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메인 요리, 윤씨를 위한 덫
윤씨 일가족은 아연실색했다.
안별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별은 그들의 뜨거운 시선에 약간 당황하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요? 저는 아버님께서 우리 집에 돈을 꼭 갚겠다고 하시는 성격인 걸 잘 알기 때문에 차용증서를 작성하자고 한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무리 외부 사람들이 알게 되어도 아버님이 공사구분이 확실하신 신용 있는 분이라는 걸 보장할 수 있잖아요. 아무리 소문이 나도 아버님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윤판호의 정신이 돌아왔다.
불쾌했다. 방금 자신이 윤씨의 능력을 과시하려던 말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다.
하지만, 과연 오해일까?!
그는 순간적으로 주저하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안별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 윤씨 사람들의 말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던 안별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잠긴 윤판호는 안별을 보며 말했다.
“별이 말이 맞다. 돈을 빌리는 건데 차용증서를 작성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네가 말을 안 했어도 내가 써야 했을 거다.”
“네~” 안별의 웃음이 한층 더 해맑아졌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묵직한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에 안씨는 윤씨에게 4000억 원을 빌려줬지만 그 뒤로 윤씨는 그 돈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윤판호는 하인에게 종이와 펜을 가져오게 하고, 인주도 함께 챙기도록 지시했다.
그는 친필로 차용증을 작성하고 안수철에게 넘겼다.
“수철아,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말해봐. 없으면 내가 손도장을 찍을게.”
안수철은 종이를 받아들고, 안별을 한 번 쳐다보았다.
안별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는 잠시 종이를 바라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아버님, 여기 차용 금액 4000억만 적혀 있고, 상환 일자는 따로 없네요. 상환 기일을 지나면 어떻게 한다는 내용도 없고요. 이게 맞는 건가요?”
안별의 말에 윤판호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당황한 듯, 종이를 다시 윤태성에게 건네며 순진하게 말했다.
“태성아, 너는 이런 일에 잘 알잖아. 이게 맞는 거지?”
윤태성은 잠시 망설였다. 만약 안별의 말이 맞다고 한다면, 그는 아버지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반대로 안별의 말이 틀렸다고 부정하면, 아버지는 물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차용증을 쓰는 정황 상 안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든 곤란한 상황이었다.
윤판호는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을 꺼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차용증서를 써본 적이 없어서 중요한 걸 까먹었나 보네. 내가 지금 기한을 적어야겠군. 기한은...”
“반년이면 되겠죠?” 안별이 차분히 말했다.
윤판호는 3년과 5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고, 그때 안별이 갑자기 반년을 제시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얼마 전에 윤씨의 대외 재무보고서를 봤는데요. 올해 상반기 윤씨 순이익이 7500억 정도 되더라고요. 하반기도 좋은 추세라서 수익이 더 늘어날 것 같았어요.” 안별은 말끝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이어갔다.
“별이가 경제 뉴스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 줄 몰랐구나.” 윤판호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 집도 윤씨 그룹이 순위에 있는 걸 자주 보니까요. 그래서 주의 깊게 봤던 거예요.” 안별은 잠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상환 기한은 반년으로 하자.” 윤판호는 이를 악물고 한자 한자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만약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윤씨 주식을 저당으로 잡는 거죠?”
윤판호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의 얼굴에 일시적인 당황이 스쳐갔다.
“며칠 전에 미미한테 들었는데요, 유성은행 회장 딸 유미미요. 제 친구거든요. 걔가 그러던데요. 아버님이 유성은행에서 담보 대출을 받으실 때 윤씨 주식으로 저당하셨다고 하더라고요. 1조를 대출받는데 윤씨 18% 주식을 저당하셨으니, 시장가로 보면 4000억이면 6.67%가 맞겠네요.” 안별은 위를 쳐다보며 잠시 계산을 하고, 그 후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냥 들은 사실을 말한 거예요. 이렇게 계산하는 거 맞죠?”
윤판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안수철은 그제야 딸이 무슨 속셈으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했다.
그녀는 지금 아주 정교하게 윤씨를 압박하고 있었다. 윤판호는 그 말에 반박할 수도 없고, 거절할 방법도 없었다.
어쨌든 윤씨가 지금 급히 자금이 필요한 상황은 분명했다. 만약 안씨의 투자가 없다면, 윤씨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고, 그렇기에 더 이상 판을 엎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안별은 태연자약하게, 마치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만약 윤씨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대놓고 돈을 갚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셈이다. 윤씨가 아직 그런 무례한 태도를 보일 리는 없었다.
안수철은 다시 한번 자기 딸의 날카로운 계산에 놀랐다. 윤씨는 지금 정확히 덫에 걸려들었고,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제가 계산을 잘못했나요?” 안별은 윤판호가 여전히 펜을 멈추고 있는 걸 보며, 의도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는 계산에 실수가 있었는지 묻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제안이 윤씨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손끝을 다시 한 번 계산에 집중했다.
윤판호는 고개를 들어 아들을 잠깐 쳐다보았다. 윤태성은 지금 얼굴에 씹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삼킨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은행에서는 더 이상 돈을 빌려줄 수 없고, 안씨의 투자가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들이 안별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건 사실상 안씨의 투자도 거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윤씨는 실질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윤판호도 숙련된 사람이라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가 아들에게 보내는 눈빛은 단순히 아들에게 상황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
앞으로는 절대 안별에게 평안한 날이 주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안별의 고의였든 아니든, 오늘 윤씨를 비굴하게 만든 대가로 그녀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지옥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눈빛을 읽은 윤태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윤판호는 다시 펜을 잡고 차용증에 서명을 마쳤다.
“우리 별이 말이 맞아. 6.67%가 정확해.” 그는 말하며 차용증명서를 완성했다.
안별은 차용증에 명백하게 적힌 내용을 확인한 후, 만족스럽게 웃으며 칭찬했다.
“전부터 느꼈는데 아버님 글씨 정말 잘 쓰세요. 태성이와 저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아이도 아버님처럼 글씨를 배우게 하고 싶어요!”
“얘는 시집도 안 갔으면서 벌써 아이 얘길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니.” 여민정은 다소 책망 섞인 말투로, 그러나 애정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나는 빨리 손주 얼굴 보고 싶다니까.” 조영숙은 맞장구를 쳤다. “손녀면 더 좋고.”
두 집안 사람들은 차용증에 대한 불편한 기색 없이 또다시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었다. 오늘의 차용증명서도 별다른 균열 없이 마무리된 듯 보였다.
안별의 가족은 윤씨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
떠나기 전, 안별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고, 집안 구조상 나오자마자 긴 복도를 지나야 했다. 복도는 윤씨의 정원으로 이어졌고, 그녀는 몇 걸음 가지 않아서 발걸음을 멈췄다.
멀리서 윤태미가 정원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최대한 낮추고 있었지만, 늦은 저녁의 고요한 정원에서 그 내용이 들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든 소지훈을 꼬셔서 나오게 해. 소지훈이 귀국했다고 들었어.” 윤태미의 말투는 다소 억제된, 그러나 강압적인 느낌이었다.
그녀의 과거의 ‘아기씨’ 이미지는 원래부터 누구에게나 안하무인인 태도를 보였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모든 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저녁은 안돼. 오늘은 우리 오빠 여자친구가 와 있잖아. 언제 갈지도 모르고. 내가 가면 아빠한테 큰일 나.”
“안별이 예쁘게 생겼다고? 그렇긴 해. 근데 뭐. 그래봤자 우리 오빠한테 놀아나는 여자야. 너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오빠 앞에서 얼마나 비굴한지. 이제 걔가 우리 오빠랑 결혼하면 내가 걔를 내 발까지 씻게 할 수 있다니까?”
“내기할래? 내가 사진 찍으면 그때 가서 딴 소리 하지 마.”
“내가 무조건 이길 걸. 걔는 딱 그 정도 사람이니까.”
안별은 담담한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쳐 떠났다.
그때 윤태미가 그녀의 앞에서 애교를 부리며 발을 씻겨 달라고 한 것은 단순히 그녀의 친구들 앞에서 안별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잘됐다. 너도 같이 벌 받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