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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전생에서 윤리안은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포기했다. 그 대가로 한재온과 결혼하는 운명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

이후의 감옥 생활도, 심장을 도려내는 고통도 모든 비극은 그 유산을 놓아버린 순간부터 시작됐다. 어머니가 남긴 것을 포기한 그때부터, 그녀의 인생은 끝없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이번 생은 다르다.

다시 기회를 얻은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손에 쥘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여자가 삼켜버린 것들—어머니의 회사, 집, 주식, 상가, 보석까지 전부 하나씩, 그녀의 입속에서 억지로라도 끄집어낼 생각이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윤리안이 한참을 말없이 있자 오영미의 얼굴이 굳었다.

"윤리안, 적당히 해라. 좋게 말할 때 들어. 좋아, 거절하겠다는 거지? 그럼 오늘은 네가 원하든 말든 무조건 시집가는 거야. 당장 옷 갈아입어!"

윤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차갑게, 한 번 힐끗 바라봤다.

그 한 번의 눈빛에 오영미는 숨이 턱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을 졸린 닭처럼, 협박의 말들이 목구멍에서 걸려 나오지 않았다.

저 계집애 눈빛이 언제부터 저렇게 날카로워졌지?

예전 같으면 눈만 흘겨도 벌벌 떨었는데, 오늘은 끝까지 맞서고 있었다.

도발당했다고 느낀 오영미의 목소리가 서서히 독기를 띠었다.

"그 눈빛 뭐야? 나 원망하니? 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한재온이 싫다면 네 아버지한테 길거리에서 쓰레기 줍는 놈이라도 찾아서 시집보내라 할 수도 있어. 윤리안, 생각 잘해……"

"저, 시집갈게요."

윤리안이 갑자기 말을 잘랐다.

방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목소리가 낮고 거칠었다. 응어리진 원한이 묻어났다.

오영미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딘가 이상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시집만 가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 그럼 됐지. 얼른 일어나서 옷 갈아입어."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또 뭐야?" 오영미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첫째, 전 윤세광과 부녀 관계를 끊겠습니다."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더 이상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것을 나눠 갖겠다는 생각조차 못 할 테니까.

미리 차단하는 게 상책이었다.

"뭐?"

오영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수년 동안 이 계집애를 집에서 내쫓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윤세광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본인이 나가겠다고 한다.

이건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두 번째 조건은?"

"백하진과의 약혼을 파기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영미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잡히도록 웃음이 번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윤리안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어리석어서 사랑스러웠다.

윤세광과의 부녀 관계를 끊으면, 윤씨 집안의 모든 것은 자신의 아들 윤지람의 것이 된다.

백하진과의 약혼을 파기하면, 윤하은은 당당하게 백씨 집안에 시집가 '백씨 집안 며느리'가 될 수 있다.

아들과 딸의 앞날이 한 번에 열리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 순간, 윤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눈빛에 스친 조소를 재빨리 감췄다.

웃어라.

지금은 마음껏 웃어도 좋다.

곧 그 웃음, 사라지게 될 테니까.

함정은 이렇게 파는 법이다.

삽을 직접 쥐여주고, 상대가 스스로 기쁜 얼굴로 깊이 파 내려가게 만드는 것.

깊을수록 좋다.

그래야 나중에 저들을 묻을 때, 제대로 된 쾌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윤리안은 몸을 돌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구식 컴퓨터라 조작이 매끄럽진 않았지만, 서류 두 장을 검색하는 정도는 문제없었다.

문서를 찾아 복사한 뒤, 필요한 조항을 빠르게 수정했다. 그리고 오영미에게 화면을 돌려 보였다.

"출력하세요. 세 부로. 서명하고 도장 찍고, 공증인 불러서 공증까지 받으세요."

채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오영미는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부녀 관계 단절 각서에는 이미 윤세광의 이름이 또렷하게 서명되어 있었고, 개인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약혼 해지 서류에는 백하진의 자필 서명과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윤하은을 간호하느라 병원에 있어야 할 백하진의 서명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받아냈다?

그건 설명이 하나뿐이었다.

오영미가 전화를 걸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서명했다는 뜻이었다. 시간상 왕복은 불가능했다. 애초에 근처에 있었거나, 아니면 부르자마자 뛰어왔다는 이야기다.

윤리안의 손끝이 '백하진' 세 글자를 스쳤다.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윤하은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전화 한 통에 달려와 서명이라니.

얼마나 급했을까.

얼마나 기꺼웠을까.

피식.

윤리안은 고개를 들어 오영미를 바라봤다.

"공증인은요?"

"도승민을 보냈어. 금방 올 거야."

그때, 밖에서 외침이 들렸다.

"한씨 집안에서 왔습니다!"

오영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윤리안을 노려봤다.

"공증은 이따가 하고,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

"먼저 공증부터요."

윤리안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영미는 습관처럼 버럭 화를 내려다가, 윤리안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치자 말을 삼켰다.

그래, 공증이면 공증이지.

사실 이 두 장의 서류가 빨리 효력을 갖는 걸 누구보다 바라는 건 자신이었다.

"알았어. 재촉하고 올게." 오영미는 급히 돌아섰다.

윤리안은 다시 컴퓨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손가락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드디스크를 전부 포맷해버린 뒤, 몇 개의 작은 프로그램을 추가로 설치했다.

그녀가 작업을 마칠 즈음.

한씨 집안 사람들이 도착했다.

먼저 들어온 건 검은 정장을 맞춰 입은 남자들이었다. 발걸음은 일사불란했고, 그들이 실내에 들어서자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거실 중앙에 도열하더니,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갈라섰다.

그 사이로 휠체어 하나가 천천히 밀려 들어왔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비록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허리는 곧게 펴져 있었고, 선이 또렷한 얼굴에는 차가운 위엄과 음울한 기운이 공존하고 있었다.

제도 한씨 집안의 장남.

한도겸.

그는 변덕스럽고 폭력적이며,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한마디로 기분을 거스르면 상대를 하루아침에 파산시키고, 바닥까지 추락시키는 인물.

한때 번성했던 천화 재단도 그의 손에서 무너졌고,

윤성에서 군림하던 허씨 그룹은 하루아침에 대표가 투신하고,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결단은 빠르고, 수단은 잔혹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가 그런 일을 벌일 때 단 한 번도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휠체어가 거실 중앙에 멈췄고, 천천히 방향을 틀어 사람들을 향했다.

그가 시선을 돌리는 순간, 실내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윤세광은 식은땀을 흘리며 허리를 굽힌 채 다가갔다.

"한… 한도겸 대표님,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도겸은 마디가 뚜렷한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신부는?"

윤세광은 즉시 오영미를 돌아봤다.

"빨리, 데려와."

오영미의 속이 바짝 탔다.

공증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오늘따라 윤리안은 유난히 말을 듣지 않았다. 순순히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윤리안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지금 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였다.

순간, 오영미는 결심했다.

달래든, 속이든, 끌어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윤리안을 거실로 데려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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