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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어디 한 번 내 환심을 사보던가

졸린 눈을 겨우 뜨자마자 심우리는 깊고 차디찬 한 쌍의 눈과 마주쳤다.

남자의 미간 사이에는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고, 늑대처럼 깊은 눈동자 아래로 오뚝 솟은 콧대와 칼날처럼 얇고 꼭 다문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넘치는 아우라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심달리?”

우리는 2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며 어찌할 바를 몰라 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심우리.

그녀는 원래 동생 심달리를 대신해 황보 집안으로 시집온 것이기에 자신의 정체를 밝힐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

황보재혁의 눈빛은 더 차가워졌고, 그는 주머니에서 편지봉투를 하나 꺼내 우리에게 던졌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주워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동생 심달리의 사진과 정보가 들어 있었다.

보아하니, 황보재혁은 이미 결혼 상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조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결혼식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봉투를 손에 꼭 쥐고 입술을 깨물며 재혁을 검은 눈동자로 응시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심 씨 집안에서 내가 다리가 불편하다고 아무나 데려다 결혼시키려 한 건가?”

우리는 몸을 일으켜 웨딩드레스를 꼭 붙잡고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심 씨 집안의 딸이에요.”

“막 이혼한 그 딸? 심 씨 집안은 우리 황보 집안을 완전히 무시하는군. 우리가 무슨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인 줄 아나?”

너무나 직설적인 말에 심우리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아래입술을 꽉 깨물었다. 재혼녀는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부모님이 그녀를 황보 집안으로 보낸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재혁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몰아세웠다.

“5분 줄게. 나가서 해명하고 우리 집에서 당장 꺼져.”

뭐라고?

우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안 돼요!”

그녀는 나갈 수 없다! 만약 그가 말한 대로 나가게 된다면, 심 씨 가문은 황보 가문에게 미움을 사서 더 이상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고, 얼굴조차 들 수 없게 될 것이다.

심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웨딩드레스를 움켜쥔 채 황보재혁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제 동생은 이미 남자친구가 있어서 황보 집안으로 시집오는 걸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네 마음대로 동생 대신 우리 집으로 시집온 건가?”

황보재혁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며들었고, 그 웃음은 심우리의 가슴을 따갑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그의 차가운 눈과 마주쳤다.

“부모님이 주선한 결혼인 건 알아요. 그런데 당신은 그 누구와 결혼하든 상관없으니까 이 결혼을 동의한 거 아닌가요?”

그 말이 그에게 설득이 되었을까?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다시 결혼하는 것보다 저를 여기 남겨두는 게 나을 거예요. 서로 모른 척하고 지내도 괜찮아요. 맹세할게요!”

심우리는 말하면서 두 손을 들어 맹세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경건함과 용기가 깃들었지만, 창백한 얼굴에는 그의 동의를 얻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황보재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얇은 입술에서 차가운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원하는 여자를 못 찾아서 너 같은 여자를 데려왔겠어?”

우리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입술은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재혁은 이미 몸을 돌려 휠체어를 타고 나갔다.

심우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를 따라잡으려 했으나, 그의 부하가 앞을 막았다.

“심 아가씨, 자중하십시오.”

차갑고 무정한 황보재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바심이 난 심우리는 그에게 필사적으로 외쳤다.

“만약 저를 여기서 쫓아내신다면, 당신이 밤일 못한다고 소문내고 다닐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보재혁의 휠체어가 멈췄다. 그는 몸은 돌리지 않았으나, 머리만 살짝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심우리를 노려보았다.

“누가 못한대?”

마치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같았다.

재혁의 눈빛은 마치 어둠 속에 잠복해 있는 야수처럼 심우리를 위협했고, 그녀가 한 마디만 더 한다면 금방이라도 덮쳐버릴 것만 같았다.

'뭐지? 분명 다리가 불편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강렬한 기세를 내뿜을 수 있지?'

우리는 더 이상 돌아갈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꼭 쥐며 강단 있는 눈빛으로 황보재혁과 마주쳤다.

“저를 이곳에 남겨주신다면,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을게요.”

옆에 있던 윤성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아담해 보이는 이 여자가 보기보다 대단한 담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작은 도련님을 상대로 이 정도로 대들다니.

재혁은 휠체어의 방향을 돌려 점차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시선은 어둠처럼 깊어졌고, 눈빛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휠체어에 앉은 황보재혁은 곧 그녀 앞으로 다가와 가늘고 하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누가 밤일을 못한다고?”

재혁은 차갑게 입을 열며 예리한 눈빛으로 그녀를 꿰뚫었다.

“이, 이거 놔요...”

갑작스러운 접근에 심우리는 크게 당황했다.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강렬한 남성적 기세가 그녀를 압도하듯 감싸고 있었다.

횡포적이고 위험한 느낌.

이 감정은 한 달 전 그날 밤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 차 속에서 만난 그 남자. 그의 몸에서 느껴졌던 그 강압적인 기세는 지금 눈앞의 이 남자, 황보재혁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우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왜 또 그날 밤이 떠오르는 걸까?

그날 밤은 그녀에게 치욕 그 자체였다.

“어떻게든 내 부인이 되고 싶다는 건가?”

넋을 잃고 있을 때, 귓가에 울려 퍼진 황보재혁의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우리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차피 당신도 이 결혼을 받아들인 거잖아요? 처음부터 내가 심달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식에서 폭로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이거 먼저 놔요!”

우리는 그를 밀어냈다.

“하.”

황보재혁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재혼녀 주제에 뭘 그리 긴장해? 왜? 이런 경험 처음이야?”

그녀는 지지 않겠다는 듯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마요!”

“여기 남고 싶다고?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내 환심을 사봐.”

재혁은 황보 집안으로 시집와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여자들을 이미 많이 봐왔었다.

우리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왜? 못하겠어?”

재혁의 눈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고,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는 얇은 입술로 천천히 말했다.

“보아하니, 내가 밤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네가 너무나도 시시해서 내 욕망을 끌어내지 못한 것 같군.”

말을 마친 그는 그녀를 거칠게 밀쳐냈다.

우리는 몸이 비틀거려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문에 기대 섰다. 그녀는 당황한 눈길로 황보재혁을 바라보았다.

재혁은 비서에게 휠체어를 밀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이긴 걸까?

이제 이곳에 남을 수 있게 된 걸까?

심우리는 손을 들어 아픈 턱을 만지며 다시 신혼방으로 들어갔다.

10분이 지났지만 문 쪽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그녀의 승리로 끝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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