는 대담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큰 회장님이 부르신다는 말에 그녀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작은 사모님, 저를 따라오세요.”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하녀는 갈팡질팡하는 심우리를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녀를 따라 나섰다.

황보 집안의 저택은 매우 컸다. 비록 하녀가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지만, 심우리는 여전히 정신이 혼미했다.

어느새 서재에 도착했다. 하녀는 매우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작은 사모님, 어서 들어가세요.”

우리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는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고전적인 장식품과 책장이 놓여 있었고, 선반에는 다양한 서예 작품과 먹과 붓들이 진열돼 있었다.

우리는 방을 한 번 쭉 훑어본 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큰 회장님,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황보웅과 눈을 마주쳤고, 그 영리한 눈빛에 잠시 사로잡혔다.

황보웅은 그녀를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 순간, 심우리는 자신의 진짜 신분이 떠올라 갑자기 긴장했고, 그가 속마음을 읽어버릴까 두려워 고개를 숙였다.

비록 황보재혁과의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만약 큰 회장님이 자신이 심달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심달리!”

“네?”

우리는 조건반사처럼 고개를 들었고, 황보웅의 시선을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황보웅의 눈에는 엄숙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재혁이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어. 이제 네가 시집왔으니 앞으로 네가 재혁이를 잘 챙겨야지.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는 내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일부터 재혁이 곁에서 비서로 일해라.”

우리는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데, 큰 회장님, 저도 제 일이 있어서요...”

“황보 집안의 여자는 굳이 얼굴을 내밀고 일할 필요가 없어. 일을 한다면 반드시 남편 곁에 있어야 한다.”

'뭐지? 황보 집안은 이렇게도 사상이 고루한가?' 심우리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큰 회장님 앞에서 감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를 서재 밖으로 내보냈다.

서재를 나온 심우리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기분은 여전히 꿀꿀했다.

하지만 큰 회장님의 말이 진지했기에, 심우리는 현재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심우리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준과 결혼한 후, 그가 퇴근하기 전에 따뜻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근처 작은 회사에서 과장 비서로 일했다. 평범한 직장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

우리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녀의 자리는 곧 다른 사람이 대신할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심우리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일이든 혼인이든, 결국 누군가가 그녀를 대신할 것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심우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직한 다음 날, 황보웅은 황보재혁에게 심우리도 함께 회사로 데려가라고 직접 말했다.

“네가 왜 비서를 찾지 않는지 나도 안다. 하지만 달리가 이미 네 아내가 됐으니 이제는 네 곁에서 돌봐야 하지 않겠냐.”

황보웅이 황보재혁에게 말하는 말투는 그녀에게 했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심우리는 이 상황이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일까?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는 당연히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사색에 잠겨있을 때, 심우리는 아주 예리한 시선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생각하지 않아도 그 시선이 누구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재혁은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요.”

심우리는 조금 놀랐다. 그가 거절할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쉽게 수긍한 것이다.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 어서 가거라.”

황보웅의 표정은 다소 부드러워졌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재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윤성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회장님, 그럼 저희 이만 회사로 가보겠습니다.”

“달리도 함께 데리고 가거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재혁의 뒤를 따랐다.

로비를 지나 정원에 도착했을 때, 황보재혁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벌써 할아버지랑 손잡은 거야? 날 감시하려고?”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며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하~”

재혁은 비웃었다.

“그럼 계속 모르는 척해. 그렇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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