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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맥을 짚어본 결과, 이 남자의 수명은 한 달로 끝날 기색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생에서 그의 죽음은… 윤하은의 짓이었을까?

전생의 그는 정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걸까, 아니면 다른 내막이 있었던 걸까?

그 악독한 여자라면 무슨 짓이든 못 할 리 없었다.

윤리안이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한도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들렸다.

그는 원래 경계심이 강했기에 깊이 잠들어도 주변의 위협은 즉시 감지했다.

윤리안이 손을 뻗는 순간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악의가 느껴지지 않아 그대로 두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녀는 의술을 아는 듯했다.

침술? 마사지?

한의학 범주였다.

게다가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 어딘가에서 맡아본 듯한,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스쳤다.

차는 곧 한씨 집안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강이후가 내려 차문을 열었다.

윤리안이 먼저 내렸고, 곧 차량 안에서 철판이 펼쳐지며 매끄러운 경사로가 만들어졌다.

윤리안은 돌아서서 휠체어에 앉은 한도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한 이상, 이런 사소한 행동부터 시작해야 했다.

한도겸의 시선이 담담하게 그녀의 손 위에 떨어졌다.

하얗고 매끄러운 손.

강이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도련님은 타인의 접촉을 극도로 싫어했다. 말리려는 순간, 이미 한도겸의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 위에 얹혀 있었다.

결국 강이후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현관 앞에 서있던 하인들도 그 장면을 보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한씨 집안의 규율은 엄격했고 궁금해도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맨 앞에 서 있던 오 집사는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도겸이 차에서 내려오자 윤리안은 손을 거두었다.

순간 텅 빈 손바닥을 바라보던 한도겸의 마음에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스쳤다.

강이후가 휠체어를 밀었고, 일행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도겸이 윤리안을 힐끗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나는 볼일이 있다. 부인은 편히 쉬어."

부인?

그 호칭에 윤리안의 눈썹이 미묘하게 움직였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윤씨 집안의 딸도, 백씨 집안의 예비 며느리도 아니었다. 두 집안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살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서 있다가, 한도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 뒤에야 몸을 돌렸다.

"사모님." 오 집사가 진심 어린 미소로 말했다. "저는 오 집사입니다.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오 집사님."

"말씀 편히 하십시오. 방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2층 계단 왼쪽 첫 번째 방입니다. 먼저 쉬시다가, 점심이 준비되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네."

윤리안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왼쪽 첫 번째 방.

문을 열자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전체적으로 온화한 색감이었다.

2미터 크기의 침대 위에는 장미꽃으로 서로 기대어 있는 두 개의 하트 모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화장대 위에는 혼례복을 입은 신랑 신부 인형 한 쌍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집안 분위기는 축하라도 하듯 들떠 있었다.

넓은 책상 위에는 노트북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현재 가성비 최고 사양이라는 노트북.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방의 새 주인이 될 예정이었던 윤하은을 위해 준비한 물건임이 분명했다.

윤리안은 씁쓸하게 웃었다.

도대체 윤하은 같은 여자가 어떻게 한도겸의 눈에 들었던 걸까?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2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제도의 한씨 집안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한씨 집안 셋째 도련님이 윤하은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말과 함께.

모든 일이 너무도 뜬금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그때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다시 떠올리려 해도 기억은 흐릿하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윤세광은 은행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윤 선생님, 안녕하세요. 심사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아쉽게도 이번에 신청하신 대출은 내부 심사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승인해 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추후 조건이 충족되면 다시 한 번 상담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세광은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며 웃고 떠들고 있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윤 선생님, 무슨 일이라도?" 한 손님이 물었다.

윤세광은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자, 계속하시죠."

한씨 집안 별장.

윤리안은 서재에서 나왔다.

문 앞까지 걸어가 문을 닫으려 손을 뻗는 순간, 길고 고운 손 하나가 그녀보다 먼저 문을 눌렀다.

"당신이 윤씨 집안에서 대리로 시집온 신부야?"

윤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뾰족한 턱의 미인이 노려보고 있었다.

최고 인기 여배우, 진다해였다.

윤리안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한도겸의 집에, 여배우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진다해가 비웃듯 말했다.

"설마 한씨 집 문턱만 넘으면 곧장 셋째 며느리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분명히 말해두는데, 무슨 속셈이든 우리 셋째 오빠는 출처도 불분명한 여자 안 받아."

셋째 오빠?

윤리안은 잠시 멈칫했다. 한씨 집안에 형제자매 셋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장남 한재온, 둘째 누나 한수민, 그리고 자신이 결혼한 셋째 한도겸.

하지만 여배우 여동생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촌? 외사촌?

진다해는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셋째 오빠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당신 같은 여자가 넘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셋째 오빠 없는 지금 당장, 여기서 당장 나가. 멀리, 아주 멀리."

그 말에 윤리안의 속에서 억눌러왔던 불길이 치솟았다.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눈빛에는 노골적인 조소가 어렸다.

"그쪽은… 혹시 한도겸 씨 어머니세요?"

진다해가 버럭 소리쳤다.

"눈이 있으면 몰라? 내가 어디가 엄마처럼 보여? 셋째 오빠라고 부르는 거 못 들었어?"

윤리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도 아니고, 그럼 한씨 집안의 어느 어른이신가요?"

"어른?" 진다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 스무 살이야, 스무 살! 어디가 어른이야?"

"그럼 어머니도 아니고, 집안 어른도 아니네." 윤리안은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한도겸 씨 대신 결정을 하죠? 설령 내가 대리로 들어왔다 해도, 지금은 법적으로 그의 아내예요. 그런데... 그쪽은 한도겸 씨와 어떤 관곈데?"

"귀가 먹었어? 셋째 오빠라고 부른 거 못 들었어?" 진다해는 씩씩대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럼 친여동생인가? 그런데 한도겸 씨한테 여동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윤리안은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보니… 설마 애인이라도 되는 건가?"

진다해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 볼에는 수상쩍은 홍조가 번졌다.

"헛소리하지 마! 나, 나는—"

윤리안이 웃었다.

"아~ 정답이었나? 그럼 애인도 아닌 애인분께서, 법적으로 혼인신고까지 마친 정식 아내 앞에서 이렇게 기세등등한 이유는 뭘까요?"

"당신 제정신이야?"

진다해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부모랑 약혼자한테 동시에 버림받은 불쌍한 여자 주제에, 나한테 기세를 부려? 윤리안, 그런 평판 달고도 한씨 집안 셋째 며느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렇게 빨리 자신의 신상을 파악했다고? 이 여자, 보통이 아니었다.

윤리안은 차분한 미소를 유지했다.

"당신이 셋째 며느리가 될 수 있었다면, 도겸 씨가 애초에 나랑 결혼하는 일은 없었겠죠. 내 가능성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당신은 가능성이 없다는 거죠. 정말 가능성이 있었다면 이런 상황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죠? 애인 동생님?"

진다해는 정곡을 찔린 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눈앞의 오만한 여자, 정말로 동생에게 남자를 빼앗기고 억지로 휠체어 신세인 남자에게 대신 시집 온 불쌍한 여자 맞아?

가시 돋친 여우 같았다. 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

제도의 한씨 집안은 백씨 집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곳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진다해의 시선이 더욱 매서워졌다. 말투도 노골적으로 거칠어졌다.

"윤리안, 너무 좋아하지 마! 지금 당장 셋째 오빠한테 말해서 널 쫓아내 버릴 거니까!"

"그럼 쫓겨날 때 가서 얘기할게요."

윤리안은 더 이상 이 정체 모를 여자와 실랑이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의 정확한 위치도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돌려 가려는 순간, 진다해가 앞을 가로막았다. 얼굴에는 묘한 득의가 떠올랐다.

"윤리안, 처음부터 얌전히 나갔으면 나도 여기까지는 안 했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윤리안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내 약점이라도 잡고 있나?"

진다해가 승리감에 찬 얼굴로 웃었다.

"맞았어."

그녀는 휴대폰을 번쩍 들어 윤리안의 눈앞에 흔들었다.

"똑똑히 봐. 이거, 네가 백하진이랑 붙어먹는 영상이야. 네가 안 나가면 이걸 셋째 오빠한테 보여줄 거야."

"마음대로 하셔."

윤리안은 휴대폰을 보지도 않았다.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 했다.

그 순간 진다해가 갑자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내 핸드폰 뺏으려고? 꿈 깨!"

윤리안은 제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제법 영리한 척하는 얼굴이었다.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다음 순간.

윤리안에게 시선을 빼앗긴 채 뒤로 물러나던 진다해의 발이 허공을 밟았고, 균형을 잃은 몸이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쿵, 쿵, 쿵.

몇 번이나 계단을 구르더니 바닥에 똑바로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이를 본 하인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오 집사가 고개를 들어 2층을 올려다봤다.

"사모님, 이건…"

윤리안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혼자 굴러떨어졌어요. 저랑은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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