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이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네 말이 사실이길 바란다."
이도현은 잠시 박예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옆에서 대기 중이던 노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경찰 쪽에서 소식 있어?"
노현우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이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아가씨가 누군가에게 납치된 건 아닐까요?"
하늘이는 회장님의 보물이자, 이씨 가문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그만큼 이 몇 년간 수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어왔고, 예전에도 납치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노현우의 말을 듣자, 이도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곧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력을 더 투입해서 수색 범위를 넓혀. 오늘 안에 반드시 찾아야 해."
"네!"
이도현의 분노는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무겁게 공간을 짓눌렀고, 노현우는 긴장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는 힘차게 대답하고 바로 움직이려 했다.
그 순간, 이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전화를 받을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끊으려 했다. 그런데 화면에 표시된 번호는 낯선 번호였다.
순간, 조금 전 노현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혹시 납치?
이도현의 근육은 본능적으로 긴장했고, 차가운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도현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의심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이 목소리…
그녀였다. 그 여자와 똑같았다.
오늘 오후 공항에서 보았던 실루엣이,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여보세요? 듣고 계신가요?"
상대방의 반응이 없자 강희진은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
이도현은 천천히 머릿속을 정리하고, 짧게 대답했다.
"네."
짧은 대답 한마디로는, 상대가 누구인지 강희진도 짐작할 수 없었다.
상대가 응답한 것을 확인한 강희진은 조금 안도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여기서 어린 여자아이 한 명을 발견했어요. 이 번호는 아이가 직접 저한테 준 건데요… 아버님이신 것 같아서요. 지금 시간 되시면 와서 데려가실 수 있으신가요?"
그녀의 부드러운 음성이 이도현의 귀에 명확하게, 그리고 또렷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길어질수록, 이도현의 눈빛은 점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그의 눈동자엔 서리가 내려앉은 듯, 싸늘한 냉기가 깃들었다.
역시 그녀였다.
수년이 흘렀어도, 이 목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강희진.
결국 돌아왔구나.
이도현은 이를 악물고,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강희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희 지금 취선루에 있어요. 아이랑 같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식당으로 바로 오셔도 돼요."
"좋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이도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고, 곧장 노현우에게 명령했다.
"차 준비해. 취선루로 간다."
노현우는 상사의 또 다른 화난 기색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망설임 없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한편, 까맣게 꺼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던 강희진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 전, 그 남자의 목소리—
어딘가 조금 쉰 듯했고, 이상하게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간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히 떠올릴 수 없어, 괜히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고 고개를 저었다.
“배고프지 않아?”
밖에서 한참 서 있던 서민주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나 배고파 죽겠어. 먼저 들어가서 밥 먹자. 사람 오면, 그때 이 꼬마 데려다주면 되잖아.”
강희진은 그녀를 향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먼저 들어가자.”
그러고는 다시 몸을 숙여, 소녀와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의견을 물었다.
“배고프지? 이모랑 안으로 들어가서 뭐 좀 먹자. 아빠는 이미 오고 계셔. 아빠가 오시면 이모가 데려다줄게, 괜찮지?”
소녀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크고 맑은 눈에 살짝 망설임이 비쳤고, 눈빛은 살짝 흔들렸다.
“혹시 네가 원하지 않으면, 이모가 여기서 같이 기다려줄게.”
강희진은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다독였다.
이 말을 듣고, 옆에 있던 하람이와 하진이도 재빨리 입을 모았다.
“우리도 엄마랑 여기서 기다릴래요!”
서민주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 나만 배고픈 채로 있으라고? 꼬마야, 우리 정말 나쁜 사람 아니야. 나쁜 사람이 이렇게 좋은 식당에 데려오겠니? 너도 배고프잖아?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이모랑 같이 들어가자, 응?”
그 말에 순간, 모두의 시선이 조용히 소녀에게 향했다.
하람이와 하진이 역시 배가 고픈지, 작은 여동생을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소녀는 잠시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천천히 강희진 쪽으로 두 걸음 다가와 그녀의 옷소매를 꼭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강희진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리고 소녀가 잡은 옷소매 위로 손을 포개듯 감싸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식당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서민주는 하람이와 하진이의 손을 하나씩 잡고 뒤따르며, 친구 옆에 딱 붙어 걷는 소녀의 모습을 보곤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이 꼬마가 아까까진 그렇게 경계하더니, 갑자기 너랑은 죽이 척척 맞네.”
그러더니 또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역시 이 세상은… 예쁜 사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기 많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