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강희진은 자기 집 두 꼬마 악마가 교수님 사무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 두 아이의 눈이 반짝이며 환하게 빛났다. 그러더니 곧바로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달려왔다.
"엄마! 드디어 연구실에서 나오셨어요! 연구실에서 그냥 살기로 하신 줄 알았잖아요!"
"엄마, 수고하셨어요! 피곤하시죠? 어서 앉으세요. 제가 등 두드려드릴게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두 아이는 각각 양손으로 강희진의 손을 잡고 소파 쪽으로 안내했다.
강희진은 그런 배려심 깊은 아이들을 보며, 혼나는 것도 가끔은 가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귀엽게 굴면서… 내 컴퓨터 해킹할 땐 왜 이런 모습은 없었을까?"
책상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청훈은 참다못해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하람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할아버지 탓이에요! 맨날 엄마 야근시키잖아요. 봐요, 엄마 영양실조 직전이잖아요!"
"맞아요. 엄마도 평범한 사람이에요. 밤낮없이 계속 일하면 어떻게 버티시겠어요?"
하진이도 거들며, 작은 손으로 열심히 엄마 어깨를 마사지해줬다.
김청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너희 둘 아주 엄마를 자~알 지켜주는 구나! 이 연구소에서 고생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강희진을 바라봤다.
"그래서, 이번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강희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순조롭게 진행 중이에요. 나중에 데이터 정리해서 선생님 컴퓨터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잠시 멈춘 후 물었다.
"근데… 컴퓨터는 복구됐어요?"
김청훈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복구가 안 됐어."
그 말을 들은 강희진은 웃으며 하진이의 작고 하얀 손을 톡톡 쳤다.
"가서 얼른 할아버지 컴퓨터 복구시켜. 장난은 그만하고. 중요한 데이터라도 정말 날아가면 어쩌려고 그래?"
하진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리 없어요! 백업도 매번 하고 다중 보안 장치도 걸어놨는데, 어떻게 잃어요~"
그러면서도 조용히 김청훈 쪽으로 걸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열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일련의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몇 분 뒤, 컴퓨터 화면이 번쩍이더니 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 광경을 지켜본 김청훈은 탄성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자의 아이들이라더니, 정말 비범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외모까지 빼어났다.
그래서 매번 말썽을 부려도 도저히 혼낼 수가 없고, 결국 강희진만 타박하게 되는 것이다.
강희진은 그 기류를 바로 알아채고,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아이들이 또 폐를 끼쳤네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제발 저만 혼내지 마세요! 이번에도 저한테 책임 돌리지 마세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김청훈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이번엔 혼내려는 게 아니라, 너한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어서야. 나, 곧 귀국해서 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거든. 전통 한의학을 중심으로 한 연구소지. 그런데 아직 손에 일이 많아서 내가 당장은 못 돌아가. 그래서 고민하다가, 네가 먼저 귀국하는 게 낫겠다고 결정을 내렸어."
"선생님, 저는…"
강희진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는 말을 꺼냈다.
김청훈은 그녀의 말을 조용히 가로막았다.
“희진아, 네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 나도 알아. 그래도… 너, 이 몇 년 동안 나랑 같이 의학을 공부하면서 한의학의 깊이를 알게 됐잖아. 그런데 해외에선 연구할 약재가 턱없이 부족해. 반면에 국내엔 네 연구에 꼭 맞는 다양한 약재들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강조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직 국내엔 전통 의술을 이어온 숨겨진 의학 가문들이 있어. 그들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재들이고, 고대 의술의 지식과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 너, 이 분야에 관심 있잖아. 그래서 귀국을 권하는 거야.”
그의 말에 힘이 실렸다.
“네 능력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지금의 넌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 무슨 일이든, 누구를 다시 만나든,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강희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랬다.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남자… 어쩌면 지금쯤이면 이미 그의 이상형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제 와서 뭐가 무서울까?’
그 생각에 강희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귀국하겠습니다.”
김청훈은 그녀의 대답에 환하게 웃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려줘서 정말 다행이야! 걱정 마. 이번에 돌아갈 때는 린다가 함께 갈 거고, 따로 전문 인력도 배치해서 널 도와줄 거야.”
“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희진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에 있던 하람이와 하진이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장난기 가득한 윙크를 주고받았다.
사실 그들은 진작부터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아빠가 그곳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 아빠를 꼭 만나보고 싶었으니까.
물론—만나는 김에 혼 좀 내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엄마랑 자식을 내버려두고 떠난 그 남자를 대체 어떻게 용서한단 말인가!
…
이틀 후, 해명시 국제공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하진이가 다리를 오므린 채 강희진의 치마자락을 잡아당겼다.
“엄마… 나 급해요… 화장실 가야 돼요…”
그 모습을 본 강희진과 하람이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알았어, 데려갈게.”
강희진은 웃으며 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엄마! 만지지 마요! 오줌 지릴 것 같단 말이에요!”
화장실에 도착한 뒤, 강희진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짐 옆에 앉아 김청훈 교수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쓸모없는 놈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애 하나 제대로 못 지켜? 뭐 하러 있는 거야, 다들?!”
강희진은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굳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 서 있는 남자의 윤곽은… 마치 신이 정성껏 조각해 만든 작품 같았다. 완벽한 이목구비, 단 하나의 흠도 없는 외모. 해와 달조차 그 앞에선 빛을 잃을 만큼 눈부신 존재.
이도현.
